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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 전에 없던 관계와 감정의 혼란에 대하여
김병수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평점 :
아동 심리학, 여성 심리학, 임상 심리학, 소비자 심리학, 상담 심리학 등등 이 많은 심리학 분야 가운데 유독 남성 심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남자 어른의 심리를 다룬 학문은 없는 걸까 평소에도 참 궁금했다. 일단 청소년기에 자리 잡으면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살다 가기 때문인 걸까? 아 그런데 바로 이 책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가 특히 고통이 필수인 마흔 이후 어른, ‘특히 마음만은 청춘인데...’ 하는 남성들 심리학의 빈자리를 채워주는가 싶다. 근거는 참으로 빈약하지만 일단 저자의 이름이 어릴 적 친구와 똑같아 괜스레 친근감이 든다. 참고로 그 친구와 나는 인문계 출신으로 정신과 전문의일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 가정에 대형 악재들이 한꺼번에 겹쳤다. 쌍둥이 아이들에게는 북한에서도 무서워 못 내려온다는 중2병이, 엄마에게는 항암 발병과 수술 후 병치레가, 아빠에게는 40대의 사춘기인 사추기가 온 것이다. 이름하여 호환 마마 역병보다도 무서운 재앙 3종 세트. 솔직히 고백하자면 급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로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 어리석은 마음에 자주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떠올렸던 적 있었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서늘 해온다. 하여 지난 십 년을 전에 없던 관계와 감정의 혼란 속에서 얼마나 마음을 다쳤고 아픈지조차 모르고 지나왔는데, 마침 이 책을 접하고 보니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볼 기회가 되었다.
어떤 책을 접하든, 독자는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맞는 수준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마련인 것 같다. 현직 심리상담사인 저자와 내담자들과의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했고, 많지 않은 분량과 길게 늘여 빼지 않는 간결한 설명체 문장이라 쉽게 읽히는 한편,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의 사례를 통해 ‘아 그래 이거야말로 나의 모습이었어’ 라는 공감의 탄식을 연발할 것이다. 목차의 구성 역시 참으로 알차다. 큰 제목만 봐도 그렇고 길어야 석 장을 넘어가지 않는 짤막한 그러나 울림 깊은 각각의 일화들에 하나같이 공감이 간다. 굳이 목차의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좋도록 각 일화의 제목들만으로도 내용을 짚어가며 읽기 좋게 되어있다.
1부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생각 공부
2부 나와 당신을 절실하게 느껴야 하는 시간-감성 공부
3부 인간은 점점 더 추운 곳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자다-관계 공부.
나름 힘들었던 지난 10년을 떠올리며 읽던 가운데 ‘우울하지 않은 우울증’ 부분을 읽다가 놀라운 적중률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게도 우울증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지나갔다니. 어떤 증상은 거의 무관하지만 다른 증상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각 증상을 전혀 아니다(1) 부터 보통이다(3), 매우 그렇다(5) 까지의 척도로 표시해보았다. 다른 독자들께도 이 같은 오지랖을 실천해 보시라 권하는 바이다.
일에 지나치게 빠져든다: 2. 다행인가 의외로 게으름을 많이 피움.
멍하니 텔레비전만 본다: 3. TV 대신 영화관으로 달려감.
조급해하고 기다리지 못한다: 5. 특히 과속난폭 운전으로 증상이 심하게 드러남.
쓸데없는 걱정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5. 이렇게 걱정만 하다간 곧 죽지 싶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4. 깊은 한숨과 더불어 자유롭던 과거가 아른거림.
성적인 환상에 집착하거나 빠져든다: 4. 금연했는데 한 대 생각나는 것과 같은 수준.
고집스러워지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4. 그래서 돌아오는 건 욕 바가지 뿐.
자꾸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5. 불과 반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천사.
의심이 많아지고 사소한 일에 집착한다: 2. 생존본능인가 의외로 감각이 무뎌짐.
사소한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으로 말한다: 5. 못하는 술 한잔 걸치면 더더욱.
술에 빠져든다: 2. 다행히도 술에는 약해서 해당 무.
친구를 만나도 재미가 없고 사소한 말에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4. 이걸 타파해 보려고 새로운 모임에 자주 나가다 보니 출석 중독됨.
마음만은 아직도 철딱서니 없는(?!) 20대라지만, 생각/감성/관계의 마음 공부를 제대로 하고 40대를 거쳐왔더라면 훨씬 더 좋았으리라는 일말의 후회도 든다. 그러나 조금 늦더라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어느 화장실 벽에 써 놓은 낙서 글귀가 새삼 다가온다. 책에 수록된 다양하고 상세한 경우들을 모두 합치면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일찍 알게 될수록 인생이 행복하다. 자신과 다툴 일이 적을 테니.’
마흔을 위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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