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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쐬고 오면 괜찮아질 거야 -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우울, 불안, 공황 이야기
제시카 버크하트 외 지음, 임소연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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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유명한 모 아이스크림 회사 이름을 연상시키는 서른 한 명의 작가들이 겪었던, 꺼내놓기 조차 어려웠을 마음 속앓이 그러나 이제는 속 시원히 말할 수 있는 치유 분투기’.

병을 고치려거든 소문부터 내라는 격언에 무척 들어맞는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휘둘리는 것 보다는 이렇게 먼저 내어놓고 해결책을 찾으니 이거야말로 매우 미국적으로 보인다. 소위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이 어떤 마음고생을 하는지 사실 평범한 이들은 알 도리가 없다. 등장인물 서른한 명 모두가 작가들이기 때문에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밀하고 세세한 표현 덕분에 아 그들은 이런 내면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었구나 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본인 혹은 주위에 우울, 불안, 공황장애 등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픈 구석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작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자신과 그들을 더 잘 이해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이들의 분투기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놀라울만한 점 몇 가지를 제시하면서 마무리.

첫째, 우리 현실 같아서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고 차마 말하기도 어려울 터인데 개인도 아닌 이름난 공인이자 작가인 사람들이 이를 모두 터놓고 시작부터 치유 단계까지 공개하면서 자신과 유사한 고통속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는 점.

둘째, 미국 의료체계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고 좋은 치료를 받으려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등장인물마다 진료와 의약품 처방 투여에 관한 내용이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 미국 현지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바, 천조국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의료제도 만큼은 한국을 본받아야 할 정도로 의외로 열악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알게 됨.

셋째, 살기 좋다고 너도 나도 다투어 이민가기 좋은 나라라고 했던 미국. 그러나 예전의 이미지와는 달리 빈부 격차만큼이나 다양한 향정신성 의약품 사용이 횡행하고, 법제화되어 차별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인종차별과 방범용으로 소지를 허가받아놓고 정작 쓰여야 할 데는 쓰이지 않아 발생하는 어이없는 총기사고 등, 보기보다 사회적 병폐가 적지 않은데 종류와 증상이 다양한 정신질환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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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을 읽는 시간 - 나를 휘두르고 가로막는 여덟 감정의 재구성
변지영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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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 요즘 왜 이런걸까? 아 그래? 그건 말이지..
속내를 털어놓아도 좋은 친구처럼 저자는 쉬운 일상의 용어로 사례를 들어가며 알아듣기 쉽고 편하게 말한다. 슬픔, 그리움, 죄책감, 수치심, 배신감, 원망, 분노 그리고 두려움. 저자는 여덟 가지 감정을 제시하며 심리상태가 잘 반영된 사례와 영화 줄거리 소개와 더불어 주인공의 감정변화를 잘 묘사한다. 특히 걸핏하면 욱하는 모범남인 재혁의 이야기는 너무도 흡사하여 마치 나의 지나온 이야기인 양 착각이 든다. 어린 시절 엄하고 무서워 감히 싫어도 싫다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아버지와, 너는 다 좋은데 꼭 이게 문제야 라며 짙은 여운의 소리를 입에 달고 사셨던 어머니에 대하여 표출하지 못하고 커 온 분노가 마음에 쌓였고 급기야는 나의 아이들에게로 전달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면서도 일일이 감정을 표출하거나 압도당하지 않고 대체로 잘 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억은 잊혀도 감정은 늘 마음속에 앙금을 남긴다. 감정에 휘둘리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감정은 한 사람의 지난 삶을 구성하는 강력한 요인이면서도 영원불멸한 것도 아니다. 지난날의 경험과 현재의 조건, 미래의 전망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러한 가변성 덕분에 감정을 알아차리고 관점을 바꾸면 결국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누구나 ‘감정 설계자’라고 말한다. 감정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자극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대상임을 강조한다. 감정의 경험을 통해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만 해왔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파악하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습득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을 휘저어 놓는 ‘새로운 경험’을 권유하며, 감정에 휘둘리고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 만족스러운 일상을 누리라고 한다. 감정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기꺼이 포용하며 당당히 삶의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라고 말한다. 그럽시다 까짓거.. 여지껏 감정에 휘둘리느라 지쳤다면 스스로 감정을 설계하는 삶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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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인원
나이절 섀드볼트.로저 햄프슨 지음, 김명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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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일개 국민의 대우를 받고 살려면 꼭 갖추어야 할 도구의 대명사가 있다. 정식 명칭인 모바일 폰 또는 셀룰러 폰으로 불리기도 했다가 살짝 엉터리 같지만 듣는 순간 바로 이해되는 핸드폰되시겠다. 모 통계에 따르면 하루 중 이 디지털 도구를 손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시간은 대략 8시간쯤 된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이 도구가 때로는 인간을 도구로 삼아 살아가는 유기체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구에 통제당하는 인간이라니..

 

길가에 흔하던 동전 공중 전화기가 전부이던 시기부터 호출기와 수신전용 시티폰으로 영업을 다니다가 핸드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하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달의 역사를 함께 해온 세대로서, 도구에 적응하는 속도를 비교하자면 요즘의 10대들은 그야말로 날고 기는 수준이다. 예전 주머니 속에 폴더형 전화기를 쥔 채로 보지도 않고 문자를 전송하던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기억이 새롭다. 길어야 30년도 되지 않는 최 근래에 일어난 변화일 뿐이다.

 

어느 일간지에서 요즘 10대가 유례없이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손아귀에 전화기를 쥐어주지 않았을 때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과히 틀리지 않는 말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오던 모든 생활의 단면이 이 디지털 기술에 다 녹아들어가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은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 끼치는 그 편리함의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반대로 이러한 기술력에 상당부분 의존하며 산다는 것은 소실했을 경우 그 폐해를 되돌릴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소유한 자체가 거대한 권력과 금력을 의미하게 된 지금, 이를 잘못 다루어 관련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소수의 디지털 엘리트가 나머지 유인원들을 위한 선택을 독차지할 가능성은 어떤가. 저자가 말미에 밝혔듯 이런 문명의 이기를 잘 다루고 못 다루고는 아직 디지털 유인원의 몫이고 선택권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스스로 진화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지만 인간의 아토피처럼 스스로를 공격하여 자멸하는 시나리오는 그래서 흥미롭다.

 

옛날 선풍기에 비하면 대단한 기술적 발전을 이룬 냉방장치의 경우, 그저 시원하기만 하면 되던 가정용 에어컨에도 인공지능을 접합하여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운전을 결정하며 제습건조와 공기청정 기능도 작동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인간의 공학적 노력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마치 스스로 진화하는 유기체를 닮아있다.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인간은 그 유혹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도구로부터의 구속을 받으면서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기묘한 모습이다. 사용자의 접속 기록을 분석하여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받거나, 입력된 검색어를 데이터베이스로 자동완성 기능을 제공받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벌거벗은 유인원이 10만 년 전쯤 나무에서 내려와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문명을 이루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스마트 기기의 출현으로 이를 벗어나 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SNS와 같은 사회적 기계의 순기능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얼굴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하며 아마존 정글처럼 정신 사나울 것 같은 온라인 세상에서 집단지성을 꽃피우기도 한다. 덕분에 발품을 팔아야만 했을 시간과 비용을 절감했다고 좋아하면서도 적잖은 액수의 통신 및 인터넷 사용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문명을 제외한 삶은 상상조차 어렵다. 지금의 디지털 유인원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도구를 만들어 낸 유인원이 다시금 도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춰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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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영어공부 -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김성우 지음 / 유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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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영어공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김성우)

 

좀 뜬금없지만 영어공부에 관한 아픈 기억 한 가지를 먼저 소개한다. 10년도 더 전에 모두가 기피하던 6개월짜리 장기 교육청 영어연수에 필자는 용감하게도 자원한 바 있다. 왜 용감한거냐고? 평생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은 발표수업 조차도 기피하는 풍조였는데 당돌하게도 백배는 부담되는 장기 연수를 받겠다고 덤빈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심정적으로는 당연히 연수를 갈 수 있을 것이리라 무척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아니면서 당장 빈자리를 채워주는 배려가 싫었던 교장은 터무니없게도 학교가 인적 손해를 보게 될 것이며 공석을 대체할 교사 수급은 해외 장기 연수 시에만 해당된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여 결국은 연수를 불허하였다. 물론 공립학교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던 당시 사립 교장의 전횡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재교육 받은 교사가 돌아와 학생들에게 배운 내용을 다시 돌려주게 되고 결국 학교 교육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 분 혼자만 몰랐을 거라고 치부하기에는 교육철학이 너무나 빈곤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 분기탱천한 필자는 자력으로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영어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기에 이른다. 졸지에 학위를 받고 호봉까지 오른 데다 대학원 인맥까지 넓혔으니 결과적으로는 매우 고마워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분 또는 그와 유사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영어가 누리고 있는 위상과 권력의 작동방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학습자들의 입장에서 어떤 대처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까를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이런 일화를 굳이 소개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는 단 한 차례도 겪어보질 못했긴 하지만...

 

이 책은 직업의 특성상 교사에게 녹아들어 있는 영어에 관한 모든 것을 학습자들에게 몽땅 들어부어 주고픈 욕구를 다시 한 번 자극한다. 아울러 이러한 자극은 일선 교사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들도 읽고 이해하여 외국어 교사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주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일단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즐거워졌다. 저자가 단단한 영어공부를 위해 제시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과거 필자의 학습 궤적과 겹쳤음을 알게 되었을 뿐 더러, 어떻게 공부하더라도 결국은 수능의 한 학과목 그 이상도 아닌 정답 찾기로 줄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어렵고 지겹고 의무적인 영어공부에서 즐겁고 신나며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 언어공부로가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다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한 자가 덜 가진 자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다 못해 우월한 존재로 숭앙받는 자본주의의 병폐처럼, 문화자본으로 변신한 영어 사용능력의 유무 또는 정도가 계층을 계급화 시키는 사회문제의 큰 요소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상품이자 권력으로 대우하는 모순 역시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과도한 영어학습의 압박으로 고단해진 학습자들의 마음에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다독이면서, 우리네 삶을 위한 영어공부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시장의 원리에 따라 영어 학습시장을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하자면, 지금까지는 절대 우위에 있던 공급자 위주의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의 시장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치 식민지 백성처럼 소비주권을 찾지 못하여 휘둘리고 살았던 우리에게, 실천적 변화를 통해 보다 현명한 영어 소비자가 되어 볼 것을 정중히 권하고 있다. 동지애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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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H.M. - 기억을 절제당한 한 남자와 뇌과학계의 영토전쟁
루크 디트리치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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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H.M.(루크 디트리치 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이며 다른 어떤 종의 생명체도 해내지 못한 문명을 이루어 지구라는 별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1.3Kg에 불과한 인간의 장기인 두뇌 덕분이며 그 중에도 일등공신은 대뇌피질이라고 생각해왔다. 인류학으로 유명한 이상희 박사가 저술한 인류의 기원에 따르면 인류의 두뇌 용량이 급격히 커진 시기는 사냥기술의 발달로 대량의 단백질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때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각설하고, 이처럼 위대한 존재로 부각된 인간의 두뇌에 만일 이상이 생겨 인간답게 살기 어렵게 된다면 어찌 될까. 환자 H.M.을 통해 저자는 영화 메멘토의 직접적인 제작 동기이기도 했던 기억 상실증에 관한 흥미로운 그러나 심지어는 기괴하고 비참할 수도 있는, 그늘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의학계의 두뇌연구 역사를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는 책상에 앉아 가벼운 손놀림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만 하면 두뇌의 어느 특정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대략적이나마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그러한 정보가 어떠한 경로로 시각화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본 본 적은 없었다. 지도를 만들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아야 했던 시절처럼, 저자의 외할아버지도 그와 같은 탐험가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오늘날 두뇌에 관하여 알려진 많은 사실들을 밝혀내는데 일조하였음은 분명하다. 탁월한 신경외과 의사로서 그가 이룩한 뇌엽부분절제술과 정신질환 연구 분야에 관한 발전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의학적 진보이자 업적이다.

 

그러나 환자가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두개골을 열고 전기 자극을 주어 반응 현상을 관찰 기록한다거나 두뇌의 일부를 제거해가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 또는 치료하려면 직접적인 병변, 즉 문제가 되는 두뇌 일부분을 제거해야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 저자의 외할아버지는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기억을 주관하는 해마와 편도체를 포함한 내측두엽의 상당부분을 흡입기로 제거하였고 수술 후 봉합부위를 클립으로 마무리해둔다. 마치 후손에게 물려주는 유산과도 같이 그의 외손자는 환자의 사후에 두개골을 열어 두뇌를 적출하면서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이 환자의 뇌는 2401개의 절편으로 분해되어 신경외과 의사들에게 시료로 제공된다.

 

정상적인 사람이 자신의 두뇌를 열어 자신을 피실험체로 사용해도 된다고 동의할 리는 만무하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미국에서 그렇게 많은 정신병 환자가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지만,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립 정신병원, 일명 생활회관에 수용되는 환자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신경의학 분야에서는 풍부한 실험재료가 확보되어 온갖 종류의 두뇌 임상실험이 가능했으니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호황을 누렸던 셈이다.

 

겨우 일곱 살 나이에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로 심한 뇌손상을 입게 된 환자 헨리 몰래슨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사고 이후 점차적으로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작을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나머지 또래보다 3년 늦게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생계를 위해 제조업체에 취업을 하긴 했으나 아주 단순한 포장 업무에도 제품 개수를 잊어버려 생산 공정에 차질을 빚게 만들어 결국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자신을 제어할 능력을 잃어 발작으로 인한 소란을 염려하여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도 겨우 참석만 허락받는다. 온순하고 다루기 쉬운 환자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독 자신의 생모에게는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고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스스로도 매우 힘들어 했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이후에도 50년 가까이 외부와의 접촉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과,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미국 유수의 신경의학도들에게 살아있는 피 실험체였다.

 

아무리 좋은 학문적 또는 의학적 명분을 지녔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분명 윤리적이지 않다. 반면, 상대적으로 극소수인 환자 실험 군으로부터 얻은 결과가 전체 인류에 희망이 되고 삶에 보탬이 된다면 마땅히 이를 저지할 명분도 찾기 어렵다. 자기 집 정원사의 여덟 살 먹은 아이에게 강제로 수두 균을 접종하여 수두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제한 제너가 그러하고, 노비의 신체를 훼손하여 조음기관을 해부학적으로 파악하고 한글을 창제하여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계몽한 세종대왕이 그러하듯, 다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온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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