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인원
나이절 섀드볼트.로저 햄프슨 지음, 김명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에서 일개 국민의 대우를 받고 살려면 꼭 갖추어야 할 도구의 대명사가 있다. 정식 명칭인 모바일 폰 또는 셀룰러 폰으로 불리기도 했다가 살짝 엉터리 같지만 듣는 순간 바로 이해되는 핸드폰되시겠다. 모 통계에 따르면 하루 중 이 디지털 도구를 손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시간은 대략 8시간쯤 된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이 도구가 때로는 인간을 도구로 삼아 살아가는 유기체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구에 통제당하는 인간이라니..

 

길가에 흔하던 동전 공중 전화기가 전부이던 시기부터 호출기와 수신전용 시티폰으로 영업을 다니다가 핸드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하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달의 역사를 함께 해온 세대로서, 도구에 적응하는 속도를 비교하자면 요즘의 10대들은 그야말로 날고 기는 수준이다. 예전 주머니 속에 폴더형 전화기를 쥔 채로 보지도 않고 문자를 전송하던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기억이 새롭다. 길어야 30년도 되지 않는 최 근래에 일어난 변화일 뿐이다.

 

어느 일간지에서 요즘 10대가 유례없이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손아귀에 전화기를 쥐어주지 않았을 때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과히 틀리지 않는 말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오던 모든 생활의 단면이 이 디지털 기술에 다 녹아들어가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은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 끼치는 그 편리함의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반대로 이러한 기술력에 상당부분 의존하며 산다는 것은 소실했을 경우 그 폐해를 되돌릴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소유한 자체가 거대한 권력과 금력을 의미하게 된 지금, 이를 잘못 다루어 관련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소수의 디지털 엘리트가 나머지 유인원들을 위한 선택을 독차지할 가능성은 어떤가. 저자가 말미에 밝혔듯 이런 문명의 이기를 잘 다루고 못 다루고는 아직 디지털 유인원의 몫이고 선택권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스스로 진화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지만 인간의 아토피처럼 스스로를 공격하여 자멸하는 시나리오는 그래서 흥미롭다.

 

옛날 선풍기에 비하면 대단한 기술적 발전을 이룬 냉방장치의 경우, 그저 시원하기만 하면 되던 가정용 에어컨에도 인공지능을 접합하여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운전을 결정하며 제습건조와 공기청정 기능도 작동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인간의 공학적 노력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마치 스스로 진화하는 유기체를 닮아있다.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인간은 그 유혹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도구로부터의 구속을 받으면서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기묘한 모습이다. 사용자의 접속 기록을 분석하여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받거나, 입력된 검색어를 데이터베이스로 자동완성 기능을 제공받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벌거벗은 유인원이 10만 년 전쯤 나무에서 내려와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문명을 이루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스마트 기기의 출현으로 이를 벗어나 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SNS와 같은 사회적 기계의 순기능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얼굴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하며 아마존 정글처럼 정신 사나울 것 같은 온라인 세상에서 집단지성을 꽃피우기도 한다. 덕분에 발품을 팔아야만 했을 시간과 비용을 절감했다고 좋아하면서도 적잖은 액수의 통신 및 인터넷 사용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문명을 제외한 삶은 상상조차 어렵다. 지금의 디지털 유인원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도구를 만들어 낸 유인원이 다시금 도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춰 볼 것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