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 빵 대백과 ㅣ 일본 현지 대백과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 / 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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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시대가 되자 일본 전국 각지에 빵집이 속속 등장했고, 각 지역의 제빵사들이 새로운 빵을 고앙하여 판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일본 전국에서 그 지역에 뿌리내린, 남녀노소 모두에게 '소울푸드' 로 사랑받는 갖가지 '현지 빵'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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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노현과 나가타현 조에쓰 지방의 빵집을 중심으로 판매되는 신슈 지역 먹거리에 하나, 두툼한 빵 사이에 휘핑크림을 채운 것이 기본 형태로, 점포에 다라 맛과 모양에 특색이 있다. 기원은 1950년대, 당시 나가노현 빵 조합이 '지역활성화로 이어지길 바라며' 우유빵 제조법을 강습회에서 공개함으로써 확산했다고 알려진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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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의 로컬음식으로 유명한 감자칩빵. 나카이빵집의 선대 점주가 고안하여 ,마침내 요코스카에서 널리 퍼졌다고 알려져 있다. 가게에 따라 감자칩이나 끼워넣는 재료. 소스의 맛 등에 차이가 있다. 가나가와현 미우라반도에서 재배된 신선한 양배추를 속 재료로 사용하는 곳도 많아, 비교하며 먹는 재미도 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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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카와현을 중심으로 수많은 빵 제조사와 빵집에서 제조 판매하고 있는 '두뇌 빵', 일본 빵 역사상 , 처음으로 이 이름의 빵이 등장한 것은 1960년의 일이다. 시작은 같은 해, 대뇌생리학자이자 작가인 하야시 다카식다 저서 『머리가 좋아지는 책:대뇌생리학적 관리법』에서 제창한 내용에 있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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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본 현지 빵 대백과』의 앞부분에는 일본 연호가 나온다. 메이지 시대는 1868년~1912년, 다이쇼 시대는 1912~1926, 쇼와는 1926~1989년, 헤이세이는 1989년~23019년, 레이와 시대는 2019~현재,까지 해당된다. 일봉에 도입된 제과제빵 사업은 에도시대 에 일본 항구가 전면 개항하면서, 1869년 메이지 시대에 서양식 빵이 오픈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기 직전 , 일본은 일찌기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으며, 제일 우선 한 것이 서양의 먹거리를 일본에 전면 도입하게 된 것이다. 150년의 제과제빵방 산업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메이지 시대, 다이쇼 시대를 거치면서, 빵 산업은 전쟁에서 군인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서, 커져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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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일본의 빵의 역사 뿐만 아니라 만들어지게 된 게기까지 소개되고 있었다. 한국에는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감자칩 빵에 대해,일본은 5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카스테라 빵, 모자 빵,우유 방,카레빵, 어떡 것이든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 생산된 방들은 원조가게로 손꼽히고 있었다. 대를 이어서 ,빵가게를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어느 덧 100년의 역사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의 특산물, 빵 노포 빵가게가 일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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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가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책에 소개되고 있는 몇가지 빵을 한국에서 직접 만들어서 팔면 사업으로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대한민국의 3대 제과제빵 가게로,이성당, 성심당, 맘모스 제과가 있는데,이 빵가게는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일등공신이 되고 있어서, 일본의 빵산업을 한국에도 적극 도입되는 바램과 함께, 한국의 교육열 만큼 일본도 상당한 교육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두뇌에 좋은 빵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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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빵 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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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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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 세상을 바꾸는 잠재된 힘
버네사 본스 지음, 문희경 옮김 / 세계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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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만이 아니라 정치인도 관객의 인정을 갈망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청중에게 막강한 위력이 주어진다.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기만 해도 그 사람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말할지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에는 그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추종자들 앞에서 극단적 수사법을 쓰는 장면을 떠오려보자. 사실 그들도 자신들의 의견에 덜 동조적인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과격하게 말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지지기반에 영합하기 위해 일반 청중에게는 비난받을 만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얼마나 남은 헤드라인을장식했는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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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소한 부탁으로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만난 사람들이 서류에 서명해주기로 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피해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 심지어 좋은 일을 해준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어쨋든 곤경에 처한 사람들 도와주는 일이기는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단계로 참가자들이 사람들에게 명백히 부정한 일을 부턱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낯선 사람에게 도서관 책을 훼손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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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상사가 부하직원과 데이트할 수 없다는 개념과 그에 따른 공식 정책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관계를 금하는 규정에 반대하면서도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관게를 금하는 규정에 반대하면서도 두 성인의 다른 악의가 없다면 관계 안에서 권력 관계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생활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과 관련해 선택할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은 어떤 것이든 가부장적 태도의 연장으로 보였다. 이런 논리는 대학 강의실까지 이어졌다.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도 2018년 이전에는 교수와 학생의 '합의된' 관계를 금하지 않았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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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고 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도 사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머릿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의 '관점'은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것 같다고 판단하는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에게 누군가에게 다가가 그 사람을 칭찬할 경우 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느낄지 상상해 보라고 한다면,당신은 그런 경험이 어덜지 당신의 생각을 통해 상대의 느낌을 상상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서두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마 당신의 생각은 틀릴 것이다. 상대의 관점을 취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결국에는 상대가 얼마나 귀찮고 성가시게 여길지 판단하는 당신의 가정이 그 관점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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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 나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내가 가진 전문적인 기술도 상대방에게 영향력이 된다. 설득, 제안,부탁도 영향력에 포함된다. 그건 상식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기본 원칙과 규범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고,아이가 부모에게 영향력을 줄 수도 있다. 권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영향력을 줄 수 있고,그 영향력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상대의 약한 부분응 건드리느 것,그것이 나의 강한 영향력을 타인에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기브앤 테이크도 영향력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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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네사 본스의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영향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이라면,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한다. 장사를 하거나, 영업을 하거나 권력을 필요하는 정치인이라면, 영향력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내가 가진 힘이나 제도, 법을 이용하면 된다.기술이나 법, 내가 가진 확신과 시뢰만으로 나는 영향력을 타인에게 적용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얼마든지 영향력을 반영할 수 있고,새로운 결과를 만들 수가 있다. 제안하고 싶을 때, 부탁하고 싶을 때, 서명 받고 싶을 때, 타인에게 큰 저항 없이 나의 요구를 타인을 설득할 수 있으며,인정받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번호가 필요할 때,그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제안할 땐 처음에는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가진 영향력이 커진다면, 신뢰를 먼저 쌓고,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면, 얼마든지 나의영향력읗 확장할 수 있고,키워 나갈 수 있다.약한 영향력을 강한 영향력으로 바꿔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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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퀀텀점프
김형준 지음 / 마인드셋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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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인생 최저 수입인 70만 원을 받을 때부터

월 1억을 달성한 2022년, 그리고 지금까지

3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스스로 이렇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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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음에 이미 성공했다.

나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아버지 김기복, 어머니 이병희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김소연의 든든한 남편이다.

나느 꿈을 향해 매 순간 몰입하는 삶을 살겠다.

나는 무한한 긍정과 뜨거운 열정의 에너지를 나누며,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겠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나는 올해 12월까지 월 3억을 버는 것으로

성공을 증명하겠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기록하고, 말하고,

행동한 대로 전부 이뤄왔고,앞으로도 당성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내가 김형준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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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한 결과임은 분명하다.상사, 동료, 부하와의 관계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브랜딩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세일즈해야 함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꼭 필요한 공통 본질이니까.그에 더해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승부욕을 깨닫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공부만 할 때는 드러나지 읺았지만 ,성과, 인정 앞에서는 너무도 지기 싫어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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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나에겐 간절한 꿈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에게 만 원 권으로 1억 원의 용돈을 드리면서 "이 돈 전부 어머니 거예요." 라며,거실에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월 최소 1,000만 원의 수입이 필요했다. 당연히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어림없는 금액이었다.어찌 보면 내게 세일즈는 숙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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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보험 영업에 뛰어들었고, 강남에 위치한 회사 근처의 반지하 월세 집을 구해, 입사 동기 6명과 합숙 생활을 시작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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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모인 100명이 넘는 신입 살원이 함께한 자리였다. 그날 초대된 선배는 매주 3건의 신계약, 즉 3W를 200주 이상 유지하고 있는 업계 내이 유명인사였다. 그런 그는 이제 막 영업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열정 가득한 후배들에게 3년만 지나도 100명 중 10명도 남지 않을거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즉시 나는 3W 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 다음, 이를 잊지 않기 위해 '3W는 어머니의 목숨'이라고 다이어리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적어 들고 다녔다. 그랬더니 평범하게 십작한 동기들과 나의 일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도 가장ㅇ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들이 한 주를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마무리하는 사이,어떻게 해서라도 고객을 만나기 위해,오전 10시에 무조건 사무실에서 나와, 오후 10시가 되기 전까니 5명을 만나지 않으면 절대 퇴근하지 않는다는 '10/10/5 법칙' 을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정이 넘었지만, 나머지 1명을 채우기 위해 찾아간 미팅에서 기적과도 같은 계약 성사나 예상하지 못한 소개를 받는 등 긍정의 결과를 얻곤 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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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일,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1억의 용돈을 부모님에게 드렸으니 어찌 잊을까. 오로지 그날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3년 동안 주말, 휴일도 마다하고 치열하게 달린 나였다. 그래도 은행으로 향하는 내내 하늘을 나는 듯했고, 돈을 받고 나와 차안에서 50장의 사진을 남길 만큼 기쁘고 설레었다. 수치로 따지자면, 첫 월급 1,000만원을 받았을 때보다 100배 이상의 감동이었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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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달콤하고, 따뜻한데, 현재보다 나아지는 인생은 없다. 그런 걸 좇는다면 비겁한 것이다.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혼자만의 다짐으로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주변에 알리고 내기해라. 실패하면 샤넬 백을 사주겠다고 말해라. 장담컨대 무조건 성공한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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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은 곧 돈이다.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신뢰는 모든 걸 얻게 하는 힘이 있다. 가벼운 평범한 일을 꼼꼼히 지켜 특별한 일을 맡게 되는 것처럼, 작고 사소한 피드백을 계속 쌓아 ,믿음의 태산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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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아낌없이 먼저 주라고 해서 부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부자는 받으려고 하기보다 먼저 주려고 한다.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자신이 받는 것에 대해 보답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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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악과 가짜 악을 구별해라. 말로만 힘들다,절박하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마라.당신이 제대로 독기를 품고 살고 있다면 주변인들이 도와줄 것이다. 진짜 악에서는 그 진심이 느껴질 테니, 멘탈이라는 단어 자체도 쓰지 마라. 그럼 멘탈이 들어올 일도,나갈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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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확률 게임이라는 걸 명심해라. 당신이 겪은 수많은 억울하고 ,짜증나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겪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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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준은 장교로 2년 반 동안 복무 후 보험 세일즈에 뒤어들었다. 처음 보험업계에 발을 들였을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김형준은 보험업계의 레전드의 성공비결을 다이어리에 적었고,그것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 10시에 나와서, 반드시 5명의 고객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하나의 계획은 매주 3W를 달성하였고,주변에서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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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황이 어려운 날에도, 휴일을 만납하고, 사람을 만났으며,잠재고객을 찾아다녔다. 경제관념이 전무하였던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 고생한 어머니에게 1만원짜이 현금다발 1만개를 용돈으로 드려야 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2012년 9월 1일,그 목표를 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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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준의 『부의 퀀텀점프』을 읽으면서,성공 그리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누구나 성공할 수 있지만, 내가 번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자신의 열등감, 경제적인 무능을 드러낸 미술교사 출신 아버지, 그서이 자가 김형준이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었던 삶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다.남들이 이루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었고,지키고, 포기하는 삶이 자신에겐 사치였다. 처음 신출내기 보험 세일즈였던 저자는 3년 뒤,업게에서 인정해주는 보험세일즈가 되었다. 일찌감치 20대에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하지만 성공 뒤에는 실패가 언제나 존재했다. 자신이 민든 경제적 자산과 조직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된다. 하지만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내가 가진 인생 경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실패가 도리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서, 사회적 신뢰와 긍정적인 평판을 동시에 얻게 된다.그것이 작가 김형준의 인생철학이며, 돈에 대한 관점이었다.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 그리고 내 인생에서 고통없는 성공은 결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였고, 어떤 상황이 놓여진다 하더라도,굽히지 않았으며, 큰 파고를 넘어갈 줄 알았다.그것이 작가의 성공 비결이면서,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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