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 백조 소설선 2
유응오 지음 / 백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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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혁은 이현상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현상의 상의 주머니에서 염주가 나왔을 때 차일혁은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에 걸면 배꼽까지 내려올 길이 108주였다. 차일혁은 108주를 한 알씩 돌려봤다. 손가락 끝에 진득한 게 느껴졌다. 피가 묻은 것이었다. 차일혁은 108주를 자신의 군복 바지에 문지른 뒤 두 손으로 고이 받쳐 들었다. (-11-)

원경 스님은 비비안나가 말하는 아버지와 닮았다는 눈언저리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비비안나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원경이라는 이름은 뜻이 있는 거야? 본명은 병삼이라면서,"

"원경은 법명예요. 러시아 정교나 가톨릭으로 치면 세례명과 같은 겁니다. 원경 圓鏡 의 뜻은 '둥근 거울'입니다. 삼라만상을 모두 담ㅇ늘 수 있는 마음의 거울을 지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제가 태어난 곳,그러니까 ,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난 곳이 청주인데, 청주의 옛 이름이 원경예요." (-50-)

원각사에는 빨치산 토벌 작전 중 죽은 인연 있는 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차일혁이 지휘한 작전에서 죽은 부하들의 위패를 차례대로 안치했던 것이다. 무주 구천동 전투에서 이영희 부대에서 참패한 후 차일혁은 천도재를 지내다가 자신의 연락병이었던 유병수의 위패를 보고서 오열을 터트렸다. 유명수는 여러 차례 차일혁의 목숨을 주해 준 적이 있었다. 재를 마친 뒤 현담스님은 말없이 차일혁의 손을 잡아주었다. (-154-)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넋은 적의 敵意 의 넋이었다. 적의로 가득 찬 사람의 마음이 적의의 넋을 만들고 있었다. 적의의 넋들은 온몸의 살점이 베어질지라도 칼날로 이뤄진 숲을 지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온몸이 뼈가 녹을지라도 벌건 쇳물의 강을 건너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온몸의 피가 마를지라도 태양이 이글거리고 모래바람이 휘모아치는 사고 砂丘 를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온몸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혓바닥이 얼어붙을지라도 빙하 氷下 의 협곡을 헤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불태우고 주변을 불태우고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울 때까지. (-205-)

소설가 유응호의 『염주』는 빨갱이,.좌파, 빨치산, 지리산 토벌대,남부군에 대해 나오고 있었다. 1948년 당시 대한민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시점이었고, 박헌영은 월북 후, 사형에 처하게 된다. 빨갱이가 말하던 박헌영의 아들은 소설 『염주』 에 등장하는 원경 스님이다.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속세에서 벗어나 자신을 철저히 숨기게 된다. 즉 모나지 않게 살아가며, 잘 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딱 중간에 놓여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 실제 존재했던 근현대사에 현존했던 인물을 등장하고 있었다. 이름이 있지만, 이름 없이 살아간다는 것, 세상이 나를 철저하게 알지 못한 채, 숨만 붙어 있는 상황 그 자체였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북한에, 자신은 남한에 살지만, 국민으로서 기본 적인 권리나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이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원경 스님은 자신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일평생 사고 치지 않고 살아가면서, 실수 하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살아가되 항상 세상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또다른 주인공 토벌대 대장 차일혁 서장, 그리고 박병삼이자 원경스님으로 살아가는 또다른 인물이 걸어온 인생 발자취, 이현상 체포작전 뿐만 아니라, 지리산 원혼 위령제까지, 우리의 근현대사 곳곳을 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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