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 - 미국 최고 발레단 ABT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 이야기
미스티 코플랜드 지음, 이현숙 옮김 / 동글디자인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불새 」 의 안무가인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와 함께 개인 리허설을 진행하기 위해 연습실에서 오후 한때를 보낸다.

매우 독창적이며 완벽주의자인 알렉세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무를 바꾼다. 그는 여기에서 도약을, 거기에서 몸을 비트는 루틴으로 변경한다. 또한 카운트가 정확히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모든 솔로 댄스를 검토한다. (-17-)

신디는 항상 마를 흑인 무용계와 연결해주려고 노력했다. 한 번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내 아프리카계 미국인 자선행사를 찾아 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가 연주하는 동안 혼자서 앙 뿌엥뜨를 추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크고 아름다운 갈색 눈을 가진 여배우 안젤라 바셋이 프로그램의 출연진 가운데 있었다. 드레스 리허설 때 그녀를 만났는데 난 거의 눈도 못 맞춘었다. 온몸이 들썩였다. (-129-)

자구책으로 의상 안에 받쳐 입을 적당한 브래지어를 찾아다녔다. 가슴을 잘 받쳐주면서도 도드라져 보이지 않고, 춤을 추는 도안에는 움직임과 호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속옷이 필요했다.

결국에는 아메리칸말레시어터 직원이 나를 불러 살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이미 충분히 마른 여성들에게 더 살을 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법적인 문제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발레계에서는 흔히 통용되는 좀 더 공손한 단어가 있다. 바로 '늘리기 Lengthening'다. (-234-)

이 것은 갈색 피부의 작은 소녀들을 위한 것이다.

공연 중에 박수 소리가 너무 커서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났다.

출연진들은 나를 ,불새를 들어 올려서 그녀가 떠 있을 수 있도록 했다.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브라보!"를 외치는 소리가 빗발치듯 내 귓가를 울렸다. 그들의 눈물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날 많은 관객이 나와 함께 춤을 추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343-)

1982년생 미스티 코플랜드 (Misty Copeland),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로서, 그녀는 우리 사회의 통념을 깨트린 흑인무용수였다. 백인,부유층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바레리나의 전통에서, 그녀의 도전과 드림은 통념에서 벗어나 파격이었으며,그녀는 발레게의 불새였다.하루 8시간 발레 연습과 예술적 아픔을 딛고, 수석 무용수가 되기 까지 거쳐온 도전과 용기는,그녀의 뒤를 잇고자 하는 미래의 흑인 무용수에게 희망과 용기, 꿈이 되고 있었다.

미스티 코플랜드 (Misty Copeland)는 75년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흑인 수석 무용수였다. 불안정한 가정환경,가난,인종, 부상을 디고 일어선, 인생의 기적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열기 위한 아픔이자 고난이 필연적이었다.발레리나는 안무가의 의해 완벽함과 아름다움 추구하는 인간의 몸의 완벽한 예술이다.그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 흑인은 그 범주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스티 코플랜드 (Misty Copeland) 는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였으며,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았다. 특히 그녀의 후원을 하였던 신디는 흑인사회, 흑인공동체에 미스티 코플랜드 (Misty Copeland) 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녀가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가 되기 까지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중요한 지지자였다. 이 책에서 보듯 어떤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혼자선 될 수 없다. 실력이 있다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만든 견고한 인종, 민족, 성의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들이 1을 할 때,스스로 10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내면의 깊은 예술적 혼이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 (Misty Copeland)에게 있었으며, 발레리나로서 탁월함과 실력,겸손함이 겸비되었기 때문에, 감동과 기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