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역사 수메르 - 국내 최초 수메르어 점토판 해독본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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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E 2600 년에서 B.C.E 2334년의 '에덴전쟁사' 를 통해 '최초의 역사' 가 환하게 펼쳐졌다. 라가쉬 통치자들은 조국을 대국으로 만들었고, 세습왕조를 정립했으며, 수메르를 통일했고, 위대한 영웅이 되었으며, 노예해방을 선언했고, 사회를 개혁했으며, 성군이 되었고, 부정부패를 범했으며, 최악의 폭정을 저질렀고, 쿠데타를 범했으며, 최악의 폭정을 저질렀고,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정권욕을 불태웠다. 라가쉬와 움마는 에덴의 들판에서 끝없이 싸웠고, 끝없이 욕망했다. (-10-)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에 왕권은 에리두에 있었다. 에리두에서 '아룰림' 이 왕이었다. 그는 2만 8,800 년을 다스렸다. 2명의 왕이 도합 6만 4,800년을 다스렸다. 에리두가 몰락했다. 그리고 왕권은 바드티비라로 넘어갔다. 바드티비라에서 '엔멘루안나' 가 2만 8,800년을 다스렸다. 양치기 '두무지' 가 3만 6,000년을 다스렸다. 3명의 왕이 10만 8,000년을 다스렸다.바드티비라가 몰락했고 왕권은 라라크로 넘어갔다. 라라크에서 '엔시파지안나'가 2만 8,800년을 다스렸다. 1명의 왕이 2만 8,800 년을 다스렸다. 왕권은 싸파르(집비르) 로 엄어갔다. 씨파르가 '엔멘두르안나' 가 왕이었고 2만 1,000년을 다스렸다. 1명의 왕이 2만 1,000년을 다스렸다. 씨파르가 몰락했고, 왕권은 슈루파르로 넘어갔다. 슈루파크에서 '우바라-투투/ 우바르-투투' 가 왕이었고 1만 8,600 년을 다스렸다. 1명의 왕이 1만 8,600년을 다스렸다. 1명의 왕이 1만 8,600년을 다스럈다. 1며의 왕이 1만 8600년을 다스렸다. 다섯 도시에서 8명의 왕이 24만 1,200년을 다스렸다. (-85-)

라가쉬가 수메르 왕권을 차지했다. 에난나툼은 최고 위치에 올랐다. 그는 수메르 왕들이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다. 에안나툼의 수메르는 '최초의 제국'이었다. 에안나툼은 정복전쟁을 멈추었다. 그느 제국의 황제 자리에 앉았다. 그의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에안나툼의 정복욕은 충족되었다. (-189-)

약 250년 동안 라가쉬와 움마는 질리도록 싸웠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가장 먼 이웃처럼 척지고 살았다. 양국의 위정자들은 생존을 위해 전장으로 나갔다. 마지막에 라가쉬는 패했고, 움마는 승리했다. 최후의 승자 루갈자게씨는 라가쉬를 짓밟고 수메르 남쪽을 모두 차지했다.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는 더 이상 '약소국' 우마의 군주가 아니었다. 수메르에서 강력한 우루크 3완조가 시작되었다. (-291-)

슐기의 광기가 멈추었다. 슐기는 48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그는 재위 20년까지 수메르의 문예부흥 시대를 힘차게 이끌었다. 왕은 가장 존경받는 위정자였고, 가장 지성적인 문화애호가로 살았다. 그는 박식했으며 만능인이었다.그러나 슐기는 남은 28년동안 북쪽의 후리인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특히 북동부 전선을 주기적으로 공격해 후리인의 침입능 사전에 봉쇄했다. 수메르를 부흥시키고 지켜낸 슐기를 위대했다. 그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자 했다.그러나 '신'을 자처한 슐기는 멈추지 않는 전쟁의 광기로 성군이 되지 못하고 빛이 바랬다. (-385-)

정권욕과 '금배지'에 혈안이 된 정치인, 위정자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비밀조직들,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일삼는 판검사들, 걸태질로 모은 재산을 대물림하기에 정신없는 재벌들, 교세 확장과 성전 건축에 빠진 교수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망각한 의료인들, 편견과 오류로 뒤범벅된 언론들,'문화의 가면' 을 쓴 교양인과 지식인들, 성(性)을 도구로 치장한 온갖행태,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가증스러운 갑질, 그일말의 반성도 없는 '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들'의 후예들, 그리고 대국민 살인극을 벌였던 장군들과 그 떨거지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히 살아가는 현실은 '최초의 역사'에서 본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더욱이 제국들의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꼴이 된 서글픈 과거사를 반성 없이 역사의 청맹과니로 현재를 그냥저냥 견딘다면 아으, 그 비참한 역사는 되풀이되고야 말리라. (-447-)

1872년 영국 박물관 연구원 조지 스미스가 앗시리아 토판 내용을 해독해 내기에 이르렀다. 그의 업적은 위대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다.그의 발견 이전에, 구약성서 속태초의 문명 이전은 원시시대였다. 성서의 절대적인 위치가 수메르로 바뀌게 된다. 그의 해독으로 ,길가메시 서사시의 단초를 재공하였으며,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되고 있었던 ,성경 의 구약성서의 권위가 무너지게 된 계기였다. 소위 문명의 시작을 구약성서에 기초를 두었지만, 그 이전에 수메르 문명이 있었다는 걸, 그 점토판 해독을 통해 증명해내었기 때문이며, 수메르 문명은 그렇게 우리 앞에, 최초의 약사로 인식되었다.

최초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통해 태초에 홍수 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수천년에 걸친 에덴의 전쟁에 대해서, 점토판 위에 있는 설형문자, 상형문자에 대한 해독을 진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라크 후세인이 살았던 그 지역은 서구 열강에 의해 도굴되었으며, 수메르 문명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말았다. 이후 미국의 부시 부자에 의해서, 후세인을 잡으려는 시도는 이라크 지역을 초토화하였으며, 수메르 문명의 골격이 되는 원형 문화재의 2차 파괴로 이어지게 된다.

책에는 수메르 문명의 최초 타이틀 57개를 나열하고 있다. 유목 민족에서, 역사로 이어지는 하나의 문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도시가 건설되고, 사람이 모여들게 된다. 농업을 짓게 되었고, 농사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난과 가뭄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는 안류의 목숨을 건 생존 전략이 만들어지게 된다. 도시국가는 커지게 되고,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재산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데, 그 과저에서 영토 분쟁,부정부패가 발생한 건 필연적인 인과관게다.즉 정치가 생겨나고 ,법전이 만들어지고, 공동체 내부의 원칙과 절차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수메르 문명 속에서 발견된다. 즉 인간의 욕망과 지식인의 위선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년전부터 시작되었다. 무차별적인 정복 전쟁을 통해서 제국주의 국가가 만들어졌고, 왕은 권력을 가지게 되었으며,국가를 형성하면서, 국가 수호신으로 신을 필요로 하게 된다. 왕은 자신의 권윌르 보존하기 위해서 신전을 만들었고, 자신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기존의 신전을 파괴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데, 우리는 수메르 문명의 원형을 통해 국가에 대한 이해, 정치가 만들어지고, 왕은 정치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더 나아가 ,신과 신화가 만들어지고, 신을 모시는 신전을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절대적인 권력자로 남길 바라는 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13년간 수메르 문명을 연구하였던,저자 김산해 교수의 역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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