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열전 -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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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기 수세기 전부터 마키아벨리주의자였다. 마키아벨리는 권력 찬탈자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잔혹한 조치를 모조리 실행함으로써 , 치세를 시작하고 그 다음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달래고 살찌우는 식으로 다스리라고 충고했다. 그 반대로 하는 것-물렁하게 시작했다가 갈수록 잔인해지는 것-은 치명적일 것이었다./ (-52-)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임무는, 누가 감당하더라도 너무 큰일이어서 세 부분, 로마와 이탈리아, 군단, 그리고 속주들로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티베리우스는  물론 진심이 아니었지만, 과하게 열성적인 한 의원은 발언의 속뜻을 놓치고 말았다. 의원은 좋은 생각이라고 답하며 티베리우스에게 세 부분 가운데 어느 부분을 맡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정말로 놀랐을지라도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는 티베리우스는 우아하게 답변했다. 그는 필요할 때면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데에 능했다. (-79-)


칼리굴라의 퇴폐적 타락상은 전설적이며, 기가 막히게 자극적이지만 애석하게도 역사적 정확성 측면에서는 적대적인 후대의 문헌들에 의해서 엄청나게 부풀러졌다. 누이 중 한 명과의 일찍 끝난 결혼과 다른 누이들과의 근친상관이나 애마를 대리석과 상아로 지은 마구간에 살게 하는 한편, 그 말을 집정관으로 임명할 계획이었다는 , 자극적이고 단편적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126-)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진짜 트라야누스가 그의 모든 재능과 모순 가운데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트라야누스는 그가 내세운 따분할 정도로 완벽한 이미지에서 비쳐지는 것보다 훨씬 더 영악하고 복잡한 사람이었다. 이 구역의 일인자는 자신이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황제 못지않게 집안의 막강한 여성들에게 의존했다. (-207-)


히드리아누스는 틀림없이 안티노우스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어느 황제도 비극을 쓸모없이 내버려두지는 않는 법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카이사르를 기려 종교적 숭배 풍습을 만들었듯이, 하드리아누스는 안티노우스를 가리는 숭배 풍습을 만들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밤하늘에서 목격한 혜성ㅇ이 카이사르의 불멸을 입증한다고 주장했고, 하드리아누스는 하늘에서 발견한 새로운 별이 역시 안티노우스의 불멸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280-)


세베루스는 군사영역에서 아니 그보다는 군사와 정치가 결합하는 점에서 가장 심각한 족적을 남겼다. 로마 정부의 민간적 색채를 줄이고 군사적 색채를 강화하는 경향들은 오랫동안 조용히 심화되어오다가 마침내 세베우스 치하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군대는 더 많은 권력을 얻고 돈이 더 많이 들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로마의 재정에 큰 부담을 안기고 이후 커다란 불안정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362-)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왜 "로마 민족" 의 사람들이 더 이상 서방을 지배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서방 제국의 속주들이 여러 비로마인침입자들의 수중으로 차례차례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몇몇 연대들을 살펴보자. 410년에 이르자 로마인들은 브리타니아에서 철수했다. 418년, 로마인들은 게르만 부족의 일파인 고트족을 남서부 갈리아에 정착시켰다. 435년에는 북아프리카의 상당 부분을 또다른 게르만 침입자들인 반달족에게 넘겼다. (-438-)


책에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네로, 베스파시아누스, 트라야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콘스탄티누스까지 기원전 BC 27년부터 기원후 AD 337년까지 로마 황제의 역사를 이해하고, 로마가 멸망하게 된 원인을 찾고 있다. 카이사르가 죽었고, 그 자리를 아우구스쿠스가 초대 황제가 되어 , 로마를 지배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로마의 종교와 실용정신, 마키아벨리가 추구해왔던 통치술을 아루구스투스가 습득하여, 로마의  통치자로 우뚝서게 된다. 이후 , 로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가톨릭 종교와 기독교가 충돌하기에 이르렀으며, 유대인 뮬벙을 지키지 않는 기독교인의 박해가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티베리우스 황제 재임 시절, 유대인은 성전을 침탈당하고, 떠돌아 다니게 된다. 길고 길었던 그 떠돌이 생활이 정리되었던 건 예루살렘을 차지한 이스라엘 국가가 1948년에 세워지고 난 이후다. 책에는 로마 황제가 제 역황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네로 황제, 칼리귤라 황제는 로마를 지배하였지만, 로마의 흑역사로 남기고 말았다. 이후 로마는 근친이 자주 있었으며, 황제들 중에는 남색을 좋아하는 황제도 있었다.하지만 로마 사회는 유럽의 중심지 답게 굳건하게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착각이었다.로마는 서서히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을 지배하였던 로마가 추구해왔던 정신, 이후, 그리스 문화가 로마에 들어오고, 아프리카 이짐트와 로마의 충돌은 불가피해진다. 지금 영국의 과거의 역사, 고대 브리타니아와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로마는 힘의 논리에서 지배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만, 서서히 무너지고, 비대해진 제국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서 생존할 수 없었다. 고대 이스라엘이 스스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에 관여함으로서, 성전을 잃어버린 것처럼, 로마 또한 자신의 잘잘목, 제국이 가지고 있는 제국과 속주의 관계에서 헛점을 드러나게 되었으며, 로마 군대를 공격하는 외침들이 반복됨으로서, 로마의 위대한 역사는 서서히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기원후 4세기경 팍스로마나가 무너진 것을 본다면, 지금 미국이 가지고 있는 나라의 현주소 또한 천년의 역사 로마처럼 예고되지 않는 어떤 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1인자로서의 위치를 내놓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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