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정진영 지음 / 무블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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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가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밝힐 수 없는 글을 쓰는 대필 작가를 꿈꿨던 이는 없다. 나 역시 대필은 다급한 생계 수단이었다. 내 작가 인생, 아니 대필 인생은 엉뚱한 계기로 시작됐다. 서울 소재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교 법대 출신인 나는 이십대 전부를 고시생으로 보내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신입생 시절에 같은 과에서 만나 캠퍼스 커플로 인연을 맺어 함께 이십 대를 보낸 유민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14-)


유정은 내게 유민이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렇다. 나는 유정의 말에 쓴웃음을 흘렸다. 유민에 관한 소문은 이미 대학 동기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어 내 귀에도 들려온 터였다. (-26-)


나는 나 회장의 자서전을 대필할 때 번호를 받았지만, 그 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받은 일은 없었다. 대필에 필요한 자료 요청과 전달은 나 회장의 비서를 통해 이뤄졌다. 인터뷰 외에는 직접 그와 대면할 기회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부리나케 자세를 바로잡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52-)


1979년 7월 6일 금요일
혜진이는 돈이 한 푼도 없다.빈털터리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도와달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난 작년에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내 장례는 내가 알아서 챙기겠다고. 내가 벌어서 내가 시집을 가겠다고, 그런데 어떡하지. 의용 씨는 내가 첫 애를 가졌는데도 병원에 한번 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 생활비도 맡기지 않는다. 그 사람을 믿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108-)


"그래서 내가 무리해 네 엄마를 붙잡았다.그때 그렇게 붙잡지 않았다면 네 엄마가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나는 임신으로 배가 불러 아무 데도 움직이지 못했을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의 일기를 읽다 보니 제가 어머니 인생에 족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79-)


어머니 기일이 왔다.아버지가 어머니의 사소가 있는 선산에 동행할 예저이었지만, 팬션 공사에 차질이 생겨 동행이 어렵게 됐다. 아버지는 올해 기일을 챙기지 못할 뻔 했는데 ,내가 대신 챙길 수 있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범재와는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249-)


사람들은 참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 최적화되어 있었으며,그에 따라서 삶의 기준이 명확하게 바뀔 때가 있다. 도덕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사회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살아가는 방식, 살아가는 법, 그 기준에 대해서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함축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새로운 기준과 원칙이 요구되고 있다. 즉 시장 경제 체제에서 도덕성은 큰 값어치가 없을 때가 있다.어떤 원칙도 절차도 통용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무언가 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의 주인공은 소설가 이범우였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느라 20대를 허비하였던 이범우는 고시를 포기하고,소설가로 전향한다. 그리고 나회장의 눈에 띄게 된다. 그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되, 죽음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 모르도록 조작하려고 한다. 소위 불치병에 걸린 이가 , 보험을 타내기 위해,다른 우회적인 방법을 쓰는 것, 그것이 이 소설 속의 첫머리에 나온다. 그런 그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소설가에서 AI 연구를 하는 새로운 존재감,그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과거를 들여다 보게 되었고, 수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과거의 불행한 삶을 알게 되었고, 주인공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즉 이 소설은 이 부분이 중요하다. 내가 스스로 태어나는 걸 결정하고,선택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사회에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좌절,죄책감, 고통과 시련을 한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욕망을 우선시한다. 즉 주인공 이범우가 AI 연구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의 과거 일기장을 들여다 보게 되었고, 가난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삶을 엿보게 된다. 물론 자신이 그 과정에서 태언나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아버지의 입장과 어머니의 입장이 서로 겹쳐졌다. 나의 삶에 대해서 후회하고, 힘겨워 하여도, 그 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소설이며, 나의 나이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에 대해 감정이입을 시키고 있는 것이 특이점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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