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 키드 - 관타나모 수용소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 실화 오디세이
제롬 투비아나 지음, 알렉상드르 프랑 그림, 이나현 옮김 / 돌베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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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도전한 용감무쌍한 이의 삶에는 울림이 있다. 흑백 그래픽노블은 묵직한 내용에 잘 어울린다. 미국의 국가 테러 실상을 상세히 고발한 사회물이자 한 인간의 투쟁적 삶과 상처와 희망이 교차하는 내면을 담아낸 자서전으로 수작이다. 엘-고라니는 강하고 존엄한 인간이다. 그에게 축복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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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음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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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업과 산업도시, 한국 노동자 중산층의 실현 가능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 양승훈의 책. 자연스레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오월의봄)을 떠올리게 한다. <중공업 가족…>이 거제 조선소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제조업과 노동계급의 형성과 위기의 한 전형을 사회학‧인류학적 르포르타주 형식을 배합해 그려냈다면, <울산 디스토피아…>는 더욱 학술 보고서적인 접근을 통해 울산을 중심으로 산업도시, 노동계급의 한 전형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미래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기획이다.
- 생산성 동맹: 저자는 기본적으로 ‘코포라티즘’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책에서는 ‘생산성 동맹’이라고 자주 표현된다. 자본, 노동, 국가의 산업 발전을 위한 동맹을 뜻한다. ‘코포라티즘’의 장점은 계급투쟁의 시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산업자본주의 국가의 세부적이고 정책적인 발전 동학을 파악하는 동시에 노동대중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 관점을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 단점은 (보기에 따라) 자본의 이익을 ‘너무 존중’하는 관점을 견지(또는 자본주의 산업 국가의 발전을 사회의 ‘유일한 대안’으로 확정하고 있다는 점)한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생산성 동맹’ 성립을 충실하게 지향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어찌 되었든 ‘생산’과 ‘제조업’에 천착하는 이 저자의 저술에는 항상 큰 관심이 간다.
- “한국에서 평범한 노동자 가족 3대를 꿈꿀 수 있을까?”, “노동자가 성실히 일해서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꿈”, “시험 경쟁을 통과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집을 사고 살림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며 제 나름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며 중산층이 될 수 있다”(10장). 저자는 한국에서 1960년대 후반에 시작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200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현실에 근접했던 곳의 대표 도시로 ‘울산’을 지목한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이라는 한국의 수출형 제조산업 핵심들이 모여 조성된 이 도시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쇠락하는 현재의 상황은, 울산이라는 한 도시의 쇠락이 아닌 한국형 모델의 붕괴를 뜻한다는 것. 그러한 측면에서 ‘울산 디스토피아’는 곧 ‘한국 산업도시’의 자멸 과정을 뜻한다. 한국형 모델의 여러 한계지점들(특히 “산업 가부장제”적 양상)을 고려하더라도, 어쨌든 제조업이라는 실물을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고 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이 그 기여도를 인정받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경험 모델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 구상과 실행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산업도시에서 말단 생산기지로 변모하는 울산의 현재에는 노, 사, 정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자본은 사회적 의의와 지속 가능성을 무시한 채 구상 기능의 분리와 노동의 생산 비중 저하(자본을 위한 기계화)에 매진하고, 노동계급은 생산성 향상과 발전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기보다는 일부(노조가 확보된 대기업 원청 소속)의 ‘안정성’만을 추구했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장기적 발전 계획에 대해 숙고하지 않거나 각 지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양질의 일자리’는 소멸하고 있으며, N차 밴더와 사내하청의 이익은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생산과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새 정규직 일자리는 희소하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많지만 청년과 여성은 대학 또는 취업을 계기로 지역을 떠나고, 이주노동자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만 고민되는 현 상황은 심각한 위기다. 울산의 인구는 줄고 있으며, 거주 인구 100만 명이라는 이른바 광역시 유지 기준을 6년쯤 후에는 충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노사정이 함께하는 경남권의 제조업 중심 메가시티를 주장한다. 서울-경기로 대표되는 (실행과 분리된) 구상, (실물과 유리된) 금융, (지역 전반을 하청화하는) 원청 ‘메가시티’의 대안으로 경남 권역(부울경+)을 묶어 내자는 주장인데, 맥락에 일부 수긍되면서도 일종의 ‘지역주의’ 느낌으로도 읽히긴 했다. 산업도시의 위기 극복이 지역의 문제를 넘어선 국가 전체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서울과 울산의 관계뿐만 아니라, 울산이 광주, 강원, 제주 등 ‘전국’과 맺는 관계도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자립적 경제 구조 형성과 이 과정에서의 수많은 사회적 노동의 호혜적 창출이 이 점에 있어서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소멸하는 대한민국’의 대안 출발점이 제조업인 것은 적절하지만, 그것이 소수 수출 산업에만 얽매일 수는 없고, 노동은 더욱 그렇게만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저자가 지향하는 ‘전 노동자의 중산층화’와 ‘산업 가부장제 극복’이라는 “꿈”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분야 연구자들이 실현 방안을 찾아내야 할 중요한 목표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희소하고 중요한 문제의식을 지닌 저자의 차기 연구 과제와 저술 방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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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문명기행 - 오아시스로 편
정수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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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배출한 또 하나의 국제 여행가, 세계인, 문명교류학 대가 정수일의 2000년대 초반 도서.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이전 도서와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실크로드 육로(북로)를 민족적이면서도 국제적인 시야로, 역사적이면서도 현재적인 관점에서 여행했다. 서방 중심의 세계인식이 과도하게 퍼진 한국 사회의 상황에 젖어 있다가, 이러한 세계 곳곳의 이야기들(특히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일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을 접하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역사, 광활한 자연, 그 속에서 열정적으로 생애를 던졌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 그리고 현재를 묵묵히 강인하게 살아가는 세계의 대중들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유와 통찰을 깊게 전해준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의 여행기가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사진 자료들의 가치 역시 매우 높다.
목차만 보면 방문한 국가들을 일별하기 어려운데, 중국(1~15)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16~19)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20~32) 이란(33~41) 시리아(42~45) 튀르키예(46~52)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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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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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책의 원제는 Uncivilized: Ten Lies that Made the West로, 서구 현대 문명이 자신의 패권적 우월성을 위해 “문명”을 설정하고 “야만”(또는 비문명)을 규정한 역사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서구 문명의 ‘일종의 십계명’을 분야별로 제시하고, 그 속에 새겨진 제국주의적-자본주의적 편견을 비판한다. 비판은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뤄진다. 사실상 서구 현대 문명은 거대한 성취 속에 부수적 오류들을 품고 발전해왔던 것이 아니라 무수한 희생과 억압 위에서 현실의 가능성을 협소화하며 특정 국가와 계급 그리고 분야만을 비대화시켜왔다는 것. 서구 문명이 가장 잘해온 것은 심지어 ‘물질적 발전’도 아니라 ‘현실을 눌러낸 브랜딩’이기에(하나 더 이야기한다면 “칼을 먼저 들었다는 것”),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알기 위해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며(85쪽), “모두가 동등한 수준에서 대화 석상에 모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이야말로 사실은 그 자체로 예술”(307쪽)이 된다.
_ 장별 글 구조는 ‘저자 경험 제시(도입)→여러 역사적 예시를 통한 개념의 허구성 폭로(본론)→주장 또는 개념의 재구성(마무리)’이다. 장별 글에 편차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박력 있는 논지를 힘 있게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제시한다. 전반부의 ‘과학’, ‘교육’, ‘문자’, ‘법’, ‘민주주의’는 쉽게 술술 읽히고(우생학, 흑인 토요학교, 잉카의 키푸, ‘고전’과 ‘대헌장’, 지정생존자 비판 등 좋은 이야기가 많다. 1~5장을 연결하여 읽어보면 저자의 논리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간’, ‘예술’, ‘죽음’은 조금 더 심오하게 논지를 확장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시간’이 인상적이었다.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과거의 존재”로 타민족, 타계급, 타문명을 사유하는 것은 어쩌면 침략적 계몽주의의 ‘끝판왕’ 또는 ‘마지막 관문’일 텐데,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적 시간 관리 및 표준화’ 비판과 다른 문명의 시간 인식법(오세아니아인의 ‘드리밍’)이 시사하는 바를 제시하며 깨트리고자 한다. 역사를 누적하며 살아온 인간 집단에게는 존중받아야 할 고유한 시간표와 시간관념이 있다는 말인데, 이러한 사유는 “각자의 사회 제도, 발전 경로, 이익, 차이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국제 관계의 민주화”, “자주화”를 지향한다고 일컬어지는 최근 “다극 세계” 논리의 사실상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일 수도 있을 것이다.
_ 저자 수바드라 다스는 인도계 영국인이다. 인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아랍에미리트의 영미권 학교에서 유년기에 공부하고 “서양 학교에 다니는 남아시아계 아이의 모범적인 소수자 스테레오타입”으로 자라 우수한 성적으로 UCL에 입학해 학위를 받고 이후 계속해서 UCL 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를 “내 삶과 교육 전부가 ‘서양과 나머지 세계’라는 이분법이 틀렸다는 증거”로 “나는 이 둘 모두”라고 확언하고 있다. 맥락상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자신의 ‘뿌리’에 대한 탐구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겨난 듯하다. 여기에서도 여러 가지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야기가 파생될 수 있을 텐데, 내가 주목했던 지점은, 저자가 그러한 사색의 결과로 ‘다문화적 영국인’보다는(또는 뿐만 아니라) ‘다극화 속 영국인’의 관점에서 ‘세계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_ 지금까지 ‘권력 게임’의 승자가 ‘문명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그동안의 ‘패자’가 이를 재구성하는 주역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이 책의 핵심 주제가 누군가에겐 진부하다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목할 지점은 변화 중인 현실이다. 책 속 이야기가 ‘글로벌 다수’의 실질적 진출과 “서구의 패배”와 맞물릴 때, 그것은 이미 찻잔을 훌쩍 벗어난 태풍에 관한 예보일 수 있다. 앞으로 수년, ‘일극에서 다극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를 여러 측면에서 조망하는 (또한 이를 외면하거나 따라잡지 못하는 한국의 정계와 학계를 비판하는) 컨텐츠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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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5 - 개혁의 실패와 망국으로의 길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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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35년>, <고려사>까지의 박시백 화백의 작업을 보면 ‘당대의 기록’에 기본적으로 충실하면서 (긍정적인 의미로서) ‘교과서’적인 보편적 역사 인식의 틀을 정리, 제시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고려처럼 ‘사실관계’적 사료가 부족한 시기의 경우, 아무래도 평이하게 내용이 서술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해석이 늘어날수록 기본 취지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럼에도 민족사의 흐름을 건전하게 보편적으로 서술해내는 박시백식 ‘사관’의 강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망국 이후, 고려사 전체를 개괄하는 내용의 작가적 주관이 한 번 정도는 제대로 펼쳐졌으면 어떨까(현재는 단 2페이지로 서술되었다),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조선왕조실록>의 18권 후반부처럼). 앞으로 해방 후 역사 등 현대사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논쟁적인 지점들을 어떻게 ‘박시백식 사관’으로 해석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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