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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양장)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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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읽었던 인어공주, 미운 오리새끼, 성냥팔이 소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희망과 행복 등 긍정적인 단어를 잊지 않게 해주는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는 안데르센 동화에, ‘잔혹’이란 딘어를 붙여 안데르센 작가의 삶에서 추론할 수 있는 선과 악이라는 양면적 내용은 그것이 비록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어렸을 적의 소중한 기억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 쉽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안데르센은 다수의 비평가들에 의해 ‘자전적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그의 작품 속에는 불우한 환경과 외모에 대한 열등감, 가난, 혼돈 같은 작가의 경험이 다양하게 투영되어 있다.

1805년 덴마크의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하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접은 안데르센은 에드워드 콜린이라는 동성 남자의 결혼 소식에 대한 실연을 겪었다. 작가의 그러한 어긋나버린 사랑의 물거품같은 실연의 아픔이 '인어공주'의 모티브가 되어 그 유명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무언가 어렸을 적 읽었던 아름답고 안타깝던 동화 속 기억에 균열이 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안데르센 동화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아련한 환상을 말끔히 걷어주면서, 모든 인식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만들면서 '인간을 파멸시킨 욕망 잔혹동화', '목숨과 맞바꾼 사랑 잔혹동화',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마법 잔혹동화', '사유에 묻히게 하는 철학 잔혹동화'라는 4개의 파트로 구분하여 그간 조금씩 미화 각색된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영문글 및 해석을 담고 있다.

안데르센이 쓴 160여 편의 동화 중에서, 인간을 파멸시킨 욕망 잔혹동화에 '빨간 구두' 등 4편, 내 하반신을 드릴께요라는 내용으로 재 해석한 '인어공주'와 '외다리 병정' 등 4편은 사랑 잔혹동화로, '눈의 여왕'과 '백조왕자'는 마법 잔혹동화로, '미운 오리새끼'와 '성냥팔이 소녀'는 철학 잔혹동화로 총 16편의 작품들이 안데르센의 삶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편역자인 박예진은 이렇게 말한다. “ 대부분의 동화가 삶의 따뜻하고 희망적인 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반면, 안데르센은 어둠과 빛, 희생과 보상, 인간성과 비인간성이라는 상반된 모습들을 모두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을 좌절시켰던, 부정적인 이야기들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날에서는 빛이 비치고, 어떤 날에는 비가 오기도 하는 세상의 이치처럼 말이죠”

어린시절 기억 속의 아름답고 따스했던 정감에 대한 배반이라고 느껴질 잔혹한 실상이 그려진 내용에 다소 실망스러운 측면도 있다. 반면에 어른이 되어가면서 피할 수 없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 상실감을, 죽어서라도 은혜를 갚으려 했던 은인을 기다리는 '길동무'라는 작품이나, 잔인한 시련 속에서 강인해지는 '마쉬왕의 딸'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극복하고 있다. 철학 잔혹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몸값 싼 어린소녀를 노동자로 이용하다가 길거리로 내몬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16편의 잔혹한 어른 동화는 한글로만 된 어린이 동화와 달리 영문 글귀를 수록하여 원문의 여운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한다.

Life itself is the most wonderful fairy tale.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동화이다.

Life is like a beautiful melody, only the lyrics are messed up.

인생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같다. 가사만 망가져 있다.

비록 어렸을 적의 꿈과 희망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지만, 인생은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라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안데르센잔혹동화속문장의기억 #박예진엮음편역 #센텐스 #리텍콘텐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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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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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름과 제목을 알고 있는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해서 정말로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에게는 버지니아 울프가 그런 경우이다. 어디에선가 이름은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어서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어보니 실상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든 생각은 이제부터라도 그 작가의 작품을 읽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자기만의 방'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 우리는 같은 세상을 보지만 다른 눈으로 봅니다.

Though we see the same world, we see it through different eyes.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적인 13작품 중의 하나인 '3기니'에 나오는 문장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인지 작품 속의 문장들이 낯설고 난해하기도 했지만 문장 곳곳에 숨어있는 보석들을 찾아내는 기쁨도 만만치 않았다. 작가가 같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만의 방'에 나오는 다음 문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색하며 대학교의 잔디밭을 거닐던 '나'를 한 관리원이 막아섰습니다. '나'에게 허락된 것은 자갈길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을 같은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조차도 남다른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작가는 1915년부터 53세가 되기까지 일기를 썼는데, 그 내용 중에 작가로서의 심정이 드러난다. '빈 종이를 검토하다 보면 불안해져 저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집 안을 배회하며 계단 아래에 앉아 웁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각종 댓글에 상처를 받고 때로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때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이 나온 뒤 서평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예민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그리고 서평이 마음에 들지 않자 분노하는 모습 등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대한 용기에 더해서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도 예민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일기를 통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수동적인 순응이 무섭습니다. ... 저는 치열하게 삽니다.'

'나는 나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내 글, 삶의 유일한 정당성입니다.'

'칭찬과 침묵이 혼재해도...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예술에서 얻는 즐거움이요.'

*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

  •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위에 세워집니다.(밤과 낮)

  • 사람들을 요약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제이콥의 방)

  • 런던의 거리는 지도가 있지만, 우리의 감정은 아직 탐험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이 구석을 돌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제이콥의 방)

  • 밤이 왔습니다. 그녀가 항상 사랑했던 밤이 왔습니다. 마음의 어두운 웅덩이에 반사된 것이 낮보다 더 선명하게 빛나는 밤이었습니다.(올랜도)

  • 책은 영혼의 거울입니다.(막간)

  • 빗방울은 세상 모든 이들의 눈물이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막간)

  • 사람들이 변할 수 있을까요? 우리 자신,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요?(막간)

* 우리는 다른 눈으로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작가, 남녀차별이 노골적인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낙인이나 고정관념을 거부한 작가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치열한 삶을 불태웠다. 80년 전 작가가 살았던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같은 눈이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차원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버지니아의 일기)

#버지니아울프 #문장 #명언 #고전소설 #소설추천 # 베스트셀러 #리텍콘텐츠 #센텐스 #박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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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치유하는 뇌 - 개정판
노먼 도이지 지음, 장호연 옮김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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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물리학계에서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위대한 물리학자로 불리는 스티븐 호킹(1942-2018)은, 21살에 루게릭병에 걸려서 2년 밖에 못 살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 후로 50여 년을 더 살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는 난치병 진단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에 기적처럼 그러한 질병을 이겨내고 회복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그저 극히 드물고 특인한 현상이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수백년 전에 살았다면, '서울에서 부산을 2-3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거나, 하늘을 날아서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다거나, 혹은 휴대폰을 통해서 세계 어떤 곳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고 얼굴도 서로 마주볼 수 있다고 말했다면, 아마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그런 상상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 같다.

'기적을 부르는 뇌'의 저자인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 노먼 도이지는 인간의 뇌는 변하지 않는다는 의료 관습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노먼 노이지가 임상연구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신경가소성(神經可塑性, neuroplasticity)은 성장과 재조직을 통해 뇌가 스스로 신경 회로를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기존의 과학자들이 뇌는 시간이 지나면서 퇴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이 정신적 활동과 운동으로 뇌의 쇠퇴를 막으려는 노력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반면에, 저자를 비롯한 신경가소성 옹호자들은 뇌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뇌가 활동하면서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는 만성 통증, 뇌졸증, 외상성 뇌 손상,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자폐증, 주의력 결핍 장애, 다운증후군 등 다수의 중증 질환에 대하여 신경가소성을 적용하여 치유하거나 완화시키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물론 외국의 사례들이고 첨단 의학적 기술과 성과들을 적용하는 것이어서 우리들에게까지 그러한 치료법이 적용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우리는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걸리면 스스로 치유한다는생각보다는, 이제는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여겨기는 자폐증이나 뇌 손상을 입은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독립하는 경우를 소개하는 이 책의 내용은 획기적이고 믿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혈압과 맥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24시간 혈압을 측정하였는데 전단계 고혈압 진단을 받고 혈압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혈압약은 평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그 때부터 맨발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맨발걷기를 한다고 혈압이 한꺼번에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혈압의 변화가 안정적이고 맥박도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겨울철에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맨발걷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 중에서 유명한 가수였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잃은 론 허스만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다발성 경화증( 뇌와 척수의 축삭 주변의 지방성 말이집을 감싸는 부분이 손상을 입어서 탈수질환과 흉터형성으로 이어지는 염증 질환)으로 생계 수단인 노래를 못하게 되고 급기야 목소리까지 잃기 시작한 론 허스만은 방광을 제어하는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걷는 것이 어려워지고 균형 감각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그런 상황에서 뇌 가소성을 이용한 장비를 이용하여 치료가 가능하다는 연구소를 소개 받아 그 건물에 도착하는 장면이 나온다. 낡은 건물에 수수한 장비들을 갖춘 작은 방에 도착하니 출입구에 하역 도크가 있었고 복도는 공사 중이었다. 한 환자는 그 장면을 보면서 "과학적 기적을 일구어낸 본거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론은 "잃을 게 없으므로 되면 좋고 안 돼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 연구소에서 장비를 입에 물고서 통증 없이 혀와 감각 수용체를 자극하면서 30년 간 꾸준히 나빠졌던 론의 증상은 급속하게 좋아졌다. "28년 동안 노래를 하지 못했다가 갑자기 다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한번 상상해보세요. 그 지팡이는 필요 없겠어요."

혀는 뇌 전체를 활성화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혀에는 48개 다른 종류의 감각 수용체가 있으며, 혀끝에도 14개의 감각 수용체가 있어서 촉각, 통증, 미각 등을 감지한다. 혀끝에 1만 5,000에서 5만 개의 신경섬유가 있어서 거대한 정보의 고속도로를 만든다.

뇌와 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낯설지는 않지만 보편적이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뇌가 변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변하고 있다. 신경가소성으로 뇌와 관련된 난치병이 치유되는 일이 어느 순간에는 기적이 아니라 일상이 되는 시간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스스로 질병에 걸린 것처럼 스스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 현실이 되리라 믿고 싶다. 기적을 부르는 뇌는, 기적을 부르는 인간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스스로치유하는뇌 #스치뇌 #노먼도이지 #신경가소성 #뇌가소성 #히포크라테스 #동아시아 #개정판 #베스트셀러 #신간 #책추천 @hippocrates_book

* 히포크라테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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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김한수 지음 / 샘터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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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에서 종정은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최근 언론에 많이 거론되는 것은 주로 총무원장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효봉스님이나 성철 스님처럼 유명한 분들도 계셨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로만 여겨졌다.

제15대 종정에 취임하신 성파 스님의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를 읽으면서 조계종 종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샘터사 김성구 대표는 "처음 스님은 뵈었을 때는 높이, 멀리 계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가까이 계신다. 따뜻한 모습으로"라고 말했다는데, 실제 스님은 아주 가까이 계시지만 한편으로는 이 시대 배움을 실천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아주 멀리 계시기도 하다.

* 배우는 어른

요즘은 너도 나도 공부에 중독되어 있고 강박도 갖고 있는 것 같다. 태어나서 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공부가 무거운 짐처럼 따라다니지만 의무감이나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하는 차원이 아니고 일정한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계속하면서 성취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파스님은 평생 머물고 계신 통도사의 주지를 마치자 마자 그 이튿날 일본으로 떠나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 문화를 답사하고 중국에서는 입문 3년 만에 산수화로 중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한다. 원효스님이 말씀하신 출출가(出出家)를 몸소 실천했다. 20세에 모든 것은 뒤로 하고 출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40대에 통도사의 주지 임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처음부터 배움을 시작한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 실천하는 어른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했을 때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배움을 청하는 출출가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스님이셨기에 1939년 생이면서도 다른 사람들 오백 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신다. 스님의 공부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1,300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통도사의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실천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야생화를 가꾸고 28년간 도자기를 구워 도자 삼천불과 16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천연 염색과 옻칠 기법을 개발했고 50년 이상 된 항아리 모르기와 서운암 된장 그리고 사라져가는 '도서 무한대 모으기'까지 배움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 나누는 어른

공부와 실천은 별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배움과 실천과 나눔도 별개의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배운 것을 실천하고 나누는 삶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주영복 국방부 장관 부인이 외국군 부인들과 통도사를 찾아왔을 때 평소 만들었던 다기 세트를 선물하고 즉석에서 합죽선에 붓글씨를 써준 인연으로 국내 사찰 중 최초로 성보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사연 등은 흥미로웠다. 시조 백일장을 개최하고 수상자에게 직접 구운 도자기에 수상자의 시를 써서 주고, 서운암을 찾는 이들에게는 손수 옻으로 염색한 스카프를 선물한다.

* 종합불교대학 경학원의 꿈

한문으로 된 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학승을 양성하는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반일들까지 교육하는 종합불교대학인 경학원을 꿈꾸시는 스님의 구상은 이렇다.

'한문이라는 것은 문법을 체득하면 안 배운 것도 읽고 알 수 있어요. 옛날에는 문리하고 했지요. 불교에서는 경안이 열린다고 해요. 그럼 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문리가 나고, 경안이 열리면 퇴계문집, 남명문집을 처음 봐보 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독해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독해력을 가진 사람을 키우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정치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시기를 거쳐왔지만, 1,300년을 이어온 통도사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이 시대의 어른 성파 스님의 배움과 실천과 나눔의 삶은 우리가 본받아 마땅하다.

삶도 공부처럼 문리가 트이면, 어른 스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백 년을 살기 쉽지 않은 인생을 오백 살 인생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런 인생은 배우고 실천하고 나누는 삶을 동시에 살아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리라.

#일하며공부하며공부하며일하며 #성파스님 #에세이 #샘터 #샘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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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건너편 작별의 건너편 1
시미즈 하루키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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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인데 읽고 나니 간절해진다. 작가의 상상력에 더해서 가능하다면 삶의 모든 순간에 그리운 존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생각이 간절해서인지 책을 읽고 나서 평소 안꾸던 꿈까지 꾸었다.

 

* 마지막으로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할까

도로를 건너다가 트럭에 치일 뻔한 강아지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아야코는 작별의 건너편에서 고민에 빠진다. '예전에 만난 적 있는 사람. 아직 내가 죽은 걸 모르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 하루라는 마지막 순간은 기적같은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의 순간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집단괴롭힘에서 구해주고 교사라는 꿈을 갖게 해준 은사를 찾아갔지만, 그 선생님 역시 강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돌아가셨다. '내 히어로는 사라졌다. 그 히어로처럼 되고 싶었던 나도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 신은 심술궂고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여서, 히어로를 자기 곁에 두고 싶은 걸까요.'

 

'나는 판에 박은 듯한 두 사람의 잠든 얼굴을 가장 좋은 자리에서 지켜보면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아야코는 현세로 돌아오면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미안해"하면서 사과할 생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말은 전혀 달랐다. "사랑해" 그 말 말고 다른 말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

"아주 웃기고 자빠졌네.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은 놈은 한 놈도 없어."

 

칠기 장인인 아버지의 뒤를 잊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술만 마시다 사망한 히로카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재회하면서 어머니가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당신은 아직도 주위 사람들에게 히로카즈가 도쿄에서 나무를 깍아서 보내준 틀에다 칠을 하고 있다고 둘러대죠?"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히로카즈에게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 그 대신 가족한테는 피해 줘도 괜찮다."

 

과거를 돌아본다고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그대로 내버려 둘지,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는 있을지는 자신에게 달렸다는 말이 와 닿는다.

 

* 미안해, 사야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사야카야!"

 

'보고 싶다. 사야카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미친 듯이 사야카가 보고 싶었다.'

 

나는 사야카와의 재회를 단념했었다. 더는 사야카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이대로 사라지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야카를 만나고 싶다.'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다. 이런 사랑은 꼭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작별의 건너편>을 쓴 시미즈 하루키 작가는 이런 편견에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 당신이 오늘 죽는다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존재는 무엇입니까? 사람 또는 동물을 비롯한 당신이 아끼는 그 어떤 존재라도 괜찮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 알 수 없는 미래. 느닷없는 사고로 준비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생명들에게 딱 하루의 마지막 작별이 허락된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존재를 만나고 싶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 마지막 순간에 나를 잧아올 존재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만 간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문득 마지막 재회를 안내하는 안내인이 건넨다는 달달한 조지마 맥스 캔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무의미해서 좋지 않습니까? 하긴, 이 세상에 무의미한 건 하나도 없죠. 언뜻 보기에도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아 다행히 아직 살아 있다.

오늘은 어떤 하루일까. 끔찍한 하루. 기적 같은 하루.

사랑의 블랙홀 같은 제행무상의 울림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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