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 살인사건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박진범 북디자이너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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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이 떠난 곳 아래에는 뭔가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 p.15

이 책은 니시무라 교타로의 장편소설이다. 요즈음 이래저래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가볍게 기분 전환으로 읽을 수 있는 장르가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인 듯하다. 사실 그렇게 선호한다거나 자주 읽는 장르는 아니었지만 독서하면서 단순하게 재미를 느끼기 위해 고르게 된다. 일본 장르 문학으로는 유명한 출판사이기 때문에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선택했다.

처음으로 가메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경찰이자 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데 비번인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거리를 나왔다. 모처럼 딸과 추억을 쌓기 위함이었는데 갑자기 나비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떼 수준의 많은 나비들이었다. 가메이는 나비가 날아오는 곳을 따라 걸어간다. 발길이 멈춘 곳에는 상자와 함께 한 청년이 시체로 누워 있었다. 그 청년의 사인은 청산가리 중독이었고, 손목에는 성경 구절이 적힌 팔찌를 채워져 있었다.

이후로 아파트 단지에서 한 여성이 연이어 같은 사인으로 발견되었다. 도쓰가와 경부를 필두로 하나의 수사팀이 꾸려졌다. 경찰은 여론을 의식하면서 사건을 파헤치는데 죽음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분신 자살을 택하는 청년들까지 생기기에 이른다. 도쓰가와 경부, 가메이 등의 형사들은 검은 배후의 인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들이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지 점점 진실에 도달한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혀졌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으로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400 페이지 중반 정도의 분량을 가졌기에 짧은 시간 내에 완독할 수는 없었지만 퇴근 이후 두 시간씩 읽으면 이틀 정도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에는 취침 시간도 미루어서 완독할 정도로 꽤 몰입력이 좋았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분명 1980년대에 출간된 작품으로 지금으로 보면 한 사십 년 정도가 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일본이 대한민국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흘러가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사전 정보를 지우고 보면 충분히 신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부분은 조금 씁쓸하게 와닿았다. 과거의 청년들과 현재의 청년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이 약해져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을 때 종교를 믿겠다는 이야기를 자주했었는데 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의 손길이 아닌 탐욕의 유혹을 내미는 악마와 같은 배후 세력에게는 분노가, 그 세력을 믿을 수밖에 없는 신도들에게는 뭔가 모를 연민이 들었다. 개인적인 상황이었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또 모를 일이다. 그 지점은 공감이 되었다.

또한, 중후반부에 이르러 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들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지극히 한 명의 독자로서 남을 도우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의 의도가 아닌 다른 의미로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의식으로 발현된 행위여서 처음에는 새로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참 생각이 많아졌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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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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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의 삶이 메말라 버렸다. / p.23

이 책은 이천우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남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같은 성별의 동생을 두고 있는 나에게는 크게 공감이 될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드라마와 영화, 소설에서 삼남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자주 등장한다. 좌충우돌 사건들이 꽤 흥미로웠다는 점에서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진태, 진수, 해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삼남매이다. 진태는 부인과 이혼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생각만 하던 말을 2주 전 부인에게 전했고, 칠레의 광산 사고 소식을 무릎 꿇고 보던 부인이 진태의 말처럼 이혼하자는 의견에 동의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의 구조조정 명단에 진태의 이름이 올라간 듯한데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을 겪고 있다.

둘째인 진수의 입장 역시 나쁜 상황이다. 댄스학원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 파트너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아 한강에서 자살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짝사랑이 꽤 깊었던 것 같다. 막내인 해민은 BL 만화 사이트에서 혼자 꿋꿋하게 SF 장르를 올리는 뚝심을 가졌는데 알고 보니 카테고리에 맞지 않은 곳에 올리는 이유가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결국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투병 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영부영 장례를 치로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던 중 낡은 LP판을 보게 되었고, 이를 재생시키자 시간이 돌아가 8월 5일이 되었다. 진태는 여전히 칠레의 광산 사고를 보는 부인에게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진수는 이성 파트너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해민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겪는다. 어떻게 해야 세 남매의 시간을 돌릴 수 있을까.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점에서 후루룩 읽혔다. 페이지 수도 300 페이지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시간 정도 내외에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특히, 자녀의 입장으로서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할 때가 있는데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삼남매의 타임 루프 이야기보다는 아버지의 편지에 더욱 공감이 되었다. 두 번째 타임루프로 돌아가던 삼남매가 아버지의 일기가 담긴 노트들을 발견하는데 그곳에서는 그동안 듣지 못했던 사랑 이야기들이 활자로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을 사랑했던 이야기부터 아버지께서 마지막 순간에 외치던 이름을 가진 사람과의 사랑 이야기까지 지고지순하고도 순수한 감정들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묘하게 이입이 되었다.

마지막 결말을 읽고 나니 더욱 인상적으로 남았다. 처음에는 내용을 읽으면서 제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에 진태의 아내가 보던 뉴스 이야기와의 연관성도 알 수가 없었는데 결론적으로 공간과 시간이 다를 뿐 뉴스에 등장하는 이들과 삼남매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결말이었다는 점에서 너무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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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키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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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그렇게 절규했다. / p.16

이 책은 프리키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정보를 찾지 않고 선택한 책이다. 사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외국 작가님의 미스터리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 소개를 읽으니 한국 작가님의 필명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별개로 구매했지만 아직 읽지 않은 장편소설 중 하나가 이 출판사의 일본 작품이어서 눈길이 갔던 것도 있었다. 취향에 맞다면 구매한 책도 읽을 계획이었다.

총 여섯 작품이 실려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술술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현재의 상황이나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작품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일상을 벗어나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페이지 수도 적당한 선에서 얇은 편이어서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소녀 사형 집행관>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도연이라는 이름의 중학생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갑자기 잃었고, 현재는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받고 있다. 한순간의 실수로 괴롭히던 학생을 죽이게 되었는데 촉법소년법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곳으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만 14세가 지나는 일 년이라는 시간에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벌을 받게 된다.

가장 고통스러운 작품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촉법소년법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요즈음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이 점차 어려진다는 사실을 뉴스 보도로 자주 접하다 보니 이런 생각에 닿은 것인데 막상 이렇게 작품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하니 도연이에게 연민이 들었다. 처벌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연의 가정사를 활자로 이미 이해하고 있기에 감정적으로 생각에 치우치지 않았을까.

흥미롭게 술술 읽혀졌다는 측면에서 금방 완독할 수 있었지만 지극히 사적인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전반적으로 폭력성이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두에 언급했던 청소년 대상 사형 집행,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이웃에게 복수를 한다거나 청각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목숨을 거는 게임을 제안한다거나 하는 주제들이 그렇다. 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공감을, 또 어떤 이들은 카타스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타인이나 자신의 목숨을 결정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연민이 들었을지언정 공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물 어느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이입이 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오히려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저렇게 억한 심정을 가져서 뭐가 이득인 거지?' 라는 물음표가 들었는데 그 생각이 아주 오래간만에 맴돌았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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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록
프리키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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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히지만 호불호가 탈 듯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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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에디터스 컬렉션 16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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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무리가 여기저기에서 교회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었다. / p.20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이다. 고전 작품 하면 자주 등장하는 '동물농장','1984'의 작가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읽지 못했다. 현대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소설들은 읽는 편이었지만 고전은 늘 장벽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인 시대상을 다룬 작품들은 유독 그 허들이 높게 느껴진다. 명작이라는 것을 알지만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알게 된 작품이다.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작품은 스페인 내전이 이루어졌던 1935년도 전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취재를 위해 스페인으로 갔지만 의용군에 자원으로 입대한다. 그곳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과 어린 소년병들, 여행을 목적으로 온 관광객들, 자신처럼 다른 국적의 사람이지만 장교로 전쟁을 치루는 이들을 만났다.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병사들의 태도와 행동, 라이플을 비롯한 연식이 너무 오래되어 사용하기 힘들었던 무기들,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족해진 식량 자원 등 내전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렵다고 느낀 작품이었다. 우선, 고전 작품 자체를 많이 읽지 않는 편이기에 심리적인 벽이 높았다. 또한, 의용군,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일반적으로 역사 시간에 배웠던 지식들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주인공이 몸 담고 있었던 POUM(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 UGT(일반노동자연합) 등의 단어들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부끄럽지만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었기에 더디게 책장을 넘겼다.

읽는 내내 지금까지 전쟁을 다룬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거리 사격밖에 되지 않는 아군과 적군의 무기 상태, 구령이나 지시를 알려 주는 장교, 조금 더 현실적으로 무기 다루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주인공의 요청을 피하는 상급관, 전쟁에 큰 관심이 없는 국민들까지 그동안 전쟁 장면에서의 긴박한 상황과는 별개로 주변 인물들이 참 평화롭게 보였다. 심지어 주인공은 꽤 오랜 시간을 전쟁터에 있었음에도 총도 제대로 쏠 기회가 없었다는 내용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보통 허구의 소설이든, 르포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든 전쟁이 주제가 되면 참혹함이 활자로 표현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총탄이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동료는 적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주인공은 결국 의지했던 동료를 잃어 슬픔에 빠지는 장면과 전쟁 자체에 익숙해진 나머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주인공의 변화 등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작품은 편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들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쥐와 배설물들이 가득한 마굿간에서의 취침, 제때 수급이 되지 않았던 빵과 식품들, 낡아 보온의 기능조차도 되지 않았던 군복 등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등의 이념 간 갈등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부분이 가장 참혹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나누었던 이방인들과의 연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긍정적인 감정 또는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으로 인간적인 공감이 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권력과 정치에 대한 반감이 가장 강하게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이 대단한 작품을 온전히 이해한 것이 맞는지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자괴감이 느껴졌다. 이름 모를 씁쓸함이 주위를 맴돌았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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