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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 '하빌리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시기에 가나는 몇 번이고 '운명의 사람'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치곤 했다. / p.18
인생에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오죽하면 인생은 B(Birth)+C(choice)=D(Death)라는 말이 있을까. 그런데 선택을 참 싫어하는 편이다. 점심 메뉴를 묻는 상사의 질문에 이것조차도 답답함을 느끼고, 책을 결제하는 순간에도 읽을 수 있을지 온갖 고민을 하게 된다. 세상이 정해진 것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결정이 어려운 나에게는 그것 또한 재미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일본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사실 작가는 처음 접한다. 번역가 선생님을 보고 선택한 책이었다. 그동안 일본 소설을 참 많이 읽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 <졸업> 등의 많은 작품들과 인상 깊었던 츠지 히토나리의 <한밤 중의 아이>에 이르기까지 일본 작품의 절반은 읽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소재와 평균 이상의 만족도를 가졌기 때문에 고민도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렸다. 모두 언급한 것처럼 선택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어느 한 순간의 선택으로 주인공은 삶을 살아가기도, 또는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들이 전반적으로 일생을 다루는 큰 선택은 아니었다. 어쩌면 두고두고 생각할 정도의 선택이었는데 과연 작품에 드러난 주인공들은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로 삶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전반적으로 술술 읽혀졌지만 편차가 크게 다가왔다. 일상적으로 공감이 크게 다가왔던 작품도 있었지만 일부 작품들은 애매하게 SF 소재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머릿속으로 그리기 어려웠다. 심지어, 읽고 난 이후에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지 주인공의 생각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줄거리 자체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작품이었다. 완독까지 두 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개인적으로 <후지산>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화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작가인 한 남자를 만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여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남자와 결혼할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남자와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기차 여행 도중 지나가는 한 아이의 시그널을 보고 돕고자 하차한다. 반면, 화자의 도움에 이를 거절했고,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화자는 남자의 소식을 뉴스로부터 접한다.
사실 크게 눈에 띄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하게 다가왔는데 결말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선의'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화자의 행동도 맞고, 결말에 닿은 남자의 행동 또한 화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 순간에 아이의 시그널을 읽고 내린 화자와 다르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남자의 선택이 그 상황에 이른 것이다. 어쩌면 같은 상황에서 왜 선택이 다른 것일까. 곱씹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불호에 가까웠던 작품 역시도 뇌리에는 크게 박힐 듯하다. 소재 자체는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급한 것처럼 '왜 굳이 저런 생각을 해?'라는 반문이 터지기는 했다. 일상적이지만 이러한 소재나 내용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선택에 대한 무거움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선택은 어렵다. 아니,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