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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완전 범죄
호조 기에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11월
평점 :


모든 일이 예상대로 흘러간 날은 기분이 좋다. / p.11
이 책은 호조 기에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원래 소녀와 범죄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더욱 강조된 제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복수하는 소녀와 유령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생겼다. 그동안 이 출판사의 신간들을 종종 읽으면서 꽤 괜찮은 작품들을 만났기 때문에 이번 신작도 크게 부담감 없이 선택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오토하라는 인물이다. 빈집에서 부모님께서 기이한 모습으로 살해당했고, 형사인 이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께서 마지막으로 만나려고 했던 완전 범죄 청부사인 구로하가 추락해 유령이 되었는데 유령을 보는 능력이 있던 오토하는 구로하를 찾아가 부모님을 죽인 범인을 함께 찾자고 제안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부모님과 구로하를 죽인 범인, 그리고 오토하와 구로하의 공조를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초반에 500 페이지가 넘는 작품이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초반에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여서 한 번의 흐름에 완독이 가능했다. 그동안 일본 장르 소설을 많이 읽는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네 시간 정도 소요가 된 듯하다.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읽기에 좋았다.
개인적으로 오토하라는 인물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소설에서 오토하는 초등학교 6학년의 여자아이로 등장한다. 그런데 하는 행동이나 구사하는 말들이 약간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학생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형사인 이모와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추리하고, 무례할 정도로 구로하를 가볍게 대하기도 한다. 그 지점에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일본 소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조금 인상적으로 남았다. 마치 어렸을 때 일본 만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부분이 약간 호불호가 갈릴 요소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호와 불호 그 딱 중간 선상에 있었고, 의식하지 않는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이러한 분위기는 오토하로부터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어서 주인공이 가장 눈에 잘 들어와던 것 같다.
독서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밸런스 게임으로 '70 % 남았는데 결말이 드러나기 vs 95 % 남았는데 아직 결말이 드러나지 않기' 이런 류의 내용을 가진 SNS 그림이 있다. 그동안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일이 없었는데 속도감 있는 전개로 70~80 % 사이에 뭔가 흐름이 마무리로 흘러가서 당황스러웠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다시 갑자기 스토리가 전환되었는데 결말에 이르러 장르 소설의 내공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