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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울은 그의 본질적인 영혼이자 가장 순수한 자아다. / p.218
이 책은 조이스 캐럴 오츠라는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단편소설이 실린 작품집까지 합치면 꽤 많이 읽었던 작가 중 한 사람인 듯하다. 우선, 단편소설집으로는 세 번째다. <카디프, 바이 더 시>, <인형의 주인> 이렇게 두 권을 읽었는데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웠다.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들이어서 본질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작품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작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열두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몇 장으로 짧게 끝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챕터로 따로 빼야 될 정도로 꽤 큰 부분을 차지한 작품도 있었다. 전반적인 소설의 내용들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고통과 감정으로부터 드러나는 공포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자살을 생각하는 작가, 아이를 모니터로 관찰하는 엄마, 성범죄를 저지른 어른에게 복수하는 아이들 등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술술 읽혀지면서도 어려웠다. 이렇게 작품을 많이 접했다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예전에 비해 더 잘 읽혀진다는 것뿐 어려운 것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독서를 하면서 가장 약점으로 생각하는 상상력이 많이 요구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만 등장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광적인 감정들까지 머릿속으로 그려내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이틀에 나누어 완독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자살자>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에 등장한 화자는 작가이다. 그러면서 자살을 꽤 오랫동안 생각하고 준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웬디라고 불리는 아내가 있는데 화자를 실시간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정신과에서 전기를 비롯해 다양한 치료를 받는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자살하려는 욕망, 보호자를 향한 삐뚤어진 감정, 더 나아가 유서에 대한 고민 등을 잘 표현한 내용이다.
불안정한 심리가 너무나 잘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성향을 토대로 작품을 썼을 수도 있겠지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읽는 사람마저도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정도로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거기에 이 단편소설집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읽어도 끝이 없었다. 그런데 이 지점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불쾌한 작품을 끝까지 읽은 적이 있었을까. 애초에 이런 감정을 경계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회피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랜만에 느끼는 찝찝한 감정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허무맹랑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허구의 세계에서 넘어온 공포보다는 현실의 불안이 뒤섞인 공포가 때로는 묵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