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조각
이다 투르페이넨 지음, 정보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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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멸종에 관한 생각은 매혹적이면서도 끔찍하고, 사람들은 과거의 맹수들에게 질릴 줄 모른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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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의외의 주제에서 인간의 오만함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바로 생물을 대하는 태도다. 왜 인간은 너무나 당연하게 지구의 주인이자 최상위 포식자인 것처럼 구는지 늘 의문이었다. 지구가 마치 우리의 집처럼 돈을 주고 거래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늘 지배자처럼 행세했다. 인간이 지배욕을 드러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게 국가 사이의 전쟁일 수도, 환경 파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이 들 때마다 공포와 회의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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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했던 이 작품은 이다 투르페이넨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처음에는 정보를 모르고 동물의 이야기라는 문구만 보고 선택했다. 책을 손에 쥔 뒤 인터넷 서점에서 북유럽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북유럽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스웨덴 국적의 작가인 리사 리드센의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의 <정직한 사기꾼>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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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멸종한 동물을 중심으로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학자인 스텔러가 항해 연구 중 인어로 착각할 만한 동물과 마주친다. 바다소 덕분에 배 안에서 위기에 처했던 선원들은 바다소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이후 그 동물에게는 스텔러바다소라는 이름을 붙는다. 두 번째는 총독 푸르옐름과 그의 부인 안나가 알래스카에 정착하며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다. 세 번째는 스텔러바다소를 찾으려는 노르드만 교수와 조수 올손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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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소설의 시점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 중편 세 편을 묶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물들이 각 시점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부분마다 중심인물이 달라서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했다. 거기에 생물과 역사를 다루는 만큼 관련 지식이 있었다면 더 수월하게 읽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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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텔러바다소를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스텔러바다소를 직접 만난 이는 첫 부분의 스텔러와 선장뿐이었지만, 각자 다른 의미로 그 생물체를 보고 있었다. 스텔러는 이 동물을 발견하고 애정을 품게 된 인물이다. 총독 푸르옐름은 교수의 부탁으로 이 생물의 흔적을 찾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가졌다. 반면, 노르드만과 올손은 누구보다 찾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스텔러와 또 다른 결의 애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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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 때문에 가장 빠르게 사라진 이 동물의 이야기가 단지 허구의 세계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알지 못하는 지구 한구석에는 수많은 스텔러바다소가 있을 것만 같다. 아니,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마음 졸이며 그들을 지키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여전히 무심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한숨을 내쉬게 된다. 같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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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병동 -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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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른 의사는 다들 환자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 있을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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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에서 자료 화면으로 자주 쓰이는 프로그램이 하나 기억에 남는다. 이휘재 님이 출연했던 <인생극장>이라는 코너다. 두 가지 상황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렴풋이 간접적으로 접한 프로그램이지만 무언가 선택할 때마다 머릿속에 그 장면이 재생되고, BGM을 흥얼거리고 있다. 이게 바로 세뇌의 힘인 듯하다. 대한민국의 어른이라면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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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가키야 미우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지금까지 작가의 작품 세 권을 읽었고, 소장하고 있는 작품도 몇 권 있다. 대부분 중년의 여성이 등장해 가부장적인 면을 깨부순다. 다른 작가에 비해 주제나 주는 메시지가 꽤 명확해서 자주 찾게 되는 편이다. 이번에 개정판 소식을 접했는데,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과는 결이 달라 새로운 기대감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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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근무하는 루미코다. 의술보다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환자와의 라포 형성이다. 말기 암 환자에게 약이 효과가 있다면 평온하게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다. 그런 루미코가 우연히 환자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청진기를 손에 넣는다. 환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른 선택으로 갈 수 있는 청진기. 청진기를 통해 만난 네 명의 환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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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청진기는 현실에 없지만,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이 무척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좋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후회라는 점에서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책 두께가 무색하게 국수처럼 후루룩 넘어가서 금방 완독했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고민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아마 큰 공감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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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루미코가 성장하는 서사가 인상적이었다. 루미코는 분명 악한 사람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폭언이나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번번이 말실수로 민원이 접수되거나 동료 의사들에게 좋지 않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 청진기를 접하게 되면서 조금씩 사람의 마음을 읽기 시작하고, 공감의 방법을 터득해 간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장겨울 선생과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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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다른 길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 길이 결코 정답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배우를 꿈꾸던 사토코에게 펼쳐진 것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감시카메라 같은 대중의 시선이었다. 또한, 지토세가 반대했던 딸의 남자친구는 믿음직한 사위가 아닌 돈만 축내는 남이었다. 아마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가지 않았던 그 길은 꽃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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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두발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8
카렐 차페크 지음, 정보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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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은 깨지지 않으면 천천히 녹는 법이지.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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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일까. 그 흔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조차 진짜 밥을 먹을 사이가 아니면 굳이 내뱉지 않는 편인데, 예전에 회사 상사로부터 입에 발린 말도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에도 인색하다. 스스로 솔직하다고 자부하지만, 속에 있는 말을 굳이 겉으로 내뱉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이를 앞뒤가 같다고 할 수 있을지 일말의 죄책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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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내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이 책은 카렐 차페크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고전 소설을 조금씩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작가다. 이전에 <평범한 인생>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해 그대로 반납반 적이 있다.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작가에게는 계속 관심이 있었다. 최근에 정보라 작가님이 번역한 '철학 3부작 시리즈'로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그 중 한 권인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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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호르두발이다. 미국에서 팔 년을 일한 호르두발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다. 호르두발의 기대와는 달리, 가족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폴라나는 환영은 커녕, 단답만 할 뿐이다.심지어, 딸은 아버지를 낯선 남자로 생각해 피한다. 호르두발은 가족들의 냉대에 괴로워하면서도 가장이라는 무게를 여전히 견디고 있었다. 그런 호르두발이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발견된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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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지만 오래 붙들게 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스토리의 흐름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책이 비교적 얇은 편이어서 평소 독서 속도라면 한 시간 내외로 충분히 완독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사흘 정도 소요되었다. 주인공에게 몰입하다가도 자꾸 책장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서사를 따라가며 사색하기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철학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무게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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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작품의 시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다가 시점을 따져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독자의 입장에서 호르두발에게 몰입하면서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겼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기에는 거리감이 있고,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하기에는 호르두발이 죽은 뒤의 이야기나 다른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했다. 이 부분이 독자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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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심지어, 스스로의 마음조차도 모르는 인간이기에 그럴 가능성조차 없을 것이다. 호르두발은 마음을 다해 가족을 생각하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었다. 폴라냐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그는 살았을까. 인간의 삶처럼 마음 역시도 결말을 짐작하기 어려운 법이다. 어쩌면 인간에게 앞뒤가 같다는 말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전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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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농원 술래잡기 ㅣ 은행나무 시리즈 N° 25
정기현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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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있어야 할 것을 있어야 할 자리에.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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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발 붙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훨씬 더 공감한다.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현재의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어 늘 감상을 남긴다. 예전에는 이런 이유로 소설이 아닌 비문학 계열의 책들을 즐겨 읽었다. 비교적 직관적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장르를 불문하고 읽다가, 소설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소설의 세계도 누군가에게는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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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게 다가왔던 이 책은 정기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보다는 출판사 편집자로 더 익숙한 분이라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고, 출간된 작품도 꾸준히 찾아 읽었다. 단편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과 경장편 <이웃집의 탐스러움>에서는 그동안 매체로 접했던 작가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서 인상 깊었다. 이번 신작도 큰 기대를 안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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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세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기정이라는 인물이다.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되는 향주는 작은 시골 동네로, 살구나무를 많이 재배하는 듯하다. 우연히 미용실에서 마주한 이후로 자주 만나게 되는 선열, 과수원 주인 박정김, 신문 스크랩이라는 이상한 업무를 맡기는 세무사 문종일 등 기정을 둘러싼 인물들, 그리고 향주에서 벌어지는 살구나무 절도 사건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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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술술 읽혔지만, 조금 난해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배경이 비교적 고정되어 있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행동만큼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종잡기 어려웠고, 이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데 한참 걸렸다. 밝고 통통 튀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이야기가 뜻밖의 재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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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바로 그 인물들의 행동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젊은 여성, 시골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노년의 여성, 살구나무를 키우는 남성, 머리숱을 걱정하는 미혼 남성까지 배경만 놓고 보면 이들은 그저 지나가는 시민일 뿐이다. 그런데 배경 너머로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같이 이상하다. 익숙함과 기괴함 사이에서 내내 뭐라 말하기 애매한 감정이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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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일상 속의 뒤틀린 비현실. 평범한 인물들이 벌이는 일들은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 가상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익숙해질 즈음,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일도 기정이 맞닥뜨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결국 인생은 살구 농원의 술래잡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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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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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희생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국가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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