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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그는 죽음에 가까웠으므로, 나는 그 어떤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 p.12
이 책은 저스틴 토레스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다른 무엇보다 퀴어 문학이라는 띠지 문구에 꽂혀 선택하게 된 책이다. 평소 한국 문학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퀴어인데 최근에 읽었던 아사이 료의 <생식기>처럼 읽다 보니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꽤 많았다. 영미 문학에서도 읽은 기억은 있는데 임팩트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기대가 되었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화자와 노인 후안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정신질환을 수용하는 시설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동성애자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후안은 죽음을 앞두고 화자에게 '성적 변종들'이라는 책에 지워진 검은 줄을 찾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화자의 이야기, 그리고 후안의 이야기, 더 나아가 성적 변종들을 연구했던 잰 게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종교와 설화,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특히, 화자가 푸에르트리코 이민자라는 점에서 이민자 문화나 동양인으로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동안 읽었던 퀴어 문학과 결이 다른 편이어서 서사가 이해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4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품인데 이틀에 걸쳐 완독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형식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화자, 후안, 잰 게이라는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는데 마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중간마다 '성적 변종들'의 내용이 검은 줄로 그어진 채 수록되었고, 연구에 응했던 성 소수자들의 사진, 그것과 관련된 그림 등 논픽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흘러갔다. 어렵지만 끝까지 완독한 이유도 형식이 주는 사실감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았던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대학교 학부 시절, 전공 시간에 정신질환 구분을 배우면서 한때 동성애를 병명으로 분류가 되었다는 내용을 들은 기억이 있다. '성적 변종들'을 연구했던 잰 게이 역시도 레즈비언이었는데 그 연구 안의 내용들은 동성애를 정신질환 그 이상으로 낙인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잰 게이 이후의 의사들에 의해 드러난 결과이지만 이 또한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성 소수자의 이야기가 유튜브나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이다. 언급한 것처럼 문학에도 퀴어 소재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의 사랑은 사회로부터 벽이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소설과 연관지어 표현하자면 암전이 조금 걷힌 것뿐, 완전히 밝아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언제쯤 본연의 사랑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사회가 될까. 책을 덮고 나니 일반과 정상 여부를 떠나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