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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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가 나타났는데 그대로 세 명이라는 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네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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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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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리아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 p.360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어에 대한 나름의 합리화를 하면서 공부를 멀리 했었던 것 같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항심이 들면 어차피 대한민국에서만 살아갈 사람이기 때문에 굳이 집중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국어에 취미를 가지고 있었냐고 물으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마치 초등학교 일기에 대통령이 되면 시험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적었던 것과 비슷한 결이었다.(우연히 프로그램에서 모 아이돌 그룹의 멤버의 일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띠동갑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 그 멤버의 일기를 보니 세대를 초월해서 학생들은 공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지 않겠다는 반항심으로 버텼던 내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 사회복지사로서 맞이한 직장이 공교롭게도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는 현장이었다. 그들은 한국어가 되지 않고, 나는 그들의 언어가 되지 않으니 그나마 종이 한 장 수준의 영어와 몸짓을 섞어가면서 니즈를 파악하거나 소통했었다. 언어의 장벽도 문제겠지만 도저히 내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화로 인한 딜레마로 초반에는 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문화권의 그들보다는 같은 문화권을 공유했던 일부 한국의 동료들이 더 싫어졌다.

이 책은 앤패디먼의 문화 차이에 관한 인문학 서적이다. 아무래도 일했던 현장의 영향이 있기에 평소에도 문화 충돌이나 갈등에 관한 책을 최대한 보려고 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다른 문화가 참 새로우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왔지만 공부할수록 대한민국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기는 어려움들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맥락으로 주저없이 책을 읽게 되었다.

라오스의 한 부족인 몽족은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왔던 민족이다. 물론, 그들이 원했던 이주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으로 터전을 찾아 떠났거나 쫓겨났다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푸아와 나오 카오 역시도 이주를 하는 몽족의 부부이다. 이 부부는 목숨을 걸고 이주를 해오면서 많은 자녀들을 잃었다.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자녀들 중에서 책의 주인공이자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가 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리아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이다.

뇌전증은 몽족의 언어로 코 다 페이라고 부르며, 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뇌전증의 경련이 생길 때마다 '다'라고 불리는 영혼이 리아를 붙들어서 증상을 보인다. 이는 혼을 잃어서 생긴 문제이며, 리아가 이러한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은 리아의 언니 중 한 명이 문을 쾅 닫는 바람에 리아의 혼이 겁을 먹고 몸에서 났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몽족은 나름의 민간요법으로 리아를 치료해왔다.

리아는 미국의 머세드 군의 MCMC라는 병원에 가게 되었다. 몽족의 비중이 높아 보이기는 했지만 의사들은 몽족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고, 리아의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듯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리아를 성심성의껏 치료했지만 푸아와 나오 카오는 의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들을 신뢰할 수 없었다. 리아에게 경련이 일어나거나 상태가 심각해지는 것은 의료진들이 약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 치료를 한다는 이유로 옷을 벗긴다거나 스킨십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병원의 관계자들이 보기에 리아의 가족들은 그야말로 아동 학대를 하는 부모이다. 거기에 병원에서 민폐를 끼치는 까다로운 환자 가족들이기도 했다. 의료진이 권고하는 투약 지침을 지키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되는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고 했다. 거기에 이것은 증상이 아닌 문제로 치부해 몽족의 치 넹이라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거나 돼지, 소 등의 가축을 도살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아동 학대로 신고했고, 일정 기간의 가정위탁 조치가 내려져 리아와 부모는 떨어져 살기도 했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오해와 의사소통의 부족이었다. 의사로서 환자의 증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들의 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반대로 리아의 가족들은 미국의 의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두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리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의료적인 윤리에 초점이 맞추어 있지만 사회복지의 시각에서 조금 더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내용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이민자 정책은 용광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문화에 동화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하는데 리아 가족 사례를 보면 그런 부분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미국 사회는 몽족의 문화를 이해하거나 인지하기보다는 미국의 문화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적응자로 본다. 물론,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아는 지식인의 경우에는 전문직이나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에서 나름의 적응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부분들이 마음이 아프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온전히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다른 문화 자체를 인정해 주는 마인드가 필요할 듯했다.

개인적으로 몽족과 병원 관계자 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 중 몽족은 전쟁에 참전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배척하고 있는 미국 병원 사람들과 사회에 불만을 보이고, 병원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리아를 치료하고 있음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리아의 부모에게 서운함을 내비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둘 사이의 이해 관계가 없는 제 3자로서는 두 입장에 모두 이해가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버랩처럼 보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언급했던 미국의 동화 모형이다. 대한민국 역시도 결혼이민자를 비롯해 대한민국 사회로 들어온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느낀다. 고유 문화를 유지하면서 존중해 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문화에 적응해 주기를 바라는 점이 그렇다.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문화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들의 시선보다는 대한민국의 시선으로 문화를 교육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에서도 리아 가족의 사례처럼 많은 문제점들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미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정책에 대한 자국민들의 태도이다. 내용에서 몽족의 지원금이나 정책 확대를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일부 등장한다. 책에서 벌어진 일들이 너무 피부에 와닿았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뉴스 기사만 보더라도 자국민들 중에서 못 사는 사람들이 넘치는데 왜 다문화가정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댓글이 많이 보인다. 이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복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도 이해가 가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최소한의 복지 정책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내용을 보면서 약간 씁쓸했다. 아마 관련 직종에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처럼 반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몽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였다. 병원의 관계자들을 비롯해 미국 사람들은 몽족에 대해 오해한 부분들이 많았다. 일할 의지가 없는 게으른 사람들, 더러운 사람들 등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리아의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랬기에 병원에서도 까다로우면서 답답한 환자 가족들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해 리아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낸 미국인들은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인 양육자들이었으며, 국가의 보조보다는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문화에 대한 적응이 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에 서툴었을 뿐이었다고 보였다. 이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라별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남아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 중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오해한다. 그동안 경험한 바로 대한민국 사람들도 개인마다 성향이 다른 것처럼 그들도 성격이 제각각 다 달랐다. 

리아의 사례를 보면 서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되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것처럼 다른 문화권의 사람 역시도 문화 자체의 특성을 인정해 주는 자세 말이다. 어디까지나 서로의 문화에 대한 정보 부재로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미국과 몽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해한다면 좋겠지만 인정이라도 해 준다면 조금이나마 나은 사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이고, 공감이 되었던 내용을 주제로 한 책이다 보니 안 그래도 두꺼운 분량이 더디게 읽혀졌다. 이는 문화 차이로 벌어진 안타까운 일에 대한 답답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깊게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눈으로는 술술 읽힐지 모르지만 머리로는 개인적인 과거에 대한 딜레마들이, 마음으로는 뭔가 묵직한 답답함이 가득 채워졌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단순한 인문학 도서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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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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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 p.37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언급된 동물을 하나 선택한다면 고래가 아닐까 한다. 얼마 전 종영한 인기 드라마의 영향으로 고래를 자주 듣게 된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워낙에 스테디라고 불릴 정도이므로 제외한다면 말이다. 고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 주위에서 고래를 주제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다 보니 드라마를 볼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 그 드라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래의 기역이 나오는 순간 침묵 상태에 이른다.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고래가 아닌 실물의 고래를 보게 된 것은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로 기억한다. 그동안 수족관이 있는 큰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지역에 아쿠아리움이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에 같은 도내에 아쿠아리움이 생기면서 그때 처음 방문해 고래를 실물로 영접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처럼 감탄사만 내뱉었던 것 같다. 그게 현재 기준 처음이자 마지막 고래를 본 순간이었다.

이 책은 허먼 멜빌의 고전 소설이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래라는 공통 주제를 나누게 되면 무조건 나오는 소설이어서 언젠가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사실 책을 실물로 받자마자 어마어마한 두께에 잠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요즈음 나름 뜨거운 소설 중 하나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이슈메일로 고래를 위해 배를 타는 남자이다. 여관에서 식인종 부족의 작살잡이 퀴케그를 만난다. 야만인이라는 말에 고민을 했던 것도 잠시 이슈메일은 그와 함께 잠을 청했고 결국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둘은 고래잡이 배를 알아보던 중 피쿼드 호에 승선한다. 그곳에서 한쪽 다리가 없는 선장인 에이헤브, 항해사인 스타벅과 스터브 등의 선원들과 함께 고래잡이에 나선다.

각각의 승선한 이유는 달랐지만 에이헤브의 목적은 분명했다. 에이헤브는 모비 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당해 한쪽 다리를 잃었는데 이를 복수하는 것이었다. 모비 딕을 향한 복수와 분노, 그걸 넘은 광기를 가진 인물이었다. 스타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쿼드 호는 모비 딕을 사냥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사실 내용만 보면 일반 책 분량 정도면 충분히 서술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읽는 내내 크게 두 가지의 갈래로 나누어 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는 모비 딕을 사냥하기 위한 이야기이다. 내용 안에 에이헤브의 광적인 집착과 다른 배들에게 모비 딕의 존재를 묻는 여정 등이 포함된다. 여정 속에서 아들을 찾는 선장, 에이헤브처럼 고래의 공격으로 팔을 잃은 선장의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함께 무언가에 미친듯이 집착을 하게 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감이 눈에 보이지도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식인종 부족의 퀴케그가 동료 선원을 목숨 바쳐 구하는 모습과 에이헤브의 매정한 모습은 상반되었다. 인간의 선악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고래잡이 이슈메일의 이야기이다. 모비 딕을 향한 여정에서 보면 화자가 이슈메일이기는 하지만 그냥 관찰자의 느낌으로 보였다. 모비 딕을 잡는 그 고군분투의 상황에서도 이슈메일이라는 이름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스스로 이슈메일이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선원이나 다른 누군가가 이를 부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 첫 문장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화자 이름도 모르고 읽을 뻔했다. 그만큼 바깥 배경으로는 존재가 없다고 느껴졌던 이슈메일이 전문가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순간이 고래잡이와 고래에 대한 언급을 할 때이다.

모비 딕이라는 이 제목에 부제를 하나 붙인다면 <고래잡이 안내서>로 적고 싶다. 마치 고래 전문가인 것처럼 크기에 따라 고래를 분류하고, 고래의 습성과 고래잡이 어선의 구성 요소 등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지 못했을 방대한 자료를 이야기한다. 모비 딕의 대부분의 분량은 여기에서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이슈메일이 항해사나 전문 직급을 달고 있는 선원이 아닌 말단 선원 중 한 사람인데 그만큼 고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약간 의문을 하나 덧붙이자면 고래의 신비함을 말하면서 고래를 잡는다는 게 조금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철학, 신화, 종교, 역사 등 너무 광범위한 배경 지식이 등장해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거기에 두께도 보통 읽는 소설의 두 권 정도 분량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고래잡이 소설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존재와 살아가는 이유, 삶 등 다양한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의 악으로서 칭하는 에이헤브와 인간의 선에 서는 스타벅의 구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읽는 내내 모비 딕이라는 존재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고민했다. 개인적인 시각이지만 모비 딕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에이헤브는 자신이 반영되지 않는 운명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이를 거스를 수 없었다는 것이라고 보여졌다. 더 깊이 판다면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해제에서는 철학적, 사회적, 종교적, 심리적 등 다양한 의미로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저자인 허먼 멜빌이 살았던 시대 배경 자체를 처음 접하다 보니 큰 해석보다는 스스로 구축한 존재가 더욱 와닿았던 것도 있다. 

인생 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슈메일이 떠오를 듯하다. 다방면의 지식이 쌓였더라면 더욱 크게 와닿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인생 소설이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아쉬움은 남지만 두께만큼이나 큰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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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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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원고 도난 사건이라고 하니 소재부터 관심이 갑니다.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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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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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멈추지 않았나. / p.119

책의 제목인 나의 차가운 일상을 딱 처음 들었을 때 의문이 들었다. 반면, 바로 전에 읽었던 미스터리한 일상의 경우에는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일상에 발생했다는 것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차가운 일상이라는 것은 어떻게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겨울이어서 날씨가 추우니까 차가운 일상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주변 사람이 쌀쌀맞게 대해서 마음이 차갑다는 뜻인지 등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차갑다는 말의 반대말인 뜨겁다로 보면 또 쉽게 의문이 풀린다. 사람들의 배려와 감동으로 마음이 뜨거운 순간을 떠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따뜻하다거나 뜨겁다는 말은 그래도 뭔가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차갑다거나 춥다는 말은 왜 이렇게 괴리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장편 소설이다. 바로 이전에 미스터리한 일상이라는 단편집을 읽었는데 나름 만족스럽게 읽었다. 또한, 초기 장편 소설이라고 하니 이것 또한 기대가 됐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제목 자체에서 주는 의문이 있었기에 왜 화자는 차가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화자 와카타케 나나미는 여행을 하던 중 기차에서 만난 한 이치노세 다에코라는 여성을 만난다. 다에코는 초반부터 남자 친구와의 대화로 나나미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다에코를 보면서 계속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이후 다에코가 나나미의 옆자리로 와 앉아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렇게 다에코와 남자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나나미와 하루를 같이 보낸다. 이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만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하게 되었는데 다에코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나나미는 다에코의 자살 미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하나의 수기를 받고, 또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수기의 경우에는 누나라고 칭하는 한 사람이 했던 극악무도한 범죄가 적혀 있었다. 나나미는 다에코가 자살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기를 보낸 사람과 수기의 주인공, 다에코에게 해를 가한 범인을 찾는다. 그렇게 하나는 다에코의 자살 미수 사건을 쫓는 나나미의 시각으로, 또 하나는 다에코의 시각으로 벌어진 회사에서의 사건들. 거기에 수기를 보낸 화자의 편지의 입장으로 소설에서는 크게 두 가지 사건과 세 가지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전개가 되는 듯하다.

처음에는 나나미의 행동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나미에게 다에코가 크게 인상에 남았던 인물이기는 하지만 감정을 깊게 나눈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인데 그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이를 파헤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많이 망설이게 될 것 같다. 물론, 당시 그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하면 바로 돕겠지만 말이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뭔가 감정의 교류가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친구라고 생각하는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의 퍼즐을 찾아가는 게 꽤 의문스러웠다.

거기에 나나미가 이렇게 다에코 자살 미수와 다에코의 직장에서의 살인, 수기의 주인 등 다양한 사건들을 파헤치는 게 탐정의 면모로서 다가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에코의 일기나 주변 흔적들을 토대로 유추는 할 수 있겠지만 나나미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친한 친구라고 속이면서 다에코의 회사 동기들이나 용의자들을 하나하나 인터뷰 또는 추궁을 하는 식으로 퍼즐을 맞춰 나간다. 보수만 받지 않을 뿐 누가 봐도 탐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수기를 보낸 화자의 편지가 가장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는데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면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극악무도한 행동이었다. 초반에는 세상 사람들은 다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어긋난 신념과 어머니로부터의 학대로 반인격적적인 성향을 띄게 된 것에 인간으로서의 연민이 들기도 했었지만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그야말로 악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신의 생물학적 지식을 활용해 흰독말풀로, 화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비소로 독살을 하는 행동을 말이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던 부분도 있었는데 여성의 우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등장 인물들의 말들을 통해 등장한다. 화자인 나나미 역시 여성의 우정은 그림의 떡과 같다고 표현하면서 진정한 우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남자의 우정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말이다. 순간 읽을 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녀노소 깊게 마음을 나누는 우정은 있을 수 있는데 왜 이를 폄하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나미가 다에코를 위해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는 자체가 이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우정으로 이렇게 동분서주를 하면서 친구에 대한 오해를 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나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친한 친구라는 거짓말을 하기에 이들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나나미가 하는 행동과 말 자체가 우정이라는 게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듯했다.

바로 전에 읽었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비교해 보면 이 소설이 더 내 스타일에 가까웠다. 미스터리한 일상에 비해 술술 읽히기도 했었고, 나나미의 시각에 이입되어 추리 소설 특유의 긴장감이 훨씬 더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해의 장벽이었던 일본 문화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어서 더욱 만족감이 컸다. 단편 소설의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유독 차가운 일상에서의 조금 인물들의 빌드업이 나쁘지 않았다. 

제목의 차가운 일상이라는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따뜻함이라는 게 지워지지 않는다. 인물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시니컬하게 느껴져서 차가운 인상을 주기는 했지만 나나미의 시점만 놓고 본다면 은근한 뜨거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차가운 일상이었기에 눈에 띄었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악한 본성과 관계의 믿음을 동시에 와닿았던 소설이자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와카타케 나나미 소설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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