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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 ㅣ 소설Q
박서련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그러니까 놀랍게도 우리는…… 마법소녀의 민족이다. / p.193
추억팔이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만화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만화에 큰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세일러문조차도 본 적이 없고, 다른 만화는 이름조차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은 검정 고무신이나 둘리 정도의 누가 봐도 아는 만화 이름을 댈 뿐이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어렸을 때 내 친구들의 꿈 중 하나는 마법사였다. 매직 키드 마수리의 목걸이와 불빛이 나는 요술봉 등 이걸 가지고 말도 안 되는 마법을 펼치겠다던 친구들. 사실 그 흔한 마술봉과 목걸이는 없었지만 나중에 크면 투명 망토를 개발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그것 또한 마법의 능력이라고 하면 나도 마법사가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박서련 작가님의 마법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전 작품을 읽게 만드는 작가님들이 조금 계시지만 그 중 하나가 박서련 작가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박서련 작가님의 소설을 도장 깨는 것이다. 아직 한 권밖에 안 읽기는 했지만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마법에 관심이 없었던 나의 추억을 소환하지는 않겠지만 제목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주인공은 금은방을 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시계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스물아홉 살의 백수이다. 직장인의 삶을 살다 전염병의 영향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신용카드 빚이 있지만 이를 갚을 능력이 없었고, 자살을 결심해 새벽에 다리로 간다. 거기에서 택시를 타고 나타난 아로라에게 시간의 마법 소녀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아로라와 함께 동행한다.
마법 소녀라는 내 한정 독특한 소재와 함께 피식 웃게 되는 문체와 캐릭터, 현실적인 인물 묘사, 200 페이지 분량의 짧은 이야기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법 소녀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없는 분야에 상상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 순식간에 읽혔다. 특히,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내 코드와 맞아서 피식 웃게 되었다.
읽으면서 주인공에게서 생계형 마법 소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용카드의 리볼빙이라든지, 마법 소녀의 임금을 생각한다든지, 하는 부분에서 마치 연봉으로 직종을 선택하는 현실 모먼트의 향기가 느껴졌다. 마법이라는 자체가 판타지스러울 것이라는 예상과 반대로 주인공의 설정 자체가 너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몰입하기에 좋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 일자리를 잃었던 사람들, 신용카드의 할부금을 갚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다고 느낄 내용이었다.
내용을 비틀어서 생각해 보면 마냥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선한 곳에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실업 청년들의 불안한 현실, 환경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의 연대, 가정 폭력 등 마법 소녀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지만 그 안에 펼쳐져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배경이어서 더욱 공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내용을 깊게 풀어낸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생각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누군가는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로 전개가 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마법 소녀의 추억을 자극하는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아마도 마법에 대한 관심도 없었기에 개인적으로 안성맞춤 소설이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주인공의 암울한 현실과 다르게 통통 튀는 사랑스러움은 미소를 짓게 했다. 어렸을 적 드라마나 만화를 보면서 마법 소녀의 꿈을 꾸고 살아왔지만 어른이 된 지금 퍽퍽한 현실에서 답이 안 나올 때 주위를 환기시키는 느낌으로 볼 수 있는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