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밀도 - 나를 나답게 하는 말들
류재언 지음 / 라이프레코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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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어린 조언이 주는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 p. 22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사람으로서 항상 누군가 대화를 한다는 자체에 큰 걱정과 신경을 쓰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또는 실수를 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할 때도 있고, 심각할 때에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이 책은 류재언 변호사 님의 에세이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운 부류의 사람이 말을 센스 있게 하는 사람과 듣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대화의 밀도라는 제목이 가장 눈에 띄었다. 많은 사람들과 밀도 높은 대화를 하고 싶지만 그럴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서 조금이나마 배우고 싶어 선택하게 된 책이다. 

저자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누었던 대화와 그 대화로부터 받았던 감정, 그리고 얻었던 교훈 등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이기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페이지 수도 적고,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정도여서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읽는 속도와 달리 머리와 마음에 남는 여운이나 교훈들은 깊었다.

읽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묻는 저자의 질문에 진심을 많이 나누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던 교수님과 수학을 싫어했던 저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선생님, 노 키즈존이기에 아이들은 들어올 수 없다는 안내 대신 존중의 의미를 보였던 프랑스 음식점 이야기까지 등장하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참 인상적이었다. 저자에게 변화를 주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와닿는 지점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지점은 대화의 밀도라고 해서 상대방과의 배려와 태도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하며, 스스로에게 잘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조언들은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만큼 상대방의 가시 돋힌 말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는데 너무 상대방의 감정만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가족들을 향한 애정과 시선은 저자의 따뜻함을, 지인들에게 주었던 책 선물 열 권의 리스트로 저자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가까운 가족들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책 열 권을 하나하나씩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장기하 님의 <상관 없는 거 아닌가?> 라는 책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완독 후 바로 주문했다는 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책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또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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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준 너에게, 마지막 러브레터를
고자쿠라 스즈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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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방과 후에 꼭 들르는 곳이 있다. / p.24

학창시절에는 러브장이라는 게 유행했다. 여러 가지 그림과 고백 문구를 적어 사귀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한 권의 공책을 뜻한다. 연애한 적은 있었지만 상대방에게 받은 적이 없었고, 반대로 초등학교 때 마음에 두고 있던 아이에게 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러브레터보다는 러브장을 주고받았던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 꺼내기 힘들 정도의 흑역사이다. 

이 책은 고자쿠라 스즈의 장편 소설이다. 학생들의 러브 스토리는 끊을 수 없는 중독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머리에 그려짐에도 불구하고 막상 신간이 나오면 꼭 읽게 된다. 이 작품 역시도 일본 로맨스라는 점에서 예상되는 지점이 있었지만 일상에서 크게 느끼지 못할 설렘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르게 되었다. 기대보다는 흥미 위주의 선택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하라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으로 소극적이며, 못난 자신에게 큰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 듯하다. 소꿉 친구인 이치노세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그는 가장 친한 친구인 리쓰와 연애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남자와 사귀는 것도 모자라 예쁜 외모로 많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기에 리쓰에게 좋은 마음이 들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를 숨기고 소극적으로 분노와 질투를 삭힌다. 이런 아이하라에게 해방할 수 있는 공간과 책이 있다. 도서관에 마음이라는 이름의 소설. 교과서에 실린 문학이기에 아무도 손대지 않는 작품인데 어느 날 그 책에 편지가 온다.

읽으면서 두 가지의 감정이 들었다. 첫 번째는 편지가 주는 감정이었다. 편지를 쓸 때와 편지를 기다릴 때 조금은 결이 다른 설렘이 요동치고, 글자로 꾹꾹 눌러 담은 감정과 생각이 하나의 인연을 만든다는 점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러브레터가 주는 영향을 생각보다 꽤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소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하라는 얼굴과 목소리도 모르는 가토라는 사람을 편지 하나로 사랑하게 되고, 그의 편지를 내내 기다린다. 심지어 생전 하지도 않던 땡땡이를 치기도 한다. 러브레터가 주는 힘과 풋풋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사람과의 감정이었다. 주된 이야기는 가토와 아이하라의 편지이지만 그 안에서 풀어나가는 작은 사건과 결말이 있다. 아이하라는 이 비밀스러운 편지를 숨기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다. 리쓰에게 상처가 줄 말을 하게 되면서 힘들어하기도 하고, 결말 부분에 드러나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참 인상 깊게 보았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상상이 가능한 연애 소설이었다. 예상대로 흘러가며, 생각할 지점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편지가 그 책에 그것도 아이하라에게 올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중반에 이르러서 아이하라처럼 편지의 주인이었던 가토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추측하게 되었다. 가토라는 성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나름 편지의 인물과 비교하면서 읽다 보니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뻔하면서도 또 다른 재미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아마 요즈음 인기가 있는 일본 연애 소설에 흥미를 가진 독자라면 이 작품 역시도 크게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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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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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회의실은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 p.13

가끔 책을 읽으면서 괴리감이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느낄 때에는 대부분 하나의 경우로 수렴이 된다. 묵직함을 기대하고 펼친 소설에서 등장하는 어린 시절에 많이 읽었던 인터넷 소설이나 마치 옆에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서 등장할 법한 이모티콘과 신조어가 등장하는 순간이 그렇다. 적재적소에 사용된 표현이라면 재미가 배 이상으로 높겠지만 기억으로 그렇게 되었던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그 작품과 독자인 나와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덮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멜라니 블레이크의 장편 소설이다. 부제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평소의 스타일이라면 보자마자 넘겼을 테지만 묘하게 이끌렸다. 거기에 표지도 인상적이다. 호기심에 약해지는 사람으로서 이번의 경우에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욱 컸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소설은 팔콘만이라는 드라마로 시작된다. 한때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드라마로 꽤 오랜 시간을 시청자들과 함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청률이 반토막이 났다. 프로듀서 아만다, 작가 파라, 배우 캐서린 역시도 드라마와 동시에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남자들에 밀려 팔콘만도, 그리고 세 사람도 방송국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팔콘만을 살리기 위해 의견을 낸 결과, 상상하지도 못한 대책을 낸다. 그것은 최고의 악역 여자 캐릭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첫 장을 펴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흐름을 타기 전까지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의 크기와 두께에 겁을 먹었던 것이 첫 번째이며, 등장인물이 생각보다 많았던 탓이다. 기억력의 한계로 인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집중하기 힘든 편인데 과연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이 작품을 완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답이 없는 호기심이 원망스러워질 정도이기도 했다. 

흐름을 타고 집중이 되면서 그런 의문과 원망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자극적이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등장 인물들도 읽으면 읽을수록 어느 정도는 눈에 익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과연 팔콘만은 그들의 노력처럼 과거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그 지점이 궁금해졌으며, 이야기들은 그동안 소설에서 많이 보지 못한 형태로 흘러가서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여성 서사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초반의 설정부터 위기에 빠진 세 주인공은 남성에 밀려 커리어에 밀리는 위기를 겪는다. 심지어 새로운 빌런 캐릭터를 찾는 것 역시도 여성이었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막 나가는 캐릭터들이기는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점에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욕망 자체로만 본다면 조금 상식과 다르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방송가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동안 드라마를 통해 방송가의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볼 기회는 많았지만 소설로서 방송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특별한 이력처럼 방송가 사람들의 적나라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흥미로웠다. 약간 후일담을 듣는 느낌이기도 했다. 한때 방송 분야의 직업을 꿈으로 가질 정도로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재미있었다.

마치 마라탕을 먹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보았던 적이 많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맛의 음식을 찾는 것처럼 지금까지 곱씹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다른 소설과 다르게 재미 위주로 읽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스토리에 푹 빠져 스트레스를 날렸던 것 같다. 물론, 어느 지점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에 분노한다거나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제치고 흥미로운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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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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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는 해묵은 상처 같은 과거를 반추하며 렌지에 얽힌 기억을 떠올렸다. / p.12

소설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든 내용은 아마 아동과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재이다. 특히, 그들이 방치된다거나 학대의 대상이 될 때에는 더욱 버티기 힘든 면이 있다. 아무래도 복지사각지대나 약자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원래 그런 쪽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부하는 편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어두운 면들을 조금씩 보고 변화할 때에 세상은 조금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찾아서 읽는다.

이 책은 츠지 히토나리의 장편 소설이다. 전작들의 제목은 익히 봤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사실 작가의 이름은 초면인데 내용을 보고 선택하게 된 책이다. 일본 작품이기는 하지만 뉴스에서 보게 되는 내용이기에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만 읽어도 가슴이 아픈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렌지로, 동네의 마스코트이자 한밤중의 아이라는 별명을 가진 어린 소년이기도 하다. 호스트와 술집에서 일하는 부모님께 방치되어 늦게까지 혼자 돌아다니며, 이웃 상인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얻는다. 경찰 히비키는 렌지가 호적에도 올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떻게든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하지만 부모님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렇게 렌지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두운 거리를 헤매고, 그렇게 성장한다. 결론적으로 소설은 렌지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가슴 아픈 소재이기는 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너무 몰입이 되어 등장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금방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이 되었다. 읽는 내내 렌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를 해결할 수 없는 정책에 대한 답답함, 부모에 대한 분노, 주위 사람들로부터 느꼈던 인간애까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부정적인 부분으로 부모와 정부에 대한 생각이다. 우선, 렌지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야 할 가정이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 렌지의 아버지는 손지검까지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으며, 어머니는 방임을 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성관계를 맺는다거나 다른 이성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지점은 심리적인 학대라고 느껴졌는데 렌지가 성장하면서 이성과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무호적자인 렌지를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을 텐데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렌지 또한 그 나라의 국민일 텐데 지켜주지 못할 국가라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 번째는 긍정적인 부분으로 주위 이웃들에 대한 생각이다. 클럽의 삐끼라고 불리는 동네 형과 부자이지만 나와서 살고 있는 괴짜 어른, 식사를 제공하는 상인들, 마을의 유일한 이성 친구,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히비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렌지가 성장할 수 있었다. 보고 배운 것이 아무래도 유흥업소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중간에 잘못된 길을 들어가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길을 잃은 아이에게 먹거리를 사 주고, 동네의 전통적인 축제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는 등 크게 엇나가지 않는 성인이 되었다. 렌지를 챙기는 이들이 누군가에게는 손가락질할 직업이나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렌지를 마치 자신의 자녀들과 형제처럼 돌아보았던 마음만큼은 누구도 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족과 국가에게 보호를 받지 못하는 렌지이지만 마을이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그런 면에서 렌지가 아픔이 있는 마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며, 떠나더라도 금방 돌아올 수 있는 이유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 소설이 떠올린 그 말을 가장 잘 표현해 주었던 작품이지 않을까.

소재 자체만 보면 아프고 힘든 이야기이다. 그러나 터널 안에서 빛을 보듯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희망이라는 불씨가 보였다. 대한민국에도 나카스와 같은 마을이 많아졌으면 조금이나마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부모가 보호막이 못 되는 아이를 위해 대신 키워주는 마을,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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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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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법에 따라 우리가 죽이는 무고한 이들을 기록해야 한다. / p.11

수확이라고 하면 결실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끝보다는 시작을 먼저 생각한다. 마치 자녀를 출산해 기르고 더 나아가 성장을 시키는 것처럼 농부들이 정성껏 길러 수확을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수확을 당하는 농작물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반대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결론은 어떻게 되든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어감이자 의미로 닿는다.

이 책은 닐 셔스터먼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이질감과 생소함으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던 것은 제목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책보다 제목에서 이끌렸던 것과 동시에 가장 이질감이 느껴졌다. 사람을 수확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년부터 조금씩 SF 소설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과학적 지식이 해박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장르보다 읽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거기에 짧은 호흡의 단편 소설집을 더욱 선호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세 편의 시리즈로 구성이 되어 있는 작품이다. 호기심이 이기기는 했지만 기호로만 놓고 보자면 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소설은 인류의 죽음이 사라진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슈퍼 컴퓨터가 인류의 죽음을 통제하면서부터 사람은 재생 센터에 가서 며칠만 치료받게 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거나 몇 번의 삶을 더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류가 증가하면 할수록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인간의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를 수확자라고 하는데 소설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시트라라는 소녀와 로언이라는 소년이다. 시트라는 방문한 수확자 패러데이에게 당당하면서도 약간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가족들은 수확자의 방문에 놀라면서도 친절하게 반응해 주었다. 사실 패러데이는 시트라의 가족 중 일부를 수확하려고 온 것이 아닌 식사를 하기 위해 시트라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었고, 식사를 대접한 가족들은 수확자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이후 시트라는 패러데이로부터 수확자 수습생이 된다.

로언은 학교에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를 수확하러 온 패러데이를 만났다. 로언은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선수가 수확당하지 않게 말릴 입장이었으나 법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선수가 수확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고, 이러한 일이 빌미가 되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신세가 된다. 로언 역시 패러데이로부터 수확자 수련생이 된다. 시트라와 로언의 수확자 수련기이자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게 되었다. 첫 번째는 수확자들의 성향이었다. 비중도로 보면 크게 시트라와 로언을 수련생으로 받았던 패러데이, 죽음의 대모로 불리는 퀴리, 많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고더드라는 세 명의 수확자가 등장한다. 각자의 스타일이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패러데이는 감정 하나 없이 철두철미하게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이성적인 수확자, 퀴리는 처리한 이후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인간다운 수확자, 고더드는 수확보다는 살인에 초점을 맞추어 극악무도하게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잔인한 수확자로 보였다. 생명을 수확하기에 안 좋은 인물로 비춰질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고더드의 방법은 이해하지도, 이해하기도 싫은 부류였다. 작품의 내용을 빌려 표현하자면 수확보다는 살인에 가까운 범죄자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는 로언과 시트라의 이야기이다. 우선, 두 사람이 어떻게 수확자 수습생으로 발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작품에 해답이 있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인간스러운 면모가 잘 표현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렸던 수확자 퀴리가 있기는 했겠지만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감성적인 측면과 잘못한 일에 대해 괴로워할 줄 아는 양심,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마음까지 인간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수확자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이해가 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는 다음 시리즈를 읽으면서 조금 더 마음으로 해답을 내려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리즈 장편 소설에 SF 장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조금 많이 겁을 먹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어서 그렇게 완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로언과 시트라의 관계, 패러데이를 비롯한 수확자들과 고더드의 권력 다툼, 생명에 대한 고찰까지 읽는 내내 상상할 수 있는 세계관과 생각거리를 쉴틈없이 쥐어준 덕분에 너무나 만족스럽게 완독할 수 있었다. 

다음 시리즈인 선더헤드와 종소리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로언과 시트라의 성장 이야기와 함께 패러데이, 퀴리, 고더드가 쥐어줄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도 기대가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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