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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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법에 따라 우리가 죽이는 무고한 이들을 기록해야 한다. / p.11

수확이라고 하면 결실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끝보다는 시작을 먼저 생각한다. 마치 자녀를 출산해 기르고 더 나아가 성장을 시키는 것처럼 농부들이 정성껏 길러 수확을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수확을 당하는 농작물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반대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결론은 어떻게 되든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어감이자 의미로 닿는다.

이 책은 닐 셔스터먼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이질감과 생소함으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던 것은 제목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책보다 제목에서 이끌렸던 것과 동시에 가장 이질감이 느껴졌다. 사람을 수확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년부터 조금씩 SF 소설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과학적 지식이 해박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장르보다 읽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거기에 짧은 호흡의 단편 소설집을 더욱 선호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세 편의 시리즈로 구성이 되어 있는 작품이다. 호기심이 이기기는 했지만 기호로만 놓고 보자면 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소설은 인류의 죽음이 사라진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슈퍼 컴퓨터가 인류의 죽음을 통제하면서부터 사람은 재생 센터에 가서 며칠만 치료받게 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거나 몇 번의 삶을 더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류가 증가하면 할수록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인간의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를 수확자라고 하는데 소설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시트라라는 소녀와 로언이라는 소년이다. 시트라는 방문한 수확자 패러데이에게 당당하면서도 약간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가족들은 수확자의 방문에 놀라면서도 친절하게 반응해 주었다. 사실 패러데이는 시트라의 가족 중 일부를 수확하려고 온 것이 아닌 식사를 하기 위해 시트라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었고, 식사를 대접한 가족들은 수확자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이후 시트라는 패러데이로부터 수확자 수습생이 된다.

로언은 학교에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를 수확하러 온 패러데이를 만났다. 로언은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선수가 수확당하지 않게 말릴 입장이었으나 법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선수가 수확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고, 이러한 일이 빌미가 되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신세가 된다. 로언 역시 패러데이로부터 수확자 수련생이 된다. 시트라와 로언의 수확자 수련기이자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게 되었다. 첫 번째는 수확자들의 성향이었다. 비중도로 보면 크게 시트라와 로언을 수련생으로 받았던 패러데이, 죽음의 대모로 불리는 퀴리, 많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고더드라는 세 명의 수확자가 등장한다. 각자의 스타일이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패러데이는 감정 하나 없이 철두철미하게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이성적인 수확자, 퀴리는 처리한 이후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인간다운 수확자, 고더드는 수확보다는 살인에 초점을 맞추어 극악무도하게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잔인한 수확자로 보였다. 생명을 수확하기에 안 좋은 인물로 비춰질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고더드의 방법은 이해하지도, 이해하기도 싫은 부류였다. 작품의 내용을 빌려 표현하자면 수확보다는 살인에 가까운 범죄자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는 로언과 시트라의 이야기이다. 우선, 두 사람이 어떻게 수확자 수습생으로 발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작품에 해답이 있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인간스러운 면모가 잘 표현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렸던 수확자 퀴리가 있기는 했겠지만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감성적인 측면과 잘못한 일에 대해 괴로워할 줄 아는 양심,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마음까지 인간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수확자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이해가 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는 다음 시리즈를 읽으면서 조금 더 마음으로 해답을 내려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리즈 장편 소설에 SF 장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조금 많이 겁을 먹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어서 그렇게 완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로언과 시트라의 관계, 패러데이를 비롯한 수확자들과 고더드의 권력 다툼, 생명에 대한 고찰까지 읽는 내내 상상할 수 있는 세계관과 생각거리를 쉴틈없이 쥐어준 덕분에 너무나 만족스럽게 완독할 수 있었다. 

다음 시리즈인 선더헤드와 종소리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로언과 시트라의 성장 이야기와 함께 패러데이, 퀴리, 고더드가 쥐어줄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도 기대가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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