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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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회의실은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 p.13

가끔 책을 읽으면서 괴리감이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느낄 때에는 대부분 하나의 경우로 수렴이 된다. 묵직함을 기대하고 펼친 소설에서 등장하는 어린 시절에 많이 읽었던 인터넷 소설이나 마치 옆에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서 등장할 법한 이모티콘과 신조어가 등장하는 순간이 그렇다. 적재적소에 사용된 표현이라면 재미가 배 이상으로 높겠지만 기억으로 그렇게 되었던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그 작품과 독자인 나와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덮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멜라니 블레이크의 장편 소설이다. 부제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평소의 스타일이라면 보자마자 넘겼을 테지만 묘하게 이끌렸다. 거기에 표지도 인상적이다. 호기심에 약해지는 사람으로서 이번의 경우에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욱 컸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소설은 팔콘만이라는 드라마로 시작된다. 한때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드라마로 꽤 오랜 시간을 시청자들과 함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청률이 반토막이 났다. 프로듀서 아만다, 작가 파라, 배우 캐서린 역시도 드라마와 동시에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남자들에 밀려 팔콘만도, 그리고 세 사람도 방송국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팔콘만을 살리기 위해 의견을 낸 결과, 상상하지도 못한 대책을 낸다. 그것은 최고의 악역 여자 캐릭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첫 장을 펴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흐름을 타기 전까지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의 크기와 두께에 겁을 먹었던 것이 첫 번째이며, 등장인물이 생각보다 많았던 탓이다. 기억력의 한계로 인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집중하기 힘든 편인데 과연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이 작품을 완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답이 없는 호기심이 원망스러워질 정도이기도 했다. 

흐름을 타고 집중이 되면서 그런 의문과 원망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자극적이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등장 인물들도 읽으면 읽을수록 어느 정도는 눈에 익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과연 팔콘만은 그들의 노력처럼 과거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그 지점이 궁금해졌으며, 이야기들은 그동안 소설에서 많이 보지 못한 형태로 흘러가서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여성 서사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초반의 설정부터 위기에 빠진 세 주인공은 남성에 밀려 커리어에 밀리는 위기를 겪는다. 심지어 새로운 빌런 캐릭터를 찾는 것 역시도 여성이었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막 나가는 캐릭터들이기는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점에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욕망 자체로만 본다면 조금 상식과 다르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방송가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동안 드라마를 통해 방송가의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볼 기회는 많았지만 소설로서 방송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특별한 이력처럼 방송가 사람들의 적나라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흥미로웠다. 약간 후일담을 듣는 느낌이기도 했다. 한때 방송 분야의 직업을 꿈으로 가질 정도로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재미있었다.

마치 마라탕을 먹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보았던 적이 많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맛의 음식을 찾는 것처럼 지금까지 곱씹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다른 소설과 다르게 재미 위주로 읽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스토리에 푹 빠져 스트레스를 날렸던 것 같다. 물론, 어느 지점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에 분노한다거나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제치고 흥미로운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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