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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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회의실은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 p.13

가끔 책을 읽으면서 괴리감이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느낄 때에는 대부분 하나의 경우로 수렴이 된다. 묵직함을 기대하고 펼친 소설에서 등장하는 어린 시절에 많이 읽었던 인터넷 소설이나 마치 옆에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서 등장할 법한 이모티콘과 신조어가 등장하는 순간이 그렇다. 적재적소에 사용된 표현이라면 재미가 배 이상으로 높겠지만 기억으로 그렇게 되었던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그 작품과 독자인 나와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덮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멜라니 블레이크의 장편 소설이다. 부제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평소의 스타일이라면 보자마자 넘겼을 테지만 묘하게 이끌렸다. 거기에 표지도 인상적이다. 호기심에 약해지는 사람으로서 이번의 경우에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욱 컸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소설은 팔콘만이라는 드라마로 시작된다. 한때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드라마로 꽤 오랜 시간을 시청자들과 함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청률이 반토막이 났다. 프로듀서 아만다, 작가 파라, 배우 캐서린 역시도 드라마와 동시에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남자들에 밀려 팔콘만도, 그리고 세 사람도 방송국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팔콘만을 살리기 위해 의견을 낸 결과, 상상하지도 못한 대책을 낸다. 그것은 최고의 악역 여자 캐릭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첫 장을 펴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흐름을 타기 전까지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의 크기와 두께에 겁을 먹었던 것이 첫 번째이며, 등장인물이 생각보다 많았던 탓이다. 기억력의 한계로 인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집중하기 힘든 편인데 과연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이 작품을 완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답이 없는 호기심이 원망스러워질 정도이기도 했다. 

흐름을 타고 집중이 되면서 그런 의문과 원망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자극적이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등장 인물들도 읽으면 읽을수록 어느 정도는 눈에 익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과연 팔콘만은 그들의 노력처럼 과거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그 지점이 궁금해졌으며, 이야기들은 그동안 소설에서 많이 보지 못한 형태로 흘러가서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여성 서사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초반의 설정부터 위기에 빠진 세 주인공은 남성에 밀려 커리어에 밀리는 위기를 겪는다. 심지어 새로운 빌런 캐릭터를 찾는 것 역시도 여성이었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막 나가는 캐릭터들이기는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점에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욕망 자체로만 본다면 조금 상식과 다르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방송가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동안 드라마를 통해 방송가의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볼 기회는 많았지만 소설로서 방송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특별한 이력처럼 방송가 사람들의 적나라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흥미로웠다. 약간 후일담을 듣는 느낌이기도 했다. 한때 방송 분야의 직업을 꿈으로 가질 정도로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재미있었다.

마치 마라탕을 먹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보았던 적이 많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맛의 음식을 찾는 것처럼 지금까지 곱씹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다른 소설과 다르게 재미 위주로 읽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스토리에 푹 빠져 스트레스를 날렸던 것 같다. 물론, 어느 지점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에 분노한다거나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제치고 흥미로운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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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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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히비키는 해묵은 상처 같은 과거를 반추하며 렌지에 얽힌 기억을 떠올렸다. / p.12

소설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든 내용은 아마 아동과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재이다. 특히, 그들이 방치된다거나 학대의 대상이 될 때에는 더욱 버티기 힘든 면이 있다. 아무래도 복지사각지대나 약자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원래 그런 쪽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부하는 편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어두운 면들을 조금씩 보고 변화할 때에 세상은 조금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찾아서 읽는다.

이 책은 츠지 히토나리의 장편 소설이다. 전작들의 제목은 익히 봤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사실 작가의 이름은 초면인데 내용을 보고 선택하게 된 책이다. 일본 작품이기는 하지만 뉴스에서 보게 되는 내용이기에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만 읽어도 가슴이 아픈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렌지로, 동네의 마스코트이자 한밤중의 아이라는 별명을 가진 어린 소년이기도 하다. 호스트와 술집에서 일하는 부모님께 방치되어 늦게까지 혼자 돌아다니며, 이웃 상인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얻는다. 경찰 히비키는 렌지가 호적에도 올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떻게든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하지만 부모님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렇게 렌지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두운 거리를 헤매고, 그렇게 성장한다. 결론적으로 소설은 렌지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가슴 아픈 소재이기는 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너무 몰입이 되어 등장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금방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이 되었다. 읽는 내내 렌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를 해결할 수 없는 정책에 대한 답답함, 부모에 대한 분노, 주위 사람들로부터 느꼈던 인간애까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부정적인 부분으로 부모와 정부에 대한 생각이다. 우선, 렌지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야 할 가정이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 렌지의 아버지는 손지검까지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으며, 어머니는 방임을 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성관계를 맺는다거나 다른 이성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지점은 심리적인 학대라고 느껴졌는데 렌지가 성장하면서 이성과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무호적자인 렌지를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을 텐데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렌지 또한 그 나라의 국민일 텐데 지켜주지 못할 국가라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 번째는 긍정적인 부분으로 주위 이웃들에 대한 생각이다. 클럽의 삐끼라고 불리는 동네 형과 부자이지만 나와서 살고 있는 괴짜 어른, 식사를 제공하는 상인들, 마을의 유일한 이성 친구,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히비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렌지가 성장할 수 있었다. 보고 배운 것이 아무래도 유흥업소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중간에 잘못된 길을 들어가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길을 잃은 아이에게 먹거리를 사 주고, 동네의 전통적인 축제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는 등 크게 엇나가지 않는 성인이 되었다. 렌지를 챙기는 이들이 누군가에게는 손가락질할 직업이나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렌지를 마치 자신의 자녀들과 형제처럼 돌아보았던 마음만큼은 누구도 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족과 국가에게 보호를 받지 못하는 렌지이지만 마을이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그런 면에서 렌지가 아픔이 있는 마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며, 떠나더라도 금방 돌아올 수 있는 이유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 소설이 떠올린 그 말을 가장 잘 표현해 주었던 작품이지 않을까.

소재 자체만 보면 아프고 힘든 이야기이다. 그러나 터널 안에서 빛을 보듯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희망이라는 불씨가 보였다. 대한민국에도 나카스와 같은 마을이 많아졌으면 조금이나마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부모가 보호막이 못 되는 아이를 위해 대신 키워주는 마을,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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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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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법에 따라 우리가 죽이는 무고한 이들을 기록해야 한다. / p.11

수확이라고 하면 결실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끝보다는 시작을 먼저 생각한다. 마치 자녀를 출산해 기르고 더 나아가 성장을 시키는 것처럼 농부들이 정성껏 길러 수확을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수확을 당하는 농작물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반대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결론은 어떻게 되든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어감이자 의미로 닿는다.

이 책은 닐 셔스터먼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이질감과 생소함으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던 것은 제목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책보다 제목에서 이끌렸던 것과 동시에 가장 이질감이 느껴졌다. 사람을 수확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년부터 조금씩 SF 소설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과학적 지식이 해박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장르보다 읽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거기에 짧은 호흡의 단편 소설집을 더욱 선호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세 편의 시리즈로 구성이 되어 있는 작품이다. 호기심이 이기기는 했지만 기호로만 놓고 보자면 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소설은 인류의 죽음이 사라진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슈퍼 컴퓨터가 인류의 죽음을 통제하면서부터 사람은 재생 센터에 가서 며칠만 치료받게 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거나 몇 번의 삶을 더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류가 증가하면 할수록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인간의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를 수확자라고 하는데 소설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시트라라는 소녀와 로언이라는 소년이다. 시트라는 방문한 수확자 패러데이에게 당당하면서도 약간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가족들은 수확자의 방문에 놀라면서도 친절하게 반응해 주었다. 사실 패러데이는 시트라의 가족 중 일부를 수확하려고 온 것이 아닌 식사를 하기 위해 시트라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었고, 식사를 대접한 가족들은 수확자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이후 시트라는 패러데이로부터 수확자 수습생이 된다.

로언은 학교에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를 수확하러 온 패러데이를 만났다. 로언은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선수가 수확당하지 않게 말릴 입장이었으나 법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선수가 수확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고, 이러한 일이 빌미가 되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신세가 된다. 로언 역시 패러데이로부터 수확자 수련생이 된다. 시트라와 로언의 수확자 수련기이자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게 되었다. 첫 번째는 수확자들의 성향이었다. 비중도로 보면 크게 시트라와 로언을 수련생으로 받았던 패러데이, 죽음의 대모로 불리는 퀴리, 많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고더드라는 세 명의 수확자가 등장한다. 각자의 스타일이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패러데이는 감정 하나 없이 철두철미하게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이성적인 수확자, 퀴리는 처리한 이후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인간다운 수확자, 고더드는 수확보다는 살인에 초점을 맞추어 극악무도하게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잔인한 수확자로 보였다. 생명을 수확하기에 안 좋은 인물로 비춰질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고더드의 방법은 이해하지도, 이해하기도 싫은 부류였다. 작품의 내용을 빌려 표현하자면 수확보다는 살인에 가까운 범죄자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는 로언과 시트라의 이야기이다. 우선, 두 사람이 어떻게 수확자 수습생으로 발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작품에 해답이 있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인간스러운 면모가 잘 표현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렸던 수확자 퀴리가 있기는 했겠지만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감성적인 측면과 잘못한 일에 대해 괴로워할 줄 아는 양심,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마음까지 인간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수확자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이해가 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는 다음 시리즈를 읽으면서 조금 더 마음으로 해답을 내려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리즈 장편 소설에 SF 장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조금 많이 겁을 먹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어서 그렇게 완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로언과 시트라의 관계, 패러데이를 비롯한 수확자들과 고더드의 권력 다툼, 생명에 대한 고찰까지 읽는 내내 상상할 수 있는 세계관과 생각거리를 쉴틈없이 쥐어준 덕분에 너무나 만족스럽게 완독할 수 있었다. 

다음 시리즈인 선더헤드와 종소리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로언과 시트라의 성장 이야기와 함께 패러데이, 퀴리, 고더드가 쥐어줄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도 기대가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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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스펙트럼 안전가옥 FIC-PICK 5
배예람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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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생각을 읽으려 하면 안 된다. / p.134

최근 읽은 소설들을 보면 생각보다 여성 화자가 그려지는 작품들을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는 여성 화자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읽는 것도 있겠지만 하나씩 계산하면서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읽으면서 오롯이 공감이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아무래도 같은 성별의 입장이기 때문에 다른 성별이 모르는 내면적 심리가 더욱 와닿았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다섯 분의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앤솔로지 소설이다. 우연한 기회로 하나씩 읽게 된 안전 가옥 시리즈의 FIC-PICK 시리즈인데 이제는 신간 소식만 들렸다 하면 무조건 찾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번 작품들 역시도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고르게 되었고,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의 작가님께서 참여하셨기에 가장 크게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우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처럼 주제는 여성과 관련된 작품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나 편견, 성별이 바뀌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우칠 수 있는 작품들이 실릴 것 같다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예상은 너무나 크게 빗나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에서 느끼는 성별보다는 성애적 관점에서 보이는 성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아밀 작가님의 <하나뿐인 춤>이라는 소설이 가장 강렬하게 와닿았다. 소설은 카릴과 릴카 쌍둥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라뮈스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쌍둥이로 태어나서 사춘기라고 불리는 시절에 성별이 결정된다. 릴카는 여성으로서 분화되어가는 것과 반대로 카릴은 청소년기가 지나도 몸에 큰 변화가 없다. 부모님부터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무시한다거나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졸업식에서 성별에 맞는 역할의 춤을 추어야 하는 상황에서 릴카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별인 여성의 춤을 부모님 몰래 연습하고, 그로 인한 오해를 사게 된다. 

성별로서 따라오는 편견들을 잘 표현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으로는 가장 크게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과학 시간에 나왔던 것처럼 XXY나 Y만 염색체만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포함해 항상 제 3의 성을 자주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또한, 성별로서 주어지는 역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이어서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지역의 전통이기는 하겠지만 애초에 춤이라는 것 자체가 남성과 여성이 나누어지는 무언가는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까지 과하게 반응하는 어른들과 학생들을 보면서 조금 답답함이 느껴졌다. 릴카가 경험하고 있는 혼란스러움과 주위의 시선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이입되었다.

더불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소설 중 하나인 작품이 떠올랐다. 학교가 배경인 것도, 무성이라는 주제 역시도 비슷했는데 그 작품을 읽었을 때의 강렬함을 이 작품에서 고스란히 느꼈다. 과연 성별이라는 게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작품도 좋았지만 <우먼 인 스펙트럼>이라는 제목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성애라는 단어를 깊게 생각하고 곱씹었다. 세상에는 부모와 자녀의 연결된 끈, 좋아하는 물건과의 애착,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과 의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랑들이 존재하고 이를 용인하는데 왜 다른 성애적인 사랑은 배제가 되거나 무시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권력이나 미성숙한 대상에게 착취하거나 집착하는 성애의 경우에는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 역시 공감하는 바이지만 조금은 성애적인 부분을 이분법보다는 스펙트럼의 기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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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찬란 실패담 - 만사에 고장이 잦은 뚝딱이의 정신 수양록
정지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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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과 상관없이 내 몸에만 집중하기. / p.18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생각보다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의 내 모습을 한 마디로 '실패하기 싫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뒤집기, 잡고 일어서기, 걷기 등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의 아기 시절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누구보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유는 실패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엇을 모를 때에는 이것저것 참 많이 도전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남자 아이들과 고무동력기나 글라이더를 만드는 대회에 출전한다거나 반장 선거 후보로 나갔다. 심지어 방송부 기술부원으로 유일한 여자 학생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는 다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훈장인 듯하다. 지금은 해탈할 정도로 실패를 많이 경험했지만 여전히 도전은 두렵다. 이유는 실패가 싫다기보다 스스로에게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지음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비슷한 또래의 세대를 살고 있기에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었다. 그런 이유로 트위터 팔로우까지 했었다. 그동안 집필하셨던 <젊은 ADHD의 슬픔>을 시작으로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까지 에세이는 전부 읽었으며,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저자의 파란만장 실패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실패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시험에 낙방했다거나 인생이 흔들릴 정도로 큰 실패는 아니다. 요가를 배우는데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야기, 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유저들로부터 부모님의 안부를 들었다는 이야기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나 사소한 실패의 경험들이 담긴 책이다. 

몸이 둔해 스쿼트 동작 하나도 낑낑대는 모습, 게임을 접으라는 농담을 했었던 친구들의 목소리, 업무 실수로 자괴감이 들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읽는 내내 나의 이야기처럼 큰 공감이 되었다. 공감과 함께 저자의 유머 코드는 통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마치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본 것처럼 웃으면서 읽었던 것 같다. 얇은 페이지 수를 가지고 있기에 술술 읽을 수 있었고, 퇴근 후 두 시간 정도에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팀장님 죽이기>와 <매너 없는 극장 매너>라는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팀장님 죽이기>는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을 쓰러트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상사들에게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팀장님께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그게 바로 회식 자리였다. 술을 잘하지 못하지만 복수하겠다는 의미로 술을 부어라마셔라 권했고, 결국 팀장님께서는 술로 인한 병으로 다음 날 연차를 사용하셨다고 한다. 회식을 복수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적은 없었지만 한번쯤 상사에 대한 복수를 생각했던, 그리고 여전히 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너무나 공감이 되었던 내용이다.

<매너 없는 극장 매너>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극장 매너에 대한 다른 생각을 담고 있다. 저자는 영화를 멀리 하는 편이라고 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조금은 신나면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극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사실 단순히 영화를 웃고 떠들면서 보는 것에 대한 바람으로 끝이 났다면 조금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어린 아이들의 차별에 대한 시각까지 언급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다 소리를 낸다면 매너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러한 에티켓이자 규칙이 문화 소외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서른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 노인 편견로 나아가는 에피소드나 이사가는 과정을 그렸지만 동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까지 사소하지만 소외된 누군가를 챙기는 저자의 따뜻한 모습은 참 인상 깊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익숙했던 차별과 편견을 다시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에세이 역시도 참 공감이 많이 되었다.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삼십 대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더 나아가 매일 사소한 실패들을 경험하고 좌절하는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그동안 실패하면서 느꼈던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져 산뜻했던 독서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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