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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요괴상점
기구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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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더 빠르고 강해지네. / p.178
요괴와 좀비는 태생적으로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약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출생지가 다르다는 생각이다. 요괴는 대한민국 국적이라면 좀비는 미국 국적이라고 할까. 뭔가 요괴라는 어감 자체가 전통적이다. 그렇다고 요괴에게는 친근함을 더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다. 요괴와 좀비 둘 다 그렇게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기구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요괴를 좋아하지 않지만 표지가 예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그동안 힐링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집이 그려진 표지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했는데 이 표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재미있게 했었던 게임의 한 배경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팬더도, 원숭이도, 뱀도 전부 몬스터로 때려잡아야 하는데 그곳에 표지와 같은 건물이 있을 것 같다. 익숙한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배경은 조선시대의 한 저잣거리이다. 마포장터라는 곳에서 한기라는 인물은 요괴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이제 한성요괴상점을 물려받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그곳의 주인이 되었다. 조선을 가지고자 하는 요괴를 비롯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괴까지 이들을 헤치는 요괴를 처치하면서 그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괴와 친하지 않다 보니 결투 장면에 대한 상상력이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려와 다르게 술술 읽혔던 것 같다. 요괴와 싸운다는 게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는 줄거리에서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는 않았으며, 주인공인 한기의 성장, 그리고 그들은 돕는 흑백 요괴와 팬더, 주변 인물들의 상호관계가 더욱 눈길을 끌어 가볍게 그리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실제 인물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한기만큼 중요도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조력자로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있다. 이는 황희이다. 황희정승으로 국사 시간에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는 조선시대의 문인인데, 소설에서는 국가 관직 중 하나를 맡고 있는 인물로 표현된다. 요괴를 처치하더라도 국가의 법률이나 허가 등이 필요할 텐데 이럴 때마다 한기에게 도움을 주고, 때로는 같이 요괴를 처리하러 나서기도 한다.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었던 반가운 이름의 등장이 흥미로웠다.
두 번째는 조선시대의 서울 풍경을 잘 묘사했다는 점이다. 전생에는 살았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상태로는 조선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기에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문장이나 단어의 표현으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당시 서울의 지명이었던 한성을 비롯해 날짜나 전국의 지명까지도 시대상을 잘 반영한 듯했다. 아마 아래에 설명이 없었더라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 부분도 친절하게 기재가 되어 있어서 좋았다.
온전히 소설에 빠져 읽으면서 현재 가지고 있던 고민과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분 전환을 위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가치나 여운을 주는 힐링 소설은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로 힐링과 재미를 주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