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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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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기쁨의 정체는 무엇일까. / p.9
한국어에서도 형태에 따라 과거와 미래, 현재 시제로 나눌 수 있겠지만 문법적인 크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했었다.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 등의 짧은 단어로부터 말하기 시작했을 테니 말이다. 나 역시도 지금 이 순간까지 시제를 생각하면서 대화하지는 않는다. 아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그렇게 분석하면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던 순간에 가장 새롭게 느껴졌던 것이 시제에 관한 부분이었다. 미래를 표현할 때에는 Will을 붙이고, 과거를 표현할 때에는 Did를 붙인다는 게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밖에도 단어나 문법에 따라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는데 학교에서 어디까지나 공부의 영역으로만 언어를 배운 사람이다 보니 많이 헷갈렸던 것 같다. 한국어를 이렇게 배운다고 하면 그것 역시도 헷갈리지 않았을까.
이 책은 배명훈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작품보다 이름이 더욱 각인된 분이다. 즐겨 보는 북 크리에이터분께서 배명훈 작가님의 열렬한 팬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SF 소설로는 작가님들의 작가님, 연예인으로 말하자면 스타들의 스타 그런 느낌으로 인지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작품을 읽어 보지 못했다. 물론, 계획을 하기는 했었지만 아무래도 많은 상상력과 이해력을 동원해야 하는 작품이라는 나름의 편견이 자리하고 있어서 내내 겁만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작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조금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그동안 SF 소설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과학적 지식으로 지식의 부족이 아니고, 그렇다고 거대한 세계관으로 상상력 부족도 아니었다. 그저 눈으로는 읽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줄거리보다 글자가 더 튀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줄거리를 파악하는 편인데 그림보다는 활자가 더욱 눈에 띄었던 것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첫 번째는 표제작인 <미래과거시제>이며, 두 번째는 <임시조종사>이다. 전체적으로 묘한 느낌을 주었지만 유독 두 작품이 강하게 와닿았던 이유는 표현 자체가 가장 독특했기 때문이다. 전자는 제목처럼 미래과거시제로 말하는 강은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화법이 신기했다. 강은신이 표현하는 시제를 말하지 않았더라면 출판사의 오타로 생각했을 정도일 것이다. 눈에 거슬렸지만 이상하게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후자는 책의 장르를 착각하게 만든 형태이다. 구전으로 내려온 고전 문학들을 보는 것도 소설의 형태로 가공이 되어 하나의 이야기로만 봤으며, 판소리는 눈이나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를 활자로 본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익숙하지 않은 판소리 활자를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북소리나 추임새를 상상하기는 했었지만 대중 가요를 많이 접하는 입장에서 줄거리를 이해하면서 읽는다는 게 조금은 어려웠지만 나름의 재미가 느껴졌던 작품이다.
읽으면서 활자가 춤을 추는 것은 이렇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독자가 제대로 읽고 있는지 테스트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줄거리 파악에만 집중했던 독자로서 활자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참 새로우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으로 시작했지만 재독이 끌리는 소설집을 만났다는 생각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