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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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전체가 그렇지. / p.332


이 책은 83 세의 고가티 할머니와 손녀인 에이딘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부터가 유쾌하면서도 활동적인 할머니가 느껴져서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비교적 정적인 스타일에 가까운 사람인데, 소설을 통해 조금은 명랑함을 느끼고 싶었다. 어린 아이도 아닌 할머니가 나오는 소설에서 느낀다고 하기에는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었다.

주인공인 고가티 할머니는 케빈이라는 아들과 그레이스라는 며느리, 네 명의 손주들이 있다. 케빈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해 아이 양육을 전담하고 있으며, 그레이스는 남편인 케빈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다. 제라드, 누알라, 에이딘, 키아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손주와 손녀가 있는데, 네 명 중에서 가장 문제는 에이딘이다. 쌍둥이 언니인 누알라와 다투는 것은 기본이며, 항상 사고를 치는 문제아여서 케빈과 그레이스의 머리를 부여잡게 만드는 주요 인물이다. 결국 에이딘은 다른 기숙 학교로 전학을 가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도 온갖 일탈 행위를 벌인다.

거기에 고가티 할머니 역시도 아들의 머리를 부여잡게 만든다. 좋게 말하면 유쾌하게 생활하고 있으나, 정작 자식 입장에서는 딸 하나를 더 둔 것과 같을 정도로 손이 간다. 그것도 보통 손이 가는 것이 아닌 사고뭉치 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칠 수 있는 사고는 다 치는듯한 고가티 할머니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쳐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이 발생하고, 경찰과의 협의로 새 파출부를 들여 생활하면 죄를 탕감해 준다는 말에 미국인 실비아를 집으로 들이게 된다.

유교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아마 이것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와 대한민국의 문화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대수롭지 않게 훈방 조치가 되는 절도 범죄, 선생님께 골탕을 먹이기 위해 위험 물질을 섞어 장난을 치는 행위, 부모와 자식 사이를 막론해 욕을 뱉는 장면들이 그렇다. 아마 대한민국이었다면 고가티 가족들은 SNS 상에서 화제가 되는 내용이지 않을까.

이런 막장 집안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는지 문화의 카오스 상태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가 넘는 행위를 하는 인물들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보니 고가티 할머니가 매력 있는 인물이고, 에이딘은 귀여운 명랑한 아이 그 자체였다. 그렇게 아들 내외의 머리를 부여잡게 하는 두 인물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밉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인 케빈이 더 밉게 보였다. 머리로는 케빈에게 움직였어야 하나, 마음은 이상하게 고가티 할머니와 에이딘에게 향하고 있었다.

양육을 도맡아 하면서 두 사고뭉치들을 케어하느라 힘들다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 부인이 있는 입장에서 스무 살이나 어린 이성, 그것도 딸이 다니는 학교 행정 직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 스킨십을 한다는 게 용인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양육을 자발적으로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닌 취업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무기력하게 강제로 담당하는 모습과 그레이스에게 열등감을 느껴 부부싸움을 촉발하게 만드는 장면까지도 그저 케빈이 더 밉상으로 보였다. 자발적으로 삶을 헤쳐가려고 노력하는 고가티 할머니와 에이딘과 달리 무기력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만 탓하는 케빈이 답답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자체가 한국의 정서와 다르게 흘러가면서도 주인공에게 홀린듯 소설을 읽게 된 이유는 주인공을 밉지 않게 매력적으로 그리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유쾌한 상황 묘사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당시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었다면 울고 싶었거나 절망스러웠을 텐데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묘사로 웃기고 슬픈 상황으로 변화가 되었다. 그게 인물의 전반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고가티 할머니 역시도 급박하고도 답답한 상황에서 이를 재치 있게 상황을 반전시킨다.

쫓겨나 친구의 집에서 보낸 첫날 조금은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 상황에서 어린 아이처럼 엄마를 찾아 집에 가고 싶은 수치심으로 표현하거나 비행기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고가티 할머니를 치매 환자로 둔갑시켜 승무원으로부터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내용, 가끔 중요한 상황에서 에이딘에게 오리새끼라고 부르는 고가티 할머니의 애칭들이 주로 그렇다. 분명히 화가 나거나 황당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크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소설을 덮고 나니 고가티 할머니와 에이딘은 미운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자주적이면서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텐데 케빈의 노파심과 부정적인 모습만 보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엇나가는 행동을 보였다. 그들은 누구보다 사람을 잘 믿으면서 따뜻했다. 고가티 할머니는 의심을 눈초리로 맞이했던 실비아를 누구보다 챙겼고, 에이딘은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 준 션을 기다리는 일편단심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아마 사고뭉치 조모와 손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아니었을까.

전지적 유교 시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을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해제시켰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긴장 넘치는 스릴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더 웃긴 유쾌함으로 가득 채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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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성격 상담소 -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인생이 힘든 당신에게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생각의날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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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두려운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 p.253


이 책은 기시미 이치로 작가님의 심리학 도서이다. 전작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기는 했으나, 아직 읽지 못했다. SNS 형식을 띈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이라는 말보다 대학교 전공 과목으로 배웠던 아들러 이론이 더 익숙하게 보여서 선택한 책이다. 알고 보니 전작도 아들러 이론을 활용한 심리학 도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성격은 정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체적인 내용을 관통하고 있으며, 종종 등장하는 개념이며, 아들러의 성격 이론을 토대로 다양한 성격 유형과 행동을 서술하고 있다. 1 장부터 3 장까지는 공격형과 방어형 성격을 비롯해 다양한 성격을, 4 장은 인간이 느끼고 있는 기분에 대해, 5 장은 태어난 순서에 대한 성격 차이를, 마지막은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1 장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조건 우위에 있고자 독단적이거나 적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공격형에 대해 말한다. 거기에서 허영심, 질투, 미움, 적의 등의 감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스스로의 나약함과 열등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공격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2 장은 상대를 두려워하거나 불신감을 가지고 있는 방어형에 대해 말하면서 불안, 소극적, 겁 등의 감정을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2 장의 방어형을 적의가 있는 고립이라는 말로 정의내렸는데, 이 부분이 생소하게 들렸다. 여기에서 말하는 방어형은 남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상처를 받을 바에는 묵언으로 표현한다는 점이었다.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는 않으나, 상대방에게 적대감을 두고 회피라는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단절하거나 기분을 불쾌한다는 점에서 적의가 있는 고립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3 장과 4 장은 공통적으로 어떠한 것에 대해 목적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3 장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며, 쾌활함, 미숙함, 완고함, 비굴함, 오만함, 감정 기복, 비관적인 성격 등을 선택하는 것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4 장에서는 감정은 성격의 항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각각의 감정은 성격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표정이나 목소리 등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 변화라고 한다.

라이프스타일과 성격의 차이와 어떠한 성격이나 감정에 목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웠다. 우선, 아들러의 성격이론에서 라이프스타일은 무의식으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뜻하며, 이를 행동으로 보이는 게 성격이라고 지칭했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으나, 내가 이루고 싶은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었다. 또한, 그동안 화와 슬픔은 다른 종류의 감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계획적으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용되는 감정 수단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5 장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첫째부터 외동까지 태어난 순서에 따른 성격 차이를 서술했다. 이 파트는 자주 듣는 고정 레퍼토리가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몰랐던 부분이 많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특히, 첫째로서 듣는 항상 책임감이 강하다거나 어른스럽다 등의 긍정적인 면이 아닌 부정적인 면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양육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하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 비슷해서 이 부분에서 약간 소름이 돋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성격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건네면서 마무리가 된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에 충분히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라이프스타일 자체는 바꾸기 힘들기 때문에 바꿀 수 있다는 용기와 그만큼의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게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시작되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격을 선택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또한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모든 성격에 대한 설명도 부모와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연관이 되어 있다. 그동안 스스로 형성된 성격이라는 나의 생각이 아들러의 성격이론으로 조금은 깨진 듯하다.

학교 다니면서 4 년 내내 심리학 이론을 달고 살기는 했으나, 프로이트와 에릭슨의 이론을 중심으로 배우는 편이었다. 아마 지금 프로이트와 에릭슨의 이론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줄줄 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러의 이론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생각했다. 배우는 범위가 적기도 해서 이번만큼 아들러 이론을 알게 된 적도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심리학 지식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편견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의 향연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나의 말버릇을 오늘부터 자제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러한 말 자체가 나의 성격 자체를 한계 짓고 성장하지 못하게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부정적인 성격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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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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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갈 것입니다. / p.91


이 책은 소크라테스 변명과 카프카의 소설이 실렸다. 처음에 표지가 나에게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소크라테스와 카프카의 조합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져서 선택한 책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나타내고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기에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변명 파트는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재판관과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을 변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사람들을 이상한 논리로 따르게 해 타락시키는 죄와 기존의 신을 모시지 않으면서 새로운 신을 믿고 있는 죄를 가지고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장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며, 그저 지혜로울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 이를 확인하고자 했고, 국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설득하면서 비판하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명언을 던졌던 철학자로 알고 있다. 변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다. 특히, 재판을 받으면서도 비굴하게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축소하지 않았다는 점과 죽음보다 부조리를 더 무서워했다는 점이다. 물론, 죄를 지었다는 명목으로 재판장에 서서 변론을 하고 있기는 하나, 이는 질투와 시기로 인한 음모이므로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비굴하지 않게 당당히 재판관과 시민들을 설득했다. 또한, 사형 판결이 났을 때에는 자식들이 타락했을 때에는 자신처럼 괴롭히거나 책망하라는 부탁을 남겼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변명을 무엇보다 경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부조리 역시도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의 목에 칼이 들어온 순간에 진실과 정의를 선택한다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이라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할 법한 문제이다. 음모로 인해 벌어진 불합리한 죽음에서도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잃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정의이지 않았을까.

변신 파트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그레고르에게는 아픈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이 있다. 생계를 위해 회사의 영업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동생이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따뜻한 오빠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레고르는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했다. 처음에 동생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다거나 방을 청소해 주는 등 그를 챙겼으나, 그레고르와 가족들은 거리를 두면서 생활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간격을 좁혀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유일한 수입원이 사라지자 생계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갈수록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귀찮은 벌레로 여기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 변신이라는 소설이 권장도서로 선정이 되면서 읽기는 했으나, 검은색의 표지와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다는 설정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내용과 느낌은 전부 사라지고 없다. 당시 나이만큼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읽게 되니까 또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특히,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과 벌레가 된 이후에도 가족들을 생각하는 모습들이 연민이 들기도, 동정심이 들기도,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결국 결말까지도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에는 부모님께서 나를 먹여 살리셨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내가 가족을 부양해야 되는 입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를 마치 나의 모습으로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는 너무 큰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레로 변하는 순간에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모습에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 미련한 생각으로 보였다. 그런데 과연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그 상황에서 가족들의 안위와 집안 생계를 걱정했을까. 현실적으로 어떻게든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을 것이며, 순식간에 자신의 효용을 잃은 이후 변해버린 가족들의 태도에 경멸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그레고르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희생이지 않았을까.

그동안 잘 몰랐던 연설과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 소크라테스와 변신에 대한 생각이 오늘을 기점으로 조금은 다르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묻는다면 올바른 사회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대답할 것이고, 변신에 대해 묻는다면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달려온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말할 것이다. 정의감으로 불타오르다가 안타까움으로 식게 된 뭔가 묘한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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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10주년 한정특별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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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시간을 파는 상점의 주인이다. / p.235

나에게는 남들이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다. 초등학교 때 생활계획표 짜던 버릇을 아직 개도 못 준 상태로 살고 있는 것도, 지독한 계획형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이 강박이 남긴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내가 본의 아니게 시간으로 폐를 끼칠 정도면 말이 끝난 셈이다.

시간이 곧 신뢰라는 나름의 철칙과 함께 솔직히 늦는 것보다 빠른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예정 시간의 1.5 배를 먼저 생각해 준비를 했는데, 막상 시간과 삶이라는 게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 약속을 하면 30 분 먼저 가서 기다려 정시에 도착한 상대방을 죄책감 느끼게 하는 일.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일찍 도착하는 것 또한 시간 관리를 못한다는 말을 했다. 지금은 조금 정신을 차려서 15 분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시간을 파는 상점 주인 백온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청소년 시기 때에는 지적 허영심에 휩싸여 문학을 멀리 했었다. 이해조차 되지 않는 철학과 사회학, 인문학 위주의 서적을 읽었으나, 성인이 되면서 청소년 문학을 조금씩 읽는 중이다. 이 소설 역시도 청소년 문학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백온조는 어렸을 때 소방관인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람과 세상을 챙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아 살고 있는 당찬 고등학생이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이 곧 금이자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과한 정의감과 부족한 체력으로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의 신이었던 크로노스라는 이름을 달고 온라인에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열었다.

나름의 철칙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을 팔아 의뢰인들의 부탁을 대신 수행해 주는 역할을 한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하기도 했고, 누가 보면 터무니없는 일을 대신 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온조는 편견을 조금씩 깨기도, 시간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기도,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6 학년 아이린 어린이의 이야기와 강토라는 이름을 가진 의뢰인의 부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린 어린이는 동화에서 괘종시계가 열세 번 치는 내용을 보고 의문을 가졌고, 크로노스에게 질문한다. 과연 열세 번 치는 것이 가능하냐는 말이었다. 크로노스는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과 함께 시간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아이린에게 전달해 준다. 물론, 아이린은 어린 나이여서 크로노스의 답변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소득은 있었던 내용이다.

어린이 특유의 순수함으로 미소 짓게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크로노스의 이야기가 깊은 생각의 연결고리로 이끌게 했다. 아이린 어린이가 읽었던 동화의 주인공은 13 시간이나 26 시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생물체라는 것이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어서 이러한 시각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한, 시간이 곧 인간이 정한 약속이라는 점도 그랬다. 시간을 약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24 시간으로 정했다는 것조차도 약속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과학에 따라 정해진 시간이었기에 아마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했던 것 같다.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30 시간도, 40 시간도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세계의 합의와 또 다른 과학의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강토라는 이름을 가진 의뢰인 이야기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강토는 크로노스에게 할아버지와의 약속에 대신 나가 점심을 맛있게 먹어 달라는 의뢰를 한다. 사연을 몰랐던 크로노스는 최대한 임기응변을 발휘해 점심을 같이 먹으며, 할아버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할아버지는 크로노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는 강토와 같이 오기를 바란다면서 약속을 잡는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유가 있다면 거절하면 될 사이에 대신 사람을 세운다는 것이 할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사연도 모르는 크로노스가 수행하기에는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토와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지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세상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오스크나 전자 기기의 발전으로 정보화 소외 현상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시간과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도 떠오르게 되었다. 강토의 망설임도 이해가 됐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순수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강산이 변한 지금 내가 생각하거나 겪은 지금의 청소년들과 10 년 전의 청소년들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서 더욱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금 아이들이 불순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세월이 빠르게 바뀌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조금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경시되는 현 시대의 상황과 비슷한 결이 아닐까.

읽으면서 별안간 울컥하는 일이 많았다. 그동안 시간이라는 강박에 시달려 여유가 없는 삶을 허둥대다 온조와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많은 위로가 되었다. 특히, 온조의 어머니의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시간이 금이라는 말이 좋기는 하지만, 그 말이 그만큼 폭력적이라는 말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는 말. 나에게는 시간이 전부가 아니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되돌아보라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사실 나를 포함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쉬고 있는 그 자체로도 죄가 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마치 경주마처럼 말이다. 그러다 제풀에 지치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 YOLO나 소확행 같은 신조어가 나오지 않았을까. 강토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지나치게 빠르면 꼭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 와닿는다.

이미 세상에서 비관적이면서도 염세주의적인 시선에 적응된 나에게 순수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시선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다시 끼워 주었다. 물론,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금방 흐려지기는 하겠지만, 남긴 메시지는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게 청소년 문학의 매력은 아닐까. 모처럼 깨끗한 렌즈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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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탄 소년 - 인생은 평온한 여행이 아니다
네스토어 T. 콜레 지음, 김희상 옮김 / 나무생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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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는 꿈을 꿀 거예요. / p.21


이 책은 어느 한 남자의 인생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보다는 문구가 눈에 먼저 보였다. 시련과 절망이 있더라도 이 소설을 읽으면 그를 이겨낼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을 읽을 때마다 용기와 교훈 등을 얻을 수 있기는 하나, 매번 주는 용기가 다르다. 이 책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나귀를 타는 소년에게서 용기를 얻고 싶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방황하고 있는 톰은 아버지의 유품인 에메랄드 돌을 가지고 차를 운전해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소나기를 피해 한 산장에 도착한다.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주고,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노파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산장에서는 편안하다는 말과 꿈을 꾸지 않는 톰에게 꿈을 꿀 것이라는 확신의 말을 건네는 노파의 말을 믿지 않는다.

노파의 말처럼 그날 밤 꿈을 꾼다. 다음 날 아침에 산장 주인에게 이러한 내용을 전한다. 산장 주인은 다른 노인을 소개해 주면서 꿈 해몽을 받으라는 말을 전한다. 주인의 말처럼 꿈 해몽을 하는 노인을 만나게 되고, 노인은 몇 가지 테스트가 있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또 꿈을 꾸게 된다면 꿈 해몽의 비용으로 무언가를 요구한다. 노인의 말 역시 믿지 않았던 톰은 노인의 말에 응하게 된다.

톰은 아버지의 유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늘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늘 생각을 달고 사는 인물이다. 사실 생각보다는 근심과 걱정, 원망에 가깝다. 톰이 살아갈 길을 고민할 때 그에게 해답이 될 수 있는 키워드를 던졌던 노파와 노인, 그외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의심하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과거를 늘 후회하면서 한탄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일부 나의 모습과 겹쳐서 보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톰이 에메랄드 보석 상자로 비유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워 톰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보면서 외부의 상황으로 날카롭게 변한 톰의 마음을 떠올렸으며, 누가 상자를 가져갈까 노심초사 의심하는 모습에서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유물이기는 하나, 톰의 삶도 아버지께서 주셨기에 그것도 나름 일맥상통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자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톰의 자아성찰과 테스트에 절망하는 그에게 던진 노인의 물음은 참 인상 깊었다. 사실 문장 자체에 별 내용이 아니기도 했고, 바로 본다고 해서 이해가 될 이야기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너무 뜬 구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곱씹어서 소화시키고 다시 보니 나에게 큰 양분이 될 말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나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했고, 큰 울림을 주었다. 마치 톰이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열심히 일만 했던 자신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도 생겼던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청소년기의 어린 친구들이 읽는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청소년 문학이라고 느껴졌다. 읽다 보니 나이를 떠나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는 내 또래의 독자도 읽는다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철학적인 내용을 가진 소설이다. 그동안 철학적인 주제를 던져 주는 고전 문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철학 도서들을 통해서 느꼈던 감정을 스토리와 서사를 가진 소설로 만나게 되어 새로우면서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현재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감사한 마음과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톰이 하는 물음을 나에게 적용시켜서 자문자답을 했다. 단시간에 나올 수 있는,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었기에 이번에 든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인생이 여행이라고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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