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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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전체가 그렇지. / p.332


이 책은 83 세의 고가티 할머니와 손녀인 에이딘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부터가 유쾌하면서도 활동적인 할머니가 느껴져서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비교적 정적인 스타일에 가까운 사람인데, 소설을 통해 조금은 명랑함을 느끼고 싶었다. 어린 아이도 아닌 할머니가 나오는 소설에서 느낀다고 하기에는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었다.

주인공인 고가티 할머니는 케빈이라는 아들과 그레이스라는 며느리, 네 명의 손주들이 있다. 케빈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해 아이 양육을 전담하고 있으며, 그레이스는 남편인 케빈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다. 제라드, 누알라, 에이딘, 키아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손주와 손녀가 있는데, 네 명 중에서 가장 문제는 에이딘이다. 쌍둥이 언니인 누알라와 다투는 것은 기본이며, 항상 사고를 치는 문제아여서 케빈과 그레이스의 머리를 부여잡게 만드는 주요 인물이다. 결국 에이딘은 다른 기숙 학교로 전학을 가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도 온갖 일탈 행위를 벌인다.

거기에 고가티 할머니 역시도 아들의 머리를 부여잡게 만든다. 좋게 말하면 유쾌하게 생활하고 있으나, 정작 자식 입장에서는 딸 하나를 더 둔 것과 같을 정도로 손이 간다. 그것도 보통 손이 가는 것이 아닌 사고뭉치 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칠 수 있는 사고는 다 치는듯한 고가티 할머니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쳐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이 발생하고, 경찰과의 협의로 새 파출부를 들여 생활하면 죄를 탕감해 준다는 말에 미국인 실비아를 집으로 들이게 된다.

유교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아마 이것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와 대한민국의 문화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대수롭지 않게 훈방 조치가 되는 절도 범죄, 선생님께 골탕을 먹이기 위해 위험 물질을 섞어 장난을 치는 행위, 부모와 자식 사이를 막론해 욕을 뱉는 장면들이 그렇다. 아마 대한민국이었다면 고가티 가족들은 SNS 상에서 화제가 되는 내용이지 않을까.

이런 막장 집안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는지 문화의 카오스 상태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가 넘는 행위를 하는 인물들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보니 고가티 할머니가 매력 있는 인물이고, 에이딘은 귀여운 명랑한 아이 그 자체였다. 그렇게 아들 내외의 머리를 부여잡게 하는 두 인물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밉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인 케빈이 더 밉게 보였다. 머리로는 케빈에게 움직였어야 하나, 마음은 이상하게 고가티 할머니와 에이딘에게 향하고 있었다.

양육을 도맡아 하면서 두 사고뭉치들을 케어하느라 힘들다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 부인이 있는 입장에서 스무 살이나 어린 이성, 그것도 딸이 다니는 학교 행정 직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 스킨십을 한다는 게 용인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양육을 자발적으로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닌 취업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무기력하게 강제로 담당하는 모습과 그레이스에게 열등감을 느껴 부부싸움을 촉발하게 만드는 장면까지도 그저 케빈이 더 밉상으로 보였다. 자발적으로 삶을 헤쳐가려고 노력하는 고가티 할머니와 에이딘과 달리 무기력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만 탓하는 케빈이 답답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자체가 한국의 정서와 다르게 흘러가면서도 주인공에게 홀린듯 소설을 읽게 된 이유는 주인공을 밉지 않게 매력적으로 그리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유쾌한 상황 묘사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당시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었다면 울고 싶었거나 절망스러웠을 텐데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묘사로 웃기고 슬픈 상황으로 변화가 되었다. 그게 인물의 전반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고가티 할머니 역시도 급박하고도 답답한 상황에서 이를 재치 있게 상황을 반전시킨다.

쫓겨나 친구의 집에서 보낸 첫날 조금은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 상황에서 어린 아이처럼 엄마를 찾아 집에 가고 싶은 수치심으로 표현하거나 비행기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고가티 할머니를 치매 환자로 둔갑시켜 승무원으로부터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내용, 가끔 중요한 상황에서 에이딘에게 오리새끼라고 부르는 고가티 할머니의 애칭들이 주로 그렇다. 분명히 화가 나거나 황당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크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소설을 덮고 나니 고가티 할머니와 에이딘은 미운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자주적이면서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텐데 케빈의 노파심과 부정적인 모습만 보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엇나가는 행동을 보였다. 그들은 누구보다 사람을 잘 믿으면서 따뜻했다. 고가티 할머니는 의심을 눈초리로 맞이했던 실비아를 누구보다 챙겼고, 에이딘은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 준 션을 기다리는 일편단심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아마 사고뭉치 조모와 손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아니었을까.

전지적 유교 시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을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해제시켰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긴장 넘치는 스릴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더 웃긴 유쾌함으로 가득 채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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