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10주년 한정특별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시간을 파는 상점의 주인이다. / p.235

나에게는 남들이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다. 초등학교 때 생활계획표 짜던 버릇을 아직 개도 못 준 상태로 살고 있는 것도, 지독한 계획형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이 강박이 남긴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내가 본의 아니게 시간으로 폐를 끼칠 정도면 말이 끝난 셈이다.

시간이 곧 신뢰라는 나름의 철칙과 함께 솔직히 늦는 것보다 빠른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예정 시간의 1.5 배를 먼저 생각해 준비를 했는데, 막상 시간과 삶이라는 게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 약속을 하면 30 분 먼저 가서 기다려 정시에 도착한 상대방을 죄책감 느끼게 하는 일.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일찍 도착하는 것 또한 시간 관리를 못한다는 말을 했다. 지금은 조금 정신을 차려서 15 분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시간을 파는 상점 주인 백온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청소년 시기 때에는 지적 허영심에 휩싸여 문학을 멀리 했었다. 이해조차 되지 않는 철학과 사회학, 인문학 위주의 서적을 읽었으나, 성인이 되면서 청소년 문학을 조금씩 읽는 중이다. 이 소설 역시도 청소년 문학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백온조는 어렸을 때 소방관인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람과 세상을 챙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아 살고 있는 당찬 고등학생이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이 곧 금이자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과한 정의감과 부족한 체력으로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의 신이었던 크로노스라는 이름을 달고 온라인에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열었다.

나름의 철칙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을 팔아 의뢰인들의 부탁을 대신 수행해 주는 역할을 한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하기도 했고, 누가 보면 터무니없는 일을 대신 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온조는 편견을 조금씩 깨기도, 시간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기도,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6 학년 아이린 어린이의 이야기와 강토라는 이름을 가진 의뢰인의 부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린 어린이는 동화에서 괘종시계가 열세 번 치는 내용을 보고 의문을 가졌고, 크로노스에게 질문한다. 과연 열세 번 치는 것이 가능하냐는 말이었다. 크로노스는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과 함께 시간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아이린에게 전달해 준다. 물론, 아이린은 어린 나이여서 크로노스의 답변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소득은 있었던 내용이다.

어린이 특유의 순수함으로 미소 짓게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크로노스의 이야기가 깊은 생각의 연결고리로 이끌게 했다. 아이린 어린이가 읽었던 동화의 주인공은 13 시간이나 26 시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생물체라는 것이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어서 이러한 시각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한, 시간이 곧 인간이 정한 약속이라는 점도 그랬다. 시간을 약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24 시간으로 정했다는 것조차도 약속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과학에 따라 정해진 시간이었기에 아마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했던 것 같다.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30 시간도, 40 시간도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세계의 합의와 또 다른 과학의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강토라는 이름을 가진 의뢰인 이야기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강토는 크로노스에게 할아버지와의 약속에 대신 나가 점심을 맛있게 먹어 달라는 의뢰를 한다. 사연을 몰랐던 크로노스는 최대한 임기응변을 발휘해 점심을 같이 먹으며, 할아버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할아버지는 크로노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는 강토와 같이 오기를 바란다면서 약속을 잡는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유가 있다면 거절하면 될 사이에 대신 사람을 세운다는 것이 할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사연도 모르는 크로노스가 수행하기에는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토와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지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세상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오스크나 전자 기기의 발전으로 정보화 소외 현상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시간과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도 떠오르게 되었다. 강토의 망설임도 이해가 됐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순수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강산이 변한 지금 내가 생각하거나 겪은 지금의 청소년들과 10 년 전의 청소년들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서 더욱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금 아이들이 불순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세월이 빠르게 바뀌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조금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경시되는 현 시대의 상황과 비슷한 결이 아닐까.

읽으면서 별안간 울컥하는 일이 많았다. 그동안 시간이라는 강박에 시달려 여유가 없는 삶을 허둥대다 온조와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많은 위로가 되었다. 특히, 온조의 어머니의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시간이 금이라는 말이 좋기는 하지만, 그 말이 그만큼 폭력적이라는 말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는 말. 나에게는 시간이 전부가 아니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되돌아보라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사실 나를 포함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쉬고 있는 그 자체로도 죄가 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마치 경주마처럼 말이다. 그러다 제풀에 지치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 YOLO나 소확행 같은 신조어가 나오지 않았을까. 강토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지나치게 빠르면 꼭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 와닿는다.

이미 세상에서 비관적이면서도 염세주의적인 시선에 적응된 나에게 순수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시선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다시 끼워 주었다. 물론,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금방 흐려지기는 하겠지만, 남긴 메시지는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게 청소년 문학의 매력은 아닐까. 모처럼 깨끗한 렌즈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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