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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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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갈 것입니다. / p.91
이 책은 소크라테스 변명과 카프카의 소설이 실렸다. 처음에 표지가 나에게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소크라테스와 카프카의 조합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져서 선택한 책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나타내고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기에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변명 파트는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재판관과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을 변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사람들을 이상한 논리로 따르게 해 타락시키는 죄와 기존의 신을 모시지 않으면서 새로운 신을 믿고 있는 죄를 가지고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장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며, 그저 지혜로울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 이를 확인하고자 했고, 국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설득하면서 비판하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명언을 던졌던 철학자로 알고 있다. 변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다. 특히, 재판을 받으면서도 비굴하게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축소하지 않았다는 점과 죽음보다 부조리를 더 무서워했다는 점이다. 물론, 죄를 지었다는 명목으로 재판장에 서서 변론을 하고 있기는 하나, 이는 질투와 시기로 인한 음모이므로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비굴하지 않게 당당히 재판관과 시민들을 설득했다. 또한, 사형 판결이 났을 때에는 자식들이 타락했을 때에는 자신처럼 괴롭히거나 책망하라는 부탁을 남겼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변명을 무엇보다 경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부조리 역시도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의 목에 칼이 들어온 순간에 진실과 정의를 선택한다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이라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할 법한 문제이다. 음모로 인해 벌어진 불합리한 죽음에서도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잃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정의이지 않았을까.
변신 파트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그레고르에게는 아픈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이 있다. 생계를 위해 회사의 영업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동생이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따뜻한 오빠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레고르는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했다. 처음에 동생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다거나 방을 청소해 주는 등 그를 챙겼으나, 그레고르와 가족들은 거리를 두면서 생활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간격을 좁혀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유일한 수입원이 사라지자 생계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갈수록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귀찮은 벌레로 여기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 변신이라는 소설이 권장도서로 선정이 되면서 읽기는 했으나, 검은색의 표지와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다는 설정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내용과 느낌은 전부 사라지고 없다. 당시 나이만큼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읽게 되니까 또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특히,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과 벌레가 된 이후에도 가족들을 생각하는 모습들이 연민이 들기도, 동정심이 들기도,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결국 결말까지도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에는 부모님께서 나를 먹여 살리셨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내가 가족을 부양해야 되는 입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를 마치 나의 모습으로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는 너무 큰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레로 변하는 순간에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모습에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 미련한 생각으로 보였다. 그런데 과연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그 상황에서 가족들의 안위와 집안 생계를 걱정했을까. 현실적으로 어떻게든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을 것이며, 순식간에 자신의 효용을 잃은 이후 변해버린 가족들의 태도에 경멸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그레고르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희생이지 않았을까.
그동안 잘 몰랐던 연설과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 소크라테스와 변신에 대한 생각이 오늘을 기점으로 조금은 다르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묻는다면 올바른 사회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대답할 것이고, 변신에 대해 묻는다면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달려온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말할 것이다. 정의감으로 불타오르다가 안타까움으로 식게 된 뭔가 묘한 이야기를 만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