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라는 모험 - 미지의 타인과 낯선 무언가가 하나의 의미가 될 때
샤를 페팽 지음, 한수민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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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존재의 조각배를 다른 곳으로 끌게 되었다. / p.100

만남이라는 게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극강 내향성 인간인 것도 모자라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에 나도 모르게 뚝딱거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계획해서 머리로 구상하는데 사람이 꼭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아서 결국은 나의 헛점을 보이게 된다.

아무리 익숙한 분위기여도 앞에 만나는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라면 어색한 공기도 피할 수 없다. 보통은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네서 푼다던데 나는 이제 어색함을 즐기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보니 그것 또한 하나의 문제이다. 사실 상대가 느끼는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해 신나게 머리를 굴리기는 하나 내가 말 하나 잘못했다가 오히려 얼음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검열이라는 이름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반응이 늦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스트레스인 상황이 더 높은 것이 만남이다.

이 책은 만남이라는 소재를 다룬 철학 도서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만남을 깊이 생각할 일이 없는데 모험이라고 비유한 제목에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 다룬 인문학 도서를 인상 깊게 읽었다. 사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에서 주었던 그들의 느낌은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아서 이 책도 나에게 그런 강렬한 느낌을 줄 것 같다는 기대가 되어 읽게 되었다.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는 만남의 징후들이라는 주제의 이야기이다.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는 만남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이라는 주제로, 만나기 위해 내가 해야 될 마음가짐이나 생각을 말한다. 세 번째는 진정한 삶은 만남이라는 주제로 만남을 학자들이나 이론들을 통해 해석하는 내용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첫 번째 파트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다른 가치관에 대한 혼란, 타인의 존재로 나의 삶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변화와 책임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변화라는 말이 너무 뻔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다.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카뮈와 마리아 카자레스의 만남으로 카뮈는 세상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줄여 이를 아름답게 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다른 일화로 시인 엘뤼아르와 화가 피카소의 만남으로 피카소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욕망 대신 이를 다른 관점으로 돌렸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예술에 담게 된다. 사람의 만남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관계라는 점에서 조금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화에 나오는 이상적 만남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신선했다. 혼란스럽다거나 알아보는 것, 궁금증 등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여서 재미있게 읽었던 반면 책임감에는 뭔가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파트에서 타인이 다가와 불안정한 누군가에게 인간적인 연약함이라는 의무를 준다고 표현했다. 그에 대한 예시로서 지나가던 노숙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도울지 생각한다는 점을 들었는데 타인과의 만남으로 도덕성을 느끼는 것 또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만남의 긍정적인 영향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전반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극히 보수적이면서도 완벽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어서 남에게 흠이 된다거나 단점이 될만한 일을 내놓는 일을 주저하는 편이다. 아마도 말이 없는 이유도 말 하나 잘못하게 되어 상대에게 약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성향들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많이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자기의 틀에서 빠져나오고, 기대하지 말고, 가면을 벗고 상대를 대할 것. 특히,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사람의 표본을 그리고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회로 살리지 못할 수도 있기에 지양해야 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주변에서 이상형과 반대가 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재미있기도 했다.

여기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반대의 성향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을 다룬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가치관 성향의 차이로 갈등을 가지고 있던 두 교황은 서로의 아픔을 말하면서 가까워졌고, 베네딕토 16세는 프란치스코에게 교황의 자리를 주고 사임한다. 이는 사상 최초의 자진 사임이었는데, 살얼음판 같았던 둘의 갈등을 봉합시켰던 것은 서로의 나약함과 취약성을 오픈한 결과였다. 항상 나의 안 좋은 점을 닫고 보여주기식으로만 만남을 대했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나의 아픈 과거사나 단점을 주고받는 친한 지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지인들은 좋은 이야기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다. 가끔 속을 너무 모르겠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서 조금은 내려놓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인류학이나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만남 해석이 나오지만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하나는 인류학적인 해석으로서 동물도 다른 동물들과 만나지만 왜 인간은 만남에서 더욱 큰 변화를 만드는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도 있고, 아무리 혼자 다니는 동물이 있다고 해도 인간만큼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종은 없다. 그러한 이유로서 인간은 조산아로 태어났다는 생물학적인 근거가 새롭게 다가왔다. 인간의 배아 세포가 완벽한 성장을 하려면 18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한데, 9개월만 채우고 세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불완전함을 채우고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완성된 인간으로서의 과정에서 정치적인 인간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해석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해석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만남을 행한다는 내용이 있다. 신자들은 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재발견하며, 신에게 자신을 던지는 과정에서 미지의 타인에게 도약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종교의 이념과 사상을 많은 이들에게 퍼트리기 위해 공동체의 중요성을 논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을 보니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종교적 해석의 마지막 부분에 만남은 정신의 실체를 불러일으키고 깨어나게 했음을 드러내는 신호이며, 이는 신자와 무신론자를 떠나서 항상 진실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을 믿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 이 내용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나 인물들의 일화를 같이 설명해 주고, 문체 자체가 어렵게 나와 있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류학이나 종교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만남에 대한 관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두고두고 보면서 씹고 소화시켜야 완전히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는 꽃이라는 의미를 배운대로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서 보면 그렇게 단순한 해석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변화나 존재 그 이상의 큰 무언가로 와닿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남에 대한 예찬이자 프랑스 특유의 낭만이 느껴졌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이렇게 크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낭만과 예찬이 만남이라면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나에게 새로운 모험이자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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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치 1 -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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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다는 거야. / p.304




이 책은 히어로에게 복수하는 빌런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슈퍼맨 영화에서 볼법한 색감 넘치는 책의 표지부터 선하지 않은 히어로와 악하지 않은 빌런의 대결이라는 말까지 전부 관심이 갔던 책이다. 히어로와 빌런이 대결 구도를 펼쳤던 것은 예전부터 너무 흔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대체 역할이 바뀐 둘의 대결은 어떻게 될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궁금해 읽게 된 책이다.

주인공인 애나는 인력 중개 업체에서 의뢰를 받아 빌런의 일을 수행하는 헨치이다. 프리랜서로서 일을 단기성으로 받아서 업무를 하는데, 사무직 위주로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조금 따분하다고 느껴지던 어느 날 고용주의 특별한 제안에 따라 현장에서 히어로인 슈퍼콜라이더와 상대하는 일을 하다 큰 부상을 당한다. 신체적인 부상뿐만 아니라 일까지 할 수 없게 된 애나는 친구인 준의 집에서 히어로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다는 정보를 조사해 수집한다. 친구인 준은 이를 말렸지만 히어로에게 분노하고 있던 애나는 이를 멈추지 않았고, 애나의 데이터를 본 빌런의 회사에 파격적으로 취업하게 된다.

표지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이기는 했지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 읽었다. 처음에는 악한 일을 저지른 히어로와 착한 일을 하는 빌런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히어로의 이면을 내용이었다는 게 새로우면서도 좋았다. 평소 1 권과 2 권을 나눈 책 자체를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 기피하고 있었는데 그 두 권을 대략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매체나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히어로들의 선한 영향력과 나의 편견이 깨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기에 소설 자체에 큰 매력을 느꼈다. 사실 히어로는 세상을 구하면서 사람을 지키는 일을 한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히어로는 그렇다. 그러나 애나는 이것을 역으로 생각했다. 히어로가 세상을 구하는 선한 영향력을 얻는 동안 희생되는 것들과 사람들의 믿음을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히어로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닌 인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단지 히어로는 세상을 구하는 선한 존재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 내 주변에 있는 인간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에 이기심과 질투, 정치질과 갈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그들도 똑같았다. 자신의 무언가가 훼손된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주변에 있는 사람을 버리기도,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이미지를 관리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구하려고 이미지 관리를 하는 나에 심취한 사람들처럼 느껴져서 배신감이 들었다. 솔직히 초능력 가지고 있는 유명인사들과 뭐가 다르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한, 보면서 맹목적으로 연예인을 따르는 소수의 팬들이 떠오르는 순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죄를 저지르는 연예인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팬들을 말이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있음에도 히어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를 옹호하고, 빌런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소설에서 나오는 히어로들의 세상과 인간 세계는 별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악하지 않은 빌런이라고는 했으나 애나를 포함한 빌런들이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히어로와 빌런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었다. 어차피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흔들 수 있으며, 초능력을 가지는 것 또한 둘 다 다르지 않다. 단지 차이점은 이미지 메이킹의 차이다. 이 소설을 보는 내내 둘 다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굳이 애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빌런이라고 칭하는 게 맞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애나가 히어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도 히어로가 행한 일에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빌런도 행한 일에 도움을 받는 자가 있다면 히어로보다 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나가 빌런으로 일하는 것이 하나의 정당성이 있다고 보여졌다. 히어로에게 악감정이 들었고, 애나에게 더욱 감정적으로 치우쳐져서 보게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슈퍼콜라이더의 경우에는 세상을 구할 선한 의도로 무언가를 행하지도 않아서 히어로라고 하기에도 의문스러웠다. 이름만 히어로일 뿐 자기가 만든 사람들의 믿음에 심취한 빌런인 것 같았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이겨내는 애나를 응원했다. 물론, 분노는 부정적인 마음을 키우고 마음을 갉아 먹는 것이라고는 하나,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애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심지어 능력이 히어로들보다 더 출중했고, 두뇌도 명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빌런의 아래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결말까지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해피 엔딩이어서 만족스러웠다.

히어로와 빌런의 피 튀기는 싸움보다는 빌런인 애나가 벗겨준 히어로에 대한 편견들이 더 재미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히어로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박진감이 넘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소득이 있었다. 나의 편견 속에 있는 히어로와 빌런이 우당탕탕 싸우는 흐름으로 가게 만들어 주었던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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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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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는 최고의 보상인 것을. / p.100



이 책은 인도 소년과 벵골 호랑이의 227 일간의 표류기를 다룬 소설이다. 맨부커상은 최근에도 한국 작가 두 분이 후보에 오를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이름이다. 사실 맨부커상 후보에 있던 한국 소설들은 내 취향과 거리가 멀기는 했으나, 그래도 베스트셀러라고 하니까 해외 소설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피신 몰리토 파텔은 인도의 소년이다. 수영을 잘하는 이웃 아저씨의 영향으로 지은 프랑스의 유명한 수영장 이름에서 따왔다. 학창시절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파이 파텔이라고 부르게 해 파이 파텔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는 폰디체리라는 동물원 소유주의 아들로 항상 동물과 함께 살아왔다. 캐나다로 이주를 위해 이동하던 중 배가 가라앉는 사고를 당한다. 구명보트로 옮겨가 생존했지만, 가족을 잃었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골 호랑이. 절망의 상황에서 바다에게 삼켜 죽을 위기뿐 아니라 위험한 동물들에게 먹힐 위험까지 처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얼룩말이 죽기 위해 바둥대는 모습, 오랑우탄이 포식자에게 죽음을 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파텔은 공포를 느낀다. 결국 그 구명보트 안에는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 파텔만 남게 된다. 두려움과 공포, 희망과 막연함 등 구명보트 안에서의 숨 막히는 227 일간의 여정을 한다.

호랑이와 인간이 하나의 구명보트에서 227 일을 같이 보낸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것도 처음에는 호랑이뿐만 아니라 하이에나라는 또 다른 맹금류가 있었기에 내 정신력을 가진 파이파텔이었다면 이미 죽었다는 생각으로 호랑이에게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 혹은 하이에나에게 사지가 찢기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지만 생각만 해도 조금 소름 끼치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내용들이었다.

표류기라고는 하나, 크게 일어난 사건들은 없다. 오히려 잔잔하게 흘러가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위기 자체는 정적이기는 하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더욱 역동적이었다. 마치 살생을 주제로 한 소설을 읽는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물론, 표류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냥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파이 파텔의 심리와 같이 행동을 보고 나니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피가 튀기고 살생이 벌어지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상상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파이 파텔이라는 소년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신을 믿고 싶다는 이유로 힌두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자가 되는 것도 모자라 다양한 종교에서 진리를 찾고, 선생님의 무신론마저도 이해하는 생각이 넓은 소년이었다. 또한, 리퍼드 파커와 불편하면서도 평화로운 표류를 할 수 있었던 동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면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는 타협을 하는 모습들이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년이지만 읽는 내내 그를 응원할 수 있었다.

조합이 되지 않는 호랑이와 인간의 대치 상태에서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랑이와 인간의 종을 뛰어 넘는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다룬 소설이라는 추측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리처드 파커와 파이 파텔이 교감을 하는 장면은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파이 파텔이라는 인도 소년이기 때문에 그의 심리와 성격, 바다에서의 상황 위주로 묘사가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소설은 언급한 것처럼 해피 엔딩이다. 아니,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에 조금 무리가 있기는 했다.

단순한 표류기가 아니었다. 파이 파텔이 종교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여졌던 철학적이고도 종교적인 내용들로 소설 자체가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은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분해해 재정립한다거나 눈으로 보일 수 있게 비유들이 나에게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공포심만이 생명를 패배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예전에 습지에서 살아남은 한 여자를 그린 소설을 읽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덮고 나니 파이 파텔이 나에게 용기이자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악조건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으니 바다에서 삶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살기를 바란다는 것. 어쩌면 나 역시도 세상이라는 커다란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어렵고 난해한 소설이어서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으나, 여러모로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던 소년과 호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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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대한 감각 트리플 12
민병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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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대한 먼 곳과 먼 시간을 떠올린다. / p.30



이 책은 트리플 시리즈로 민병훈 작가님의 단편 소설이 실렸다. 개인적으로 트리플 시리즈를 보기 시작하면서 관심이 생겼다. 기회가 된다면 전부를 사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관심 가는 제목의 소설이 많았는데, 트리플 시리즈의 신작이어서 주저없이 읽게 되었다.

크게 세 개의 소설과 한 개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에 평론가님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실린 겨울에 대한 감각은 어머니와 함께 오키나와 여행을 갔던 일, 삿포로에 있었던 일, 공항 출국 심사와 같이 주인공이 겪었던 일들을 시간의 순서 없이 말한다. 이름 모르는 나라는 사람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한 이야기이다. 거기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생각과 기억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또한 불현듯이 떠오른다.

두 번째 벌목에 대한 감각은 한밤중 집에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 산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는데, 이는 환청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주인공 집 근처에서 벌목 작업이 시작이 되고, 주인공은 이러한 일이 달갑지 않다. 벌목에 대한 공포와 이웃들과의 이야기, 산림과 관련 공무원과 나누는 이야기, 벌목하는 인부들에게 향하는 복수심 등 주인공이 느낀 감정과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불안에 대한 감각은 주인공이 바다 위 배위에서부터 시작된다. 과거에 보았던 어떤 사건이 떠오르고, 그걸로 어렸을 적 친구와 비오는 날 있던 개구리의 죽음을 떠올리기도 한다. 첫 번째 소설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무의식적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충격적인 상황을 보았던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에세이는 저자에 대한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부터 평소에 생각하는 것, 어떠한 상황에 가지고 있는 감정,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따로 부가적인 설명 하나 없이 쭉 나열했다. 질문 하나 없는 백문백답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세 개의 소설은 하나같이 죽음이라는 것과 관통이 되어 있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죽음, 두 번째는 동료의 죽음, 세 번째는 바다에서의 죽음. 죽음이라는 어떠한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자 생각이었다. 그것을 대변하는 겨울과 벌목, 불안에 대한 감각이 곧 제목이었다는 사실이 인식되었다. 어떻게 보면 큰 사건에서 보았던 감정들이 친절하게 서술이 되어 있다거나, 보편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그저 읽으면서 나만의 방식과 기억에 의존해 두려움과 공포, 죄책감, 그리움 등의 감정을 추측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난감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소설이자 에세이였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소설과 에세이는 어느 정도 스토리 라인이 있었는데,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바뀌는 상황과 배경, 주인공의 흐름에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심지어 이전 페이지에서는 독자에게 감정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달이 되던 것이 갑자기 다음 장에서는 옆에 있는 다른 화자와의 대화로 감정을 전달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학교에서 배웠던 이상 작가의 시와 소설이 겹쳐서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암호처럼 느끼기도 했었다. 이것은 대체 무슨 말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야기인가.

읽으면서도 혼란스러운 기억을 안고 해설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이 맞아 떨어졌다. 해설에 따르면 보통 소설이라고 하면 습관적으로 인물이 하는 일련의 행동과 생각이 맥락에 따라 읽혀지는데, 저자의 소설들은 이러한 습관이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감정과 생각, 배경 이외의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어서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해설로서 나름의 위안을 얻기도 했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사진에 가깝다. 이해하는 자체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지만, 풍경과 벌어지는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게 수월했다. 주인공이 출국심사대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 나하 공항과 스스키노의 풍경 등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야기 자체는 사진으로 그려졌다. 아마 우리가 읽는 보통의 소설들이 필름이라고 하면 이 소설은 사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추억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을 머릿속으로 촬영한 하나의 사진을 조각조각 글로 서술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늘 시간에 흐름에 따라 정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여행에서 좋은 풍경을 보고 있을 때,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불쑥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일 할 업무에 대한 걱정이 들기도 하는 것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기억할 때가 많다. 이러한 부분에서 저자의 이야기들이 뭔가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난해하게 시작했지만 오래 씹고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을 만나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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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길을 잃고 헤매는 이가 있다 - 심리학자 곽금주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시대 내면의 초상
곽금주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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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과 함께 가을도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 p.140


이 책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님의 심리학 도서이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 역시도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루었을 정도로 평소 심리학 도서 자체에 관심이 많다. 사실 곽금주 교수님에 대해 잘 모르기는 하지만 제목 자체에 눈길이 갔다.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이 나 또한 마음속에 길을 잃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에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크게 4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례만 보면 1 장은 마음의 우물 들여다보기, 2 장은 상처도 받고 위로도 받는 관계, 3 장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길을 잃고 헤매는 이가 있다, 4 장은 갈등은 어디에나 있다 라는 주제이며, 사람들이 흔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과 감정, 더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다루고 있다.

1 장은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 나르시시즘, 분노, 혼란 등의 개인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분노의 나의 힘이라는 주제를 가진 파트가 가장 인상이 깊었다. 분노가 인간의 성취 욕구를 자극시키고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 예시로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의 한 일화를 소개했다. 실제로 분노가 공격성을 드러내는 건 10 % 정도에 불과하다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분노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새롭게 느껴졌다.

2 장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단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과의 이별까지 크게 다루고 있었는데, 과거 다른 리뷰에서도 다루었던 것처럼 개인적인 경험이나 후회가 있기 때문에 펫로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어린이 치과에서 아이들의 불안을 경감시키는 리트리버 강아지의 일화를 소개한다. 또한, 반려동물과 사별한 사람들이 우울증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조금이나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흔한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면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감이 들었던 부분이었다.

3 장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지만,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 공감이 갈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학 개미와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이유와 학업 및 취업 비리에 분노하는 젊은 사람들 등 현대 사회의 문제들과 그속에서 살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파트이다. 개인적으로 자이가르니크 효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는 미완성에 대한 기록을 말하는데, 인간은 완성되지 못한 과제를 더 잘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증명이 된다고 한다. 나 역시도 용기가 없어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가 더 많은 편인데, 이게 나만 하는 후회는 아니라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되었다.

4 장은 인간이라면 필수불가결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대 갈등부터 시작해 직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람과의 갈등, 성별에 대한 갈등, 더 넘어서 갑질과 폭력 등 갈등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부딪힘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데이트 폭력 파트에 관심이 갔다. 미국에서의 케이티법과 영국의 클레어법을 예시로 데이트 폭력을 두 사람의 일이라고 간주하는 현대 사회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내용이 크게 와닿았다.

사실 저자의 시각으로 보는 관점이 내 견해와 다르기도 했다. 이는 경험한 세대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물이자 괴리감이었을 것이다.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하기에 어쩌면 읽고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당연한 감정이기도 하다. 무조건적으로 젊은 세대를 설득하거나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내용이 담겼다면 거부감이 들었을 텐데 젊은 세대의 부정적인 감정을 같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내용이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사회의 책임도 짚어 준다는 측면에서 세대이자 견해의 차이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심리학과 교수님의 치유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보니 나의 예상과 다르게 심리학 연구나 실험,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들여다보는 심리학 도서에 가까웠다. 아마 공감만 해 주는 에세이였다면 한순간의 감정으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미처 알지 못했던 심리학 용어를 습득할 수 있었으며,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어서 내 생각의 폭과 깊이도 더욱 넓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특히, 설득력 있게 '너만 그런 고민하는 거 아니야. 남들도 다 하고 있어.' 라는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이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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