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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라는 모험 - 미지의 타인과 낯선 무언가가 하나의 의미가 될 때
샤를 페팽 지음, 한수민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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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존재의 조각배를 다른 곳으로 끌게 되었다. / p.100
만남이라는 게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극강 내향성 인간인 것도 모자라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에 나도 모르게 뚝딱거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계획해서 머리로 구상하는데 사람이 꼭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아서 결국은 나의 헛점을 보이게 된다.
아무리 익숙한 분위기여도 앞에 만나는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라면 어색한 공기도 피할 수 없다. 보통은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네서 푼다던데 나는 이제 어색함을 즐기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보니 그것 또한 하나의 문제이다. 사실 상대가 느끼는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해 신나게 머리를 굴리기는 하나 내가 말 하나 잘못했다가 오히려 얼음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검열이라는 이름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반응이 늦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스트레스인 상황이 더 높은 것이 만남이다.
이 책은 만남이라는 소재를 다룬 철학 도서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만남을 깊이 생각할 일이 없는데 모험이라고 비유한 제목에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 다룬 인문학 도서를 인상 깊게 읽었다. 사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에서 주었던 그들의 느낌은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아서 이 책도 나에게 그런 강렬한 느낌을 줄 것 같다는 기대가 되어 읽게 되었다.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는 만남의 징후들이라는 주제의 이야기이다.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는 만남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이라는 주제로, 만나기 위해 내가 해야 될 마음가짐이나 생각을 말한다. 세 번째는 진정한 삶은 만남이라는 주제로 만남을 학자들이나 이론들을 통해 해석하는 내용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첫 번째 파트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다른 가치관에 대한 혼란, 타인의 존재로 나의 삶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변화와 책임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변화라는 말이 너무 뻔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다.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카뮈와 마리아 카자레스의 만남으로 카뮈는 세상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줄여 이를 아름답게 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다른 일화로 시인 엘뤼아르와 화가 피카소의 만남으로 피카소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욕망 대신 이를 다른 관점으로 돌렸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예술에 담게 된다. 사람의 만남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관계라는 점에서 조금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화에 나오는 이상적 만남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신선했다. 혼란스럽다거나 알아보는 것, 궁금증 등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여서 재미있게 읽었던 반면 책임감에는 뭔가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파트에서 타인이 다가와 불안정한 누군가에게 인간적인 연약함이라는 의무를 준다고 표현했다. 그에 대한 예시로서 지나가던 노숙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도울지 생각한다는 점을 들었는데 타인과의 만남으로 도덕성을 느끼는 것 또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만남의 긍정적인 영향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전반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극히 보수적이면서도 완벽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어서 남에게 흠이 된다거나 단점이 될만한 일을 내놓는 일을 주저하는 편이다. 아마도 말이 없는 이유도 말 하나 잘못하게 되어 상대에게 약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성향들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많이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자기의 틀에서 빠져나오고, 기대하지 말고, 가면을 벗고 상대를 대할 것. 특히,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사람의 표본을 그리고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회로 살리지 못할 수도 있기에 지양해야 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주변에서 이상형과 반대가 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재미있기도 했다.
여기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반대의 성향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을 다룬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가치관 성향의 차이로 갈등을 가지고 있던 두 교황은 서로의 아픔을 말하면서 가까워졌고, 베네딕토 16세는 프란치스코에게 교황의 자리를 주고 사임한다. 이는 사상 최초의 자진 사임이었는데, 살얼음판 같았던 둘의 갈등을 봉합시켰던 것은 서로의 나약함과 취약성을 오픈한 결과였다. 항상 나의 안 좋은 점을 닫고 보여주기식으로만 만남을 대했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나의 아픈 과거사나 단점을 주고받는 친한 지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지인들은 좋은 이야기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다. 가끔 속을 너무 모르겠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서 조금은 내려놓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인류학이나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만남 해석이 나오지만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하나는 인류학적인 해석으로서 동물도 다른 동물들과 만나지만 왜 인간은 만남에서 더욱 큰 변화를 만드는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도 있고, 아무리 혼자 다니는 동물이 있다고 해도 인간만큼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종은 없다. 그러한 이유로서 인간은 조산아로 태어났다는 생물학적인 근거가 새롭게 다가왔다. 인간의 배아 세포가 완벽한 성장을 하려면 18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한데, 9개월만 채우고 세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불완전함을 채우고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완성된 인간으로서의 과정에서 정치적인 인간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해석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해석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만남을 행한다는 내용이 있다. 신자들은 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재발견하며, 신에게 자신을 던지는 과정에서 미지의 타인에게 도약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종교의 이념과 사상을 많은 이들에게 퍼트리기 위해 공동체의 중요성을 논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을 보니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종교적 해석의 마지막 부분에 만남은 정신의 실체를 불러일으키고 깨어나게 했음을 드러내는 신호이며, 이는 신자와 무신론자를 떠나서 항상 진실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을 믿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 이 내용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나 인물들의 일화를 같이 설명해 주고, 문체 자체가 어렵게 나와 있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류학이나 종교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만남에 대한 관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두고두고 보면서 씹고 소화시켜야 완전히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는 꽃이라는 의미를 배운대로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서 보면 그렇게 단순한 해석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변화나 존재 그 이상의 큰 무언가로 와닿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남에 대한 예찬이자 프랑스 특유의 낭만이 느껴졌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이렇게 크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낭만과 예찬이 만남이라면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나에게 새로운 모험이자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