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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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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는 최고의 보상인 것을. / p.100
이 책은 인도 소년과 벵골 호랑이의 227 일간의 표류기를 다룬 소설이다. 맨부커상은 최근에도 한국 작가 두 분이 후보에 오를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이름이다. 사실 맨부커상 후보에 있던 한국 소설들은 내 취향과 거리가 멀기는 했으나, 그래도 베스트셀러라고 하니까 해외 소설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피신 몰리토 파텔은 인도의 소년이다. 수영을 잘하는 이웃 아저씨의 영향으로 지은 프랑스의 유명한 수영장 이름에서 따왔다. 학창시절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파이 파텔이라고 부르게 해 파이 파텔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는 폰디체리라는 동물원 소유주의 아들로 항상 동물과 함께 살아왔다. 캐나다로 이주를 위해 이동하던 중 배가 가라앉는 사고를 당한다. 구명보트로 옮겨가 생존했지만, 가족을 잃었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골 호랑이. 절망의 상황에서 바다에게 삼켜 죽을 위기뿐 아니라 위험한 동물들에게 먹힐 위험까지 처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얼룩말이 죽기 위해 바둥대는 모습, 오랑우탄이 포식자에게 죽음을 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파텔은 공포를 느낀다. 결국 그 구명보트 안에는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 파텔만 남게 된다. 두려움과 공포, 희망과 막연함 등 구명보트 안에서의 숨 막히는 227 일간의 여정을 한다.
호랑이와 인간이 하나의 구명보트에서 227 일을 같이 보낸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것도 처음에는 호랑이뿐만 아니라 하이에나라는 또 다른 맹금류가 있었기에 내 정신력을 가진 파이파텔이었다면 이미 죽었다는 생각으로 호랑이에게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 혹은 하이에나에게 사지가 찢기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지만 생각만 해도 조금 소름 끼치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내용들이었다.
표류기라고는 하나, 크게 일어난 사건들은 없다. 오히려 잔잔하게 흘러가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위기 자체는 정적이기는 하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더욱 역동적이었다. 마치 살생을 주제로 한 소설을 읽는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물론, 표류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냥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파이 파텔의 심리와 같이 행동을 보고 나니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피가 튀기고 살생이 벌어지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상상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파이 파텔이라는 소년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신을 믿고 싶다는 이유로 힌두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자가 되는 것도 모자라 다양한 종교에서 진리를 찾고, 선생님의 무신론마저도 이해하는 생각이 넓은 소년이었다. 또한, 리퍼드 파커와 불편하면서도 평화로운 표류를 할 수 있었던 동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면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는 타협을 하는 모습들이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년이지만 읽는 내내 그를 응원할 수 있었다.
조합이 되지 않는 호랑이와 인간의 대치 상태에서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랑이와 인간의 종을 뛰어 넘는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다룬 소설이라는 추측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리처드 파커와 파이 파텔이 교감을 하는 장면은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파이 파텔이라는 인도 소년이기 때문에 그의 심리와 성격, 바다에서의 상황 위주로 묘사가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소설은 언급한 것처럼 해피 엔딩이다. 아니,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에 조금 무리가 있기는 했다.
단순한 표류기가 아니었다. 파이 파텔이 종교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여졌던 철학적이고도 종교적인 내용들로 소설 자체가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은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분해해 재정립한다거나 눈으로 보일 수 있게 비유들이 나에게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공포심만이 생명를 패배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예전에 습지에서 살아남은 한 여자를 그린 소설을 읽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덮고 나니 파이 파텔이 나에게 용기이자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악조건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으니 바다에서 삶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살기를 바란다는 것. 어쩌면 나 역시도 세상이라는 커다란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어렵고 난해한 소설이어서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으나, 여러모로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던 소년과 호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