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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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침묵을 견딜 수 없다. / p.306

침묵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말수가 적은 성향 탓에 자연스럽게 침묵이 따라올 때가 많다. 항상 그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이제는 적막한 침묵이 흐르더라도 굳이 이를 깨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다. 사실 자꾸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말을 하고 나면 다시 침묵이 흐르는 상황이 되다 보니 최소한의 노력만 하게 된다.

이 책은 마크 C. 테일러의 침묵에 관한 철학 도서이다. 어떻게 보면 나와 분신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침묵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또한,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이라는 부제가 마음을 움직였는데 아무래도 불안 또한 나의 친구 중 하나로 항상 데리고 다니고 있기에 더욱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침묵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총 열네 개의 챕터로 조금 독특한 구성이 눈에 띄었다. Without, Before, From 등 부사의 목차와 중간에 4,8,12 챕터는 말줄임표이다. 쉬어가라는 의미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사에 맞게 침묵없이, 침묵 전에, 침묵부터, 침묵 너머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했지만 읽으면서 내 예상이 맞는지 확신이 가지는 않는다.

처음에 저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와 침묵에 대한 정의로 시작해 키르케고르,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 철학이나 다른 교양 서적에서 보았던 낯익은 이름부터 처음 듣는 미술가들이 정의하는 침묵 일화들이 나온다. 그러면서 저자가 침묵에 대해 느낀 바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전체적으로 각 챕터마다 발제부터 시작해 비슷한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이중부정>이라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마이클 하이저와 <이중부정> 평론을 준비하기 위해 네바다주 사막으로 떠난다. 마이클 하이저는 <이중부정>의 작품을 만드는 대지미술가인데 저자는 그 작품에서 기이함을 보게 되고,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대지미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글로 표현된 작품의 모습을 선뜻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중부정 작품의 의미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텅 빔'이라는 것이 뭔가 와닿는 지점이 있었다.

단순하게 침묵의 색깔부터 범위 등에 대한 물음부터 종교적, 철학적, 미학적, 등 생각보다 깊고도 넓게 침묵이라는 단어에 대해 정의를 내려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저자가 종교철학자이기 때문에 신의 침묵에 대한 물음들을 서술하기도 했었는데 무신론자에 가까운 무교인이다 보니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이는 책의 문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종교나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기에 더욱 난해한 내용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침묵이 검은색인지, 흰색인지부터 시작해 내가 알고 있는 침묵을 조금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 책을 덮으면서 침묵이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면서도 그것으로 삶의 깨달음이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방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뜻을 알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미술이나 종교 교양서를 통해 어느 정도 기본 바탕의 지식들이 쌓이게 되면 다시 재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상과 달리 침묵의 무게감과 독서 편향의 문제점을 느끼게 해 주었지만, 많은 이들의 침묵의 순간들을 통해 조금은 침묵의 깨달음을 얻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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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 일본 TV도쿄 2021년 방영 12부작 드라마
제인 수 지음, 이은정 옮김 / 미래타임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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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한테 이런 마음을 원했던 거야. / p.129

아이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질문 하나가 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지금 훌쩍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회자가 될 정도로 당시에는 일생의 갈림길처럼 중요한 질문처럼 느껴지는 그런 물음이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거의 쉬지도 않고 바로 나오는 대답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아빠가 좋다고 대답했다. 어머니께서는 내색은 안 하셨지만 아마 속으로 많이 서운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와 그렇게 죽이 잘 맞았다. 여자 아이처럼 인형 놀이보다는 밖에 나가서 격한 운동을 즐겨서 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찬 기억이 더 많다. 아버지의 매미 수준으로 항상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조차도 안 했다고 한다. 지금은 타인보다는 가깝고, 가족보다는 먼 사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제인 수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린 에세이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와는 더욱 친밀감을 느끼지만 이상하게 아버지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아무래도 성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안 되다 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아버지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딸의 입장에서 본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큰 공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저자는 마흔 살 전후의 외동딸이며, 아버지는 일흔을 넘기신 분이다. 현재는 따로 살고 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묘나 이모 병문안 등 다양한 이유로 나름 자주 교류하는 중이다. 이 에세이는 집세를 낸 대가로 아버지와 거래를 통해 쓰게 된 책이지만 어머니의 인생을 듣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적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일생을 알아가는 전반적인 내용들이 인상 깊었지만 <칠월의 가지 구이>와 <미니 트럼프>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칠월의 가지 구이>는 전쟁 당시의 상황을 아버지에게서 듣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듣고 할머니를 나무 앞에 버렸다는 이야기와 소이탄에 타버린 가지를 먹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는 저자의 마음이 곧 내 마음과 같았다. 어떻게 눈에 띈다는 말만 듣고 리어카에 탄 핏줄을 버릴 수가 있으며,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는 가지를 지금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아버지의 모습이 뭔가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역시도 민주화 운동 당시의 참혹함을 직접 겪으신 세대였는데 깊이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참혹함과 소년이었던 아버지가 느꼈을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 트럼프>는 <미워할 수 없는 남자> 파트에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저자의 아버지는 트럼프 지지자이다. 네 번 파산했어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함과 사랑스러움을 저자에게 찬양하는 등의 모습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트럼프가 당시 대선에서 이겼을 때 진보 진영의 힐러리에 대한 험담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주된 내용은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이며, 저자는 이를 못 견딘다는 것이다. 사실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 역시도 함께 뉴스를 볼 때마다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에서부터 가부장적인 마인드로 여성을 차별하는 아버지의 발언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역으로 공격하면서 갈등이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게 되고 한쪽 귀로 흘리는 노하우 아닌 노하우까지 생겼는데 이 부분이 너무나 크게 공감이 되었다.

내용을 읽으면서 아버지와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과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핏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글에 나타나지 않아도 아버지와 외모가 닮았다는 점과 비슷한 성격, 죽이 잘 맞을 때에는 환상의 콤비가 된다는 점. 독자인 내가 봤을 때에도 저자와 저자의 아버지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의견 갈등으로 불이 화르르 타오르는 것이 아닐까.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딸로서 참 공감이 많이 되었다. 집을 넘기면서부터 나타나는 가장으로서의 무책임, 남자가 하늘이라는 태도, 안하무인과 고집불통 등 아버지라면 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나, 이런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 아버지와 너무 비슷한 면이 있었다. 저자가 느끼는 감정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유쾌하면서도 친근하게 보이지만 막상 글을 읽고 나면 애증과 함께 뒤죽박죽인 부녀지간이라는 점이 곧 나와 아버지를 그대로 보인 것만 같았다. 애증과 연민이 뒤섞인 진짜 말 그대로 엉망진창의 관계였다.

사실 아버지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와 나를 모두 아는 친척과 지인분들은 하나같이 닮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머니마저도 핏줄은 못 속이겠다면서 둘의 성격이 판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와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핏줄은 어디 못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도 저자처럼 아버지를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는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니 우리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점이 너무 많다. 아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흔한 좋아하는 음식 하나 모른다. 지금이라도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길들을 하나하나 듣는다면 어렸을 때 아빠가 좋다고 말한 것처럼 조금은 거리가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다짐과 희망을 들게 만든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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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하는 자세 - ‘첫 책 지원 공모’ 선정작
이태승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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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영혼이 없는 게 아니라 영혼이 아예 사라진 거라니까. / p.94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할 때면 클라이언트로부터 항상 받는 오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 국가의 세금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해도 사실 사회복지기관은 민간에서 운영되는 곳이 더 많기 때문에 공무원이 아니다. 그러나 민원이 들어올 때면 하나같이 듣는 말이 이러려고 국가에서 월급 주는 줄 아느냐는 말이다. 공무원이 아니기는 해도 엄밀히 말해 세금으로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절반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태승 작가님의 직장에 대한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일하는 현장이 배경으로 나오는 소설들을 굉장히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현실감이 있어서 공감되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말하지 못할 내용들이 소설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지니 나에게는 그것만큼 사이다가 없다. 그러한 맥락으로 이 소설도 읽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저자의 본 직업에 맞게 공무원이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공무원이 주인공인 소설은 작년에 읽었던 김너울 작가님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가 유일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작품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놓고 보면 공무원이라는 게 주인공의 직업일 뿐이지 그들의 사회보다는 금요일을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대변한 내용이어서 공무원들의 세계를 읽게 된 것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이 소설에는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으면서 깊이 생각할 지점들이 있어서 보통 소설들에 비해 읽는 속도가 조금 오래 걸렸다. 지금까지 읽었던 직장 관련 소설들과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직장을 했던 사람이라면 공감이 되면서 묘하게 나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개인적으로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를>과 <일과 이분의 일>이라는 작품이 나에게 생각할 지점들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는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면서 혁신을 내세우면서 큰 북 설치와 최고의 직원과 최악인 직원을 뽑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북을 설치한 이후 북소리가 들려온다는 민원을 받으면서 주인공은 몰래 감시를 하는 업무까지 하게 되며, 최고와 최악인 직원을 뽑는 일에는 보통 성격이 좋지 않은 상사가 뽑힌다는 예상을 가지고 사내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통한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치 못한 사람이 되었고, 후에 주인공은 투표 관련 내용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는다.

결말을 보면서 나 역시도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가 조직에 속한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성격이 좋지 않은 인물에 투표를 했을 것이다. 그것보다 조직 팀워크를 방해하는 인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누가 봐도 뽑히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뽑혀서 읽으면서도 당황스러웠는데 해설을 보니 공무원 사회에서 조금 어긋나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 또한, 투표를 하는 질문 자체가 최악을 고를 수 있는 뉘앙스의 문항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악독한 상사가 아닌 의외의 인물이 뽑혔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중에 누군가를>은 어느 중학교의 중창단이 대회 본선에 진출했으나 인원 제한이 걸려 한 명의 단원이 빠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창단 담당 교사는 중창단 단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각 단원들과 1:1 면담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면담 내용을 구어체로 표현했다. 배경 자체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듣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배경을 아예 지우고 보면 직장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노래 못 부르는 아이는 직장에서 능력이 없는 동료로, 뒷담화로 소문을 퍼트리는 아이는 남 이야기 험담하기 좋아하는 상사로, 학교에서 높은 지위의 친인척이 있어 들어온 아이는 낙하산으로 입사한 후배로 주어만 바꾸면 딱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결말 자체도 심오했는데 내 기준으로 보면 중창단 자체가 의미 없는 것 같기는 하다.

<일과 이분의 일>은 일과 이분의 일을 하고 있다고 외치는 노 팀장의 이야기이다. 노 팀장은 양계장 일을 겸하고 있는데 기상 상황에 따라 당일 휴가를 내는 게 취미이다. 그래도 직원들에게 삶은 달걀을 주기도 하고, 출근하는 날에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녀는 수시로 해당 팀에 사람이 자신 포함 두 명이기는 하나 후임 사무관의 일을 자신이 받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의 일만큼 일을 하고 있으므로 업무량을 재조정해 줄 것을 과장에게 말하는데, 어느 날 새로운 센터가 생기면서 그곳으로 갈 사람을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내려왔다. 다른 팀장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노 팀장을 밀었으나, 그녀는 업무을 재조정해 줄 것을 말했을 뿐이지, 새로운 곳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절대로 거절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자주 연차를 사용해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그런데 업무을 잘하면서 연차를 사용하는 게 죄가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업무와 근태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생각을 해왔던 터라 가장 심오하게 느껴졌던 소설이다. 비슷한 예로 아이가 아파서 자주 연차를 사용해야 되는 상황의 부모가 업무 능력이 탁월해 피해를 주지 않는 직원이라면 그 사람을 안 좋게 보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고 해서 노 팀장이 티가 나도록 업무를 더 많이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소설을 보고 난 이후에도 크게 답이 내려오지는 않지만 이 역시 결말을 보면서 더욱 깊이 와닿았던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와 별개로 후임의 일까지 맡아서 하느라 업무 과중으로 번아웃이 왔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노 팀장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기에 직장은 늘 보수적인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향 자체가 규칙을 따르는 것에 크게 부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나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실상 나의 직장은 그렇지 못했다. 혁신을 외치면서 정작 머릿속은 그저 보수 그 자체였기에 입맛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들이 나에게는 너무 당연하다고 느꼈던 직장의 룰이나 관례들을 비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늘 시원한 공감을 주는 사이다 소설만 기다렸지만 이렇게 알갱이가 씹히는 봉봉 음료수처럼 씹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소설도 좋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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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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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식들을 위한다면 그냥 조용히 자식들이 하자는대로 해주시기만 하면 돼요. / p.64

드라마를 보면서, 혹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 가까운 예로 우리 가족을 볼 때마다 어쩌면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상상의 동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폭력과 폐륜이 난무하는 극단적인 가족들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 보면 모진 풍파나 시련 하나 없는 집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어쩌면 사연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우리 머릿속의 가족들은 어디까지나 허구의 사실 그 자체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류현재 작가님의 가족에 대한 소설이다. 항상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들은 늘 애증과 같은 존재이다. 이야기 나눌 상대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좋지만 지극히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에 가족들이 조금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제목 자체는 너무 과하게 표현이 되는 부분은 있지만 공감이 될 수 있을 법한 문장이어서 시선이 갔던 작품이다. 어떤 지긋지긋하고도 질긴 가족 같은 이야기일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소설은 칼에 찔린 아버지 김영춘과 찹쌀떡을 먹다 목에 걸린 어머니 이정숙 여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 김영춘은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했으며, 이정숙 여사는 자식 뒷바라지와 남편의 내조를 해왔던 인물이다. 그런 부부에게는 2남 2녀의 자녀로 교사인 딸 김인경과 의사 아들 김현창, 이혼해 아들과 지내는 김은희, 공무원 준비생 김현기라는 자녀가 있다. 이정숙 여사의 병간호를 위해 김은희가 보육교사를 그만두고 아들과 함께 본가에서 생활하면서 부모를 부양한다.

김영춘은 고지식하면서 자존심 센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아버지이다. 자녀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는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불효라고 욕을 던지는 사람. 이정숙은 자식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병에 걸린 이후로는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자녀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교사의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김인경과 아픈 어머니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김현창, 간병을 하고 있으면서 차라리 부모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김은희, 누나인 김은희로부터 무시를 받고 있는 김현기까지 등장하는 인물의 시점에 맞추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풀고 있다.

처음에는 자녀들의 시점에서 소설을 읽었다. 아무래도 나 역시도 부모님의 자녀이면서 가부장적인 사회 자체에 이골이 난 사람이기도 하다 보니 네 명의 자녀의 입장에 감정적으로 이입이 되었다. 자녀들 나름대로 자신을 희생해 부모를 간병하고 있거나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얹혀 산다거나 한심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김영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시대 환경이라고 해도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 말과 행동 자체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읽으면 읽을수록 네 자녀들도 그렇게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일과 가족을 우선시해서 부모님의 병간호를 서로에게 넘기는 것까지는 이해하더라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위치와 체면을 생각해 형제자매에게까지 이기적으로 구는 것은 아주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희의 간병을 너무나 당연히 여겨 그녀의 아픈 외침을 못 들은 척한다거나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더 나은 자식이라는 것을 계산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었다. 결국 이 소설을 전부 읽고 나니 그 아무한테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자기 변명이라고만 느껴졌다.

소설이기에 과장이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읽으면서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장례식장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드라마가 오히려 순화된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말에 나 역시도 크게 공감을 했었는데 아마 이 소설 역시도 현실이었다면 미화는 없고 그저 김영춘과 이정숙의 장례식장에서 네 자녀가 머리 쥐어 뜯으면서 싸웠을 것이라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루고 있으면서 그 안에 김영춘을 죽인 사람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였다. 흔히 말하는 추리 소설의 형태는 아니어서 긴박하게 범인을 찾는 모습들은 없지만 첫 시작 자체가 김영춘이 칼에 찔렸던 것부터 시작하고 그를 죽인 사람을 찾는 게 포인트이기에 각자의 입장을 보면서 누가 더 김영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가, 찾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아름다운 가족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평생 끊을 수 없는 혈연 관계에서의 감정을 이 이야기를 통해 오롯이 느꼈다. 세상은 요지경, 아니 가족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제목처럼 가장 질긴 족쇄와 지긋지긋한 족속의 이야기가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감을 주어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물론, 명치에서 올라오는 답답함과 화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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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 알고 보면 자신보다 타인을 더 배려하는 너에게
조우관 지음 / 유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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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 있기에, 삶을 사랑하기에 불안하다. / p.87

둔한 편에 속한 나와는 조금 거리가 먼 단어이는 하지만 예민하다는 말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예민하다는 말보다는 세심하다는 표현을 주로 쓰는 편인데 꼭 뉘앙스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둔하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인 내가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세심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자주 나에게 고민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해 고통스럽다거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다거나,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배려를 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대략 사람들에 관한 내용들을 묻는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스스로가 힘들어지니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조언과 함께 진심이 느껴진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통할 것이니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렇게 세심한 사람들은 공감과 배려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예민하다는 말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쓰이는 게 조금 안타깝기는 하다.

이 책은 조우관 작가님의 감정에 대한 심리학 도서이다. 가장 선호하는 비소설 계열의 장르가 심리학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눈이 갔다. 심리학 내용이 나온다고 하면 뒤도 안 보고 바로 읽는 편이기에 나와 조금 거리가 먼 내용이기는 해도 궁금증이 생겼다. 예민함보다는 상처받았던 감정들을 회복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되었다.

총 일곱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향, 감정, 관점, 자존감, 인간관계, 성장, 회복으로 나누어졌고, 각각의 챕터마다 여섯 가지의 심리학 용어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심리학 용어 자체는 전공을 공부하면서부터 조금씩 배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심리학 실험이나 실생활에서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흥미를 주었다.

전부 흥미롭게 읽었지만 2 장의 <불안 작동 방식>과 4 장의 <자기 이해>, 6 장의 <친사회적 인간>이라는 파트가 가장 인상 깊었다. <불안의 작동 방식>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강박 장애와 출산 시 산모의 불안이 아기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을 건넨 간호사의 사례를 들어 불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메르스 이후에 강박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안을 막는 것보다 같이 이겨낼 수 있도록 친절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다. 청결에 대한 내용부터 재미있었는데 원래 손을 과하게 자주 씻는 편이기는 했지만 코로나 19 이후 더욱 심해졌다. 밖에 외출한 이후에는 알콜 스왑으로 전부 소독하고, 손을 씻기 위해 과정 조금 보태서 열 번 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는 편이다. 또한, 불안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심한 편이어서 답답할 때가 많은데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이해>는 마음의 체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우울한 사람이 왜 밝아지기를 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의문이 등장하며, 책에 나온 것처럼 유도나 태권도 등 다양한 시합들은 체급에 맞게 경기를 치루면서 부모의 애정의 크기에 따라 자라온 마음의 체급은 왜 존중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각자에 맞는 안정감과 크기에 따라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친사회적 인간>은 공감보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던 파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돕는 선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평범한 영웅들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의 관심이 쏠린 부분은 흔히 방관자 효과라고 불리는 제노비스 신드롬의 일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노비스 신드롬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강간과 살인을 당한 29 세 여성을 38 명이 보고도 신고하지 않아 미국에서 일어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통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욕망에 불타오른 기자의 허위 사실이었으며, 실제로는 이웃들이 신고를 하거나 사망한 키티 제노비스의 옆에서 도왔다는 이야기. 결국 허구라는 이야기인데 이미 인터넷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방관자 효과 자체가 흔들리는 내용을 책으로부터 보게 되어서 충격이었다.

심리학 도서에 너무 자주 등장했던 전기 실험이라든지, 나-전달법에 대한 내용들과 용어들이 나와서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내용 자체는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까지 읽었던 심리학 도서와는 약간 다른 느낌도 받았다.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요구되어지는 역할, 편견과 고정관념들에 대해 의문을 던져 있는 그대로 살아도 좋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으로 이 책이 나에게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왜 정형화된 이미지대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경계하는 이유도 그 중 하나인데 여기에서 우울한 사람을 밝게 연기하는 것, 아이들에게 어른스럽다고 칭찬하는 것, 상처가 깊은 사람에게 무조건 이겨내라고 하는 것 등 사회로부터 요구되어진 인식들에 대한 반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속이 시원했다. 내가 혼자서 가지고 있었던 세상의 반대된 생각들을 짚어 주면서 묘하게 위로와 동질감을 주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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