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 일본 TV도쿄 2021년 방영 12부작 드라마
제인 수 지음, 이은정 옮김 / 미래타임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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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한테 이런 마음을 원했던 거야. / p.129

아이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질문 하나가 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지금 훌쩍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회자가 될 정도로 당시에는 일생의 갈림길처럼 중요한 질문처럼 느껴지는 그런 물음이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거의 쉬지도 않고 바로 나오는 대답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아빠가 좋다고 대답했다. 어머니께서는 내색은 안 하셨지만 아마 속으로 많이 서운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와 그렇게 죽이 잘 맞았다. 여자 아이처럼 인형 놀이보다는 밖에 나가서 격한 운동을 즐겨서 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찬 기억이 더 많다. 아버지의 매미 수준으로 항상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조차도 안 했다고 한다. 지금은 타인보다는 가깝고, 가족보다는 먼 사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제인 수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린 에세이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와는 더욱 친밀감을 느끼지만 이상하게 아버지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아무래도 성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안 되다 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아버지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딸의 입장에서 본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큰 공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저자는 마흔 살 전후의 외동딸이며, 아버지는 일흔을 넘기신 분이다. 현재는 따로 살고 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묘나 이모 병문안 등 다양한 이유로 나름 자주 교류하는 중이다. 이 에세이는 집세를 낸 대가로 아버지와 거래를 통해 쓰게 된 책이지만 어머니의 인생을 듣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적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일생을 알아가는 전반적인 내용들이 인상 깊었지만 <칠월의 가지 구이>와 <미니 트럼프>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칠월의 가지 구이>는 전쟁 당시의 상황을 아버지에게서 듣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듣고 할머니를 나무 앞에 버렸다는 이야기와 소이탄에 타버린 가지를 먹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는 저자의 마음이 곧 내 마음과 같았다. 어떻게 눈에 띈다는 말만 듣고 리어카에 탄 핏줄을 버릴 수가 있으며,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는 가지를 지금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아버지의 모습이 뭔가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역시도 민주화 운동 당시의 참혹함을 직접 겪으신 세대였는데 깊이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참혹함과 소년이었던 아버지가 느꼈을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 트럼프>는 <미워할 수 없는 남자> 파트에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저자의 아버지는 트럼프 지지자이다. 네 번 파산했어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함과 사랑스러움을 저자에게 찬양하는 등의 모습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트럼프가 당시 대선에서 이겼을 때 진보 진영의 힐러리에 대한 험담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주된 내용은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이며, 저자는 이를 못 견딘다는 것이다. 사실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 역시도 함께 뉴스를 볼 때마다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에서부터 가부장적인 마인드로 여성을 차별하는 아버지의 발언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역으로 공격하면서 갈등이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게 되고 한쪽 귀로 흘리는 노하우 아닌 노하우까지 생겼는데 이 부분이 너무나 크게 공감이 되었다.

내용을 읽으면서 아버지와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과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핏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글에 나타나지 않아도 아버지와 외모가 닮았다는 점과 비슷한 성격, 죽이 잘 맞을 때에는 환상의 콤비가 된다는 점. 독자인 내가 봤을 때에도 저자와 저자의 아버지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의견 갈등으로 불이 화르르 타오르는 것이 아닐까.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딸로서 참 공감이 많이 되었다. 집을 넘기면서부터 나타나는 가장으로서의 무책임, 남자가 하늘이라는 태도, 안하무인과 고집불통 등 아버지라면 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나, 이런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 아버지와 너무 비슷한 면이 있었다. 저자가 느끼는 감정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유쾌하면서도 친근하게 보이지만 막상 글을 읽고 나면 애증과 함께 뒤죽박죽인 부녀지간이라는 점이 곧 나와 아버지를 그대로 보인 것만 같았다. 애증과 연민이 뒤섞인 진짜 말 그대로 엉망진창의 관계였다.

사실 아버지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와 나를 모두 아는 친척과 지인분들은 하나같이 닮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머니마저도 핏줄은 못 속이겠다면서 둘의 성격이 판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와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핏줄은 어디 못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도 저자처럼 아버지를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는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니 우리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점이 너무 많다. 아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흔한 좋아하는 음식 하나 모른다. 지금이라도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길들을 하나하나 듣는다면 어렸을 때 아빠가 좋다고 말한 것처럼 조금은 거리가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다짐과 희망을 들게 만든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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