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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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침묵을 견딜 수 없다. / p.306

침묵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말수가 적은 성향 탓에 자연스럽게 침묵이 따라올 때가 많다. 항상 그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이제는 적막한 침묵이 흐르더라도 굳이 이를 깨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다. 사실 자꾸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말을 하고 나면 다시 침묵이 흐르는 상황이 되다 보니 최소한의 노력만 하게 된다.

이 책은 마크 C. 테일러의 침묵에 관한 철학 도서이다. 어떻게 보면 나와 분신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침묵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또한,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이라는 부제가 마음을 움직였는데 아무래도 불안 또한 나의 친구 중 하나로 항상 데리고 다니고 있기에 더욱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침묵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총 열네 개의 챕터로 조금 독특한 구성이 눈에 띄었다. Without, Before, From 등 부사의 목차와 중간에 4,8,12 챕터는 말줄임표이다. 쉬어가라는 의미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사에 맞게 침묵없이, 침묵 전에, 침묵부터, 침묵 너머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했지만 읽으면서 내 예상이 맞는지 확신이 가지는 않는다.

처음에 저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와 침묵에 대한 정의로 시작해 키르케고르,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 철학이나 다른 교양 서적에서 보았던 낯익은 이름부터 처음 듣는 미술가들이 정의하는 침묵 일화들이 나온다. 그러면서 저자가 침묵에 대해 느낀 바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전체적으로 각 챕터마다 발제부터 시작해 비슷한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이중부정>이라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마이클 하이저와 <이중부정> 평론을 준비하기 위해 네바다주 사막으로 떠난다. 마이클 하이저는 <이중부정>의 작품을 만드는 대지미술가인데 저자는 그 작품에서 기이함을 보게 되고,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대지미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글로 표현된 작품의 모습을 선뜻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중부정 작품의 의미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텅 빔'이라는 것이 뭔가 와닿는 지점이 있었다.

단순하게 침묵의 색깔부터 범위 등에 대한 물음부터 종교적, 철학적, 미학적, 등 생각보다 깊고도 넓게 침묵이라는 단어에 대해 정의를 내려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저자가 종교철학자이기 때문에 신의 침묵에 대한 물음들을 서술하기도 했었는데 무신론자에 가까운 무교인이다 보니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이는 책의 문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종교나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기에 더욱 난해한 내용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침묵이 검은색인지, 흰색인지부터 시작해 내가 알고 있는 침묵을 조금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 책을 덮으면서 침묵이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면서도 그것으로 삶의 깨달음이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방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뜻을 알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미술이나 종교 교양서를 통해 어느 정도 기본 바탕의 지식들이 쌓이게 되면 다시 재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상과 달리 침묵의 무게감과 독서 편향의 문제점을 느끼게 해 주었지만, 많은 이들의 침묵의 순간들을 통해 조금은 침묵의 깨달음을 얻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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