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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ㅣ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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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식들을 위한다면 그냥 조용히 자식들이 하자는대로 해주시기만 하면 돼요. / p.64
드라마를 보면서, 혹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 가까운 예로 우리 가족을 볼 때마다 어쩌면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상상의 동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폭력과 폐륜이 난무하는 극단적인 가족들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 보면 모진 풍파나 시련 하나 없는 집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어쩌면 사연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우리 머릿속의 가족들은 어디까지나 허구의 사실 그 자체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류현재 작가님의 가족에 대한 소설이다. 항상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들은 늘 애증과 같은 존재이다. 이야기 나눌 상대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좋지만 지극히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에 가족들이 조금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제목 자체는 너무 과하게 표현이 되는 부분은 있지만 공감이 될 수 있을 법한 문장이어서 시선이 갔던 작품이다. 어떤 지긋지긋하고도 질긴 가족 같은 이야기일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소설은 칼에 찔린 아버지 김영춘과 찹쌀떡을 먹다 목에 걸린 어머니 이정숙 여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 김영춘은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했으며, 이정숙 여사는 자식 뒷바라지와 남편의 내조를 해왔던 인물이다. 그런 부부에게는 2남 2녀의 자녀로 교사인 딸 김인경과 의사 아들 김현창, 이혼해 아들과 지내는 김은희, 공무원 준비생 김현기라는 자녀가 있다. 이정숙 여사의 병간호를 위해 김은희가 보육교사를 그만두고 아들과 함께 본가에서 생활하면서 부모를 부양한다.
김영춘은 고지식하면서 자존심 센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아버지이다. 자녀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는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불효라고 욕을 던지는 사람. 이정숙은 자식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병에 걸린 이후로는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자녀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교사의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김인경과 아픈 어머니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김현창, 간병을 하고 있으면서 차라리 부모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김은희, 누나인 김은희로부터 무시를 받고 있는 김현기까지 등장하는 인물의 시점에 맞추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풀고 있다.
처음에는 자녀들의 시점에서 소설을 읽었다. 아무래도 나 역시도 부모님의 자녀이면서 가부장적인 사회 자체에 이골이 난 사람이기도 하다 보니 네 명의 자녀의 입장에 감정적으로 이입이 되었다. 자녀들 나름대로 자신을 희생해 부모를 간병하고 있거나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얹혀 산다거나 한심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김영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시대 환경이라고 해도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 말과 행동 자체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읽으면 읽을수록 네 자녀들도 그렇게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일과 가족을 우선시해서 부모님의 병간호를 서로에게 넘기는 것까지는 이해하더라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위치와 체면을 생각해 형제자매에게까지 이기적으로 구는 것은 아주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희의 간병을 너무나 당연히 여겨 그녀의 아픈 외침을 못 들은 척한다거나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더 나은 자식이라는 것을 계산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었다. 결국 이 소설을 전부 읽고 나니 그 아무한테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자기 변명이라고만 느껴졌다.
소설이기에 과장이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읽으면서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장례식장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드라마가 오히려 순화된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말에 나 역시도 크게 공감을 했었는데 아마 이 소설 역시도 현실이었다면 미화는 없고 그저 김영춘과 이정숙의 장례식장에서 네 자녀가 머리 쥐어 뜯으면서 싸웠을 것이라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루고 있으면서 그 안에 김영춘을 죽인 사람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였다. 흔히 말하는 추리 소설의 형태는 아니어서 긴박하게 범인을 찾는 모습들은 없지만 첫 시작 자체가 김영춘이 칼에 찔렸던 것부터 시작하고 그를 죽인 사람을 찾는 게 포인트이기에 각자의 입장을 보면서 누가 더 김영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가, 찾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아름다운 가족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평생 끊을 수 없는 혈연 관계에서의 감정을 이 이야기를 통해 오롯이 느꼈다. 세상은 요지경, 아니 가족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제목처럼 가장 질긴 족쇄와 지긋지긋한 족속의 이야기가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감을 주어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물론, 명치에서 올라오는 답답함과 화는 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