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하는 자세 - ‘첫 책 지원 공모’ 선정작
이태승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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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영혼이 없는 게 아니라 영혼이 아예 사라진 거라니까. / p.94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할 때면 클라이언트로부터 항상 받는 오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 국가의 세금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해도 사실 사회복지기관은 민간에서 운영되는 곳이 더 많기 때문에 공무원이 아니다. 그러나 민원이 들어올 때면 하나같이 듣는 말이 이러려고 국가에서 월급 주는 줄 아느냐는 말이다. 공무원이 아니기는 해도 엄밀히 말해 세금으로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절반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태승 작가님의 직장에 대한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일하는 현장이 배경으로 나오는 소설들을 굉장히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현실감이 있어서 공감되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말하지 못할 내용들이 소설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지니 나에게는 그것만큼 사이다가 없다. 그러한 맥락으로 이 소설도 읽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저자의 본 직업에 맞게 공무원이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공무원이 주인공인 소설은 작년에 읽었던 김너울 작가님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가 유일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작품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놓고 보면 공무원이라는 게 주인공의 직업일 뿐이지 그들의 사회보다는 금요일을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대변한 내용이어서 공무원들의 세계를 읽게 된 것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이 소설에는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으면서 깊이 생각할 지점들이 있어서 보통 소설들에 비해 읽는 속도가 조금 오래 걸렸다. 지금까지 읽었던 직장 관련 소설들과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직장을 했던 사람이라면 공감이 되면서 묘하게 나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개인적으로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를>과 <일과 이분의 일>이라는 작품이 나에게 생각할 지점들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는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면서 혁신을 내세우면서 큰 북 설치와 최고의 직원과 최악인 직원을 뽑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북을 설치한 이후 북소리가 들려온다는 민원을 받으면서 주인공은 몰래 감시를 하는 업무까지 하게 되며, 최고와 최악인 직원을 뽑는 일에는 보통 성격이 좋지 않은 상사가 뽑힌다는 예상을 가지고 사내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통한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치 못한 사람이 되었고, 후에 주인공은 투표 관련 내용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는다.

결말을 보면서 나 역시도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가 조직에 속한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성격이 좋지 않은 인물에 투표를 했을 것이다. 그것보다 조직 팀워크를 방해하는 인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누가 봐도 뽑히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뽑혀서 읽으면서도 당황스러웠는데 해설을 보니 공무원 사회에서 조금 어긋나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 또한, 투표를 하는 질문 자체가 최악을 고를 수 있는 뉘앙스의 문항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악독한 상사가 아닌 의외의 인물이 뽑혔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중에 누군가를>은 어느 중학교의 중창단이 대회 본선에 진출했으나 인원 제한이 걸려 한 명의 단원이 빠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창단 담당 교사는 중창단 단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각 단원들과 1:1 면담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면담 내용을 구어체로 표현했다. 배경 자체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듣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배경을 아예 지우고 보면 직장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노래 못 부르는 아이는 직장에서 능력이 없는 동료로, 뒷담화로 소문을 퍼트리는 아이는 남 이야기 험담하기 좋아하는 상사로, 학교에서 높은 지위의 친인척이 있어 들어온 아이는 낙하산으로 입사한 후배로 주어만 바꾸면 딱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결말 자체도 심오했는데 내 기준으로 보면 중창단 자체가 의미 없는 것 같기는 하다.

<일과 이분의 일>은 일과 이분의 일을 하고 있다고 외치는 노 팀장의 이야기이다. 노 팀장은 양계장 일을 겸하고 있는데 기상 상황에 따라 당일 휴가를 내는 게 취미이다. 그래도 직원들에게 삶은 달걀을 주기도 하고, 출근하는 날에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녀는 수시로 해당 팀에 사람이 자신 포함 두 명이기는 하나 후임 사무관의 일을 자신이 받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의 일만큼 일을 하고 있으므로 업무량을 재조정해 줄 것을 과장에게 말하는데, 어느 날 새로운 센터가 생기면서 그곳으로 갈 사람을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내려왔다. 다른 팀장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노 팀장을 밀었으나, 그녀는 업무을 재조정해 줄 것을 말했을 뿐이지, 새로운 곳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절대로 거절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자주 연차를 사용해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그런데 업무을 잘하면서 연차를 사용하는 게 죄가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업무와 근태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생각을 해왔던 터라 가장 심오하게 느껴졌던 소설이다. 비슷한 예로 아이가 아파서 자주 연차를 사용해야 되는 상황의 부모가 업무 능력이 탁월해 피해를 주지 않는 직원이라면 그 사람을 안 좋게 보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고 해서 노 팀장이 티가 나도록 업무를 더 많이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소설을 보고 난 이후에도 크게 답이 내려오지는 않지만 이 역시 결말을 보면서 더욱 깊이 와닿았던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와 별개로 후임의 일까지 맡아서 하느라 업무 과중으로 번아웃이 왔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노 팀장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기에 직장은 늘 보수적인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향 자체가 규칙을 따르는 것에 크게 부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나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실상 나의 직장은 그렇지 못했다. 혁신을 외치면서 정작 머릿속은 그저 보수 그 자체였기에 입맛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들이 나에게는 너무 당연하다고 느꼈던 직장의 룰이나 관례들을 비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늘 시원한 공감을 주는 사이다 소설만 기다렸지만 이렇게 알갱이가 씹히는 봉봉 음료수처럼 씹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소설도 좋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출판사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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