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생의 밤
이서현 지음 / 카멜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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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못해도 추락을 하더라고요. / p.77

유행어 중에 '이생망'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 라는 문장의 줄임말. 처음에는 몰랐는데 주변 친구들이 자꾸 이생망이라고 해서 의미를 물어 알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이생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고 다니다 이대로 두면 말이 씨가 된다고 진심으로 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금은 아예 입밖에도 꺼내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이서현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생망처럼 줄임말로 쓰는 용어인 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도 명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아 더욱 관심이 생겼다. 나에게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다가왔는데 지금 내 또래 사람들의 현실에 공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사실 제목을 생각했던 것은 '망한 인생의 밤'의 줄임말이어서 망생의 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보니 '지망생의 밤'의 줄임말이었다. 처음에는 주인공들이 사회적으로 망한 인생인 것 같기는 한데, 우울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인 것 같기는 한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는 없었던 게 아마도 지망생들의 이야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오히려 희망적이거나 위로를 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초단편 소설집으로 총 열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나이가 들어 프로게이머를 도전하는 사람부터 춤만 추던 사람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귤 따러 제주도로 간 사람, 웹툰 작가가 꿈이지만 이모티콘을 그리는 사람, 장기 공무원 준비생 등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망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사람들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인물들이어서 공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리얼리티 쇼>와 <이모티콘의 여왕>, <뽑기의 달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리얼리티 쇼>는 전 남자 친구를 프로그램에서 보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전 남자 친구는 작가로 책을 잘 팔았는지 TV 프로그램에 나온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주인공 여자는 그를 마치 죽여버릴 것 같은 느낌으로 시청한다. 책은 주인공 여자와 연관된 내용의 소설이었으며, 주인공은 라이브 문자를 보낸다.

실제로 전 남자 친구를 TV 프로그램에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거기에서 나와의 과거사를 털고 있는 전 남자 친구를 보는 심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불가능할 것 같다. 아마 말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지 않을까. 이런 내용은 <망생의 밤>의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하는데 나의 상황이라고 감정이입을 해서 보았던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내내 어이가 없었다.

<이모티콘의 여왕>은 웹툰 작가를 지망하지만 이모티콘으로 꽤 수익을 내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애인은 웹툰 작가를 권하면서 이모티콘을 만드는 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주인공은 나름의 항변을 하고 있지만 이런 말이 통할 일이 없다. 그렇게 주인공은 애인에게 조금은 평범하면서 특이한 방법으로 이별을 고한다.

요즈음 이별 방법을 잘 표현한 소설이다. 예전에는 진짜 카카오톡이나 DM으로 이별 날리는 인간들이 그렇게 책임감 없어 보였다. 연애의 시작은 몰라도 끝은 꼭 보면서 전해야 하는 게 흔히 말하는 국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남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메시지가 익숙한 세대에서는 이것 또한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나가서 이별을 고하면 커피를 맞을 텐데 서로 깔끔하게 비대면 이별 방식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뽑기의 달인>은 장비 비용을 지원해 달라는 주인공은 서른다섯의 가구 디자이너 지망생이다. 5만원으로 교육을 받고 가구 디자인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백팔십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부모님께서는 거절한다. 교육한 것을 날릴 수는 없으니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다 이성 친구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빌려 달라는 말을 선뜻 말할 수 없다. 말을 빙빙 돌리다 500 원짜리를 탑처럼 쌓아 뽑기를 하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도 뽑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뽑기와 취업의 공통점을 말하는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처음부터 원하는 인형을 노리는 사람이 있고, 될 것 같은 인형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 개인적으로 뽑기의 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질이 있는 편인데 보통 후자를 선택해 뽑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보면서 때 아닌 자아성찰과 깊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다. 왜 취업과 인생은 전자를 하려고 아등바등 대고 있을까. 될 것 같으면서도 잘하는 것을 고르면 되는데 왜 원하는 것만 노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조금 어지러웠던 소설이었다.

전반적으로 크게 공감이 되면서 희노애락을 경험했다. 나의 기대처럼 딱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의 사람이라면, 취업 준비를 했던 사람이라면, 지망생이라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집을 덮으면서 인간은 누구나 어떤 지망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위로와 공감이 되었던 소설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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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의 마법
이준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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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고유의 향과 색이 있다. / p.189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타의적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물론, 회사나 가정의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사적으로 만남이 제한되다 보니 집과 직장 또는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 하는 기간이 길어지게 됐다. 오죽하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사람을 만나지 못해 우울감이 곧 많은 국민의 흔한 증상이 되었다.

은둔형 외톨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발적인 집순이로서 처음에는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대학교 시절에는 그냥 집에 있는 게 좋아서 방학 내내 집밖을 안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것 또한 피로도가 쌓이면서 나 역시도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은 혼자 중고서점을 둘러보는 것이 취미가 될 정도로 바깥 구경을 실컷 하는 중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준호 작가님의 소설이다. 나에게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관심이 갔다. 낯선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부담이면서 싫기도 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어서 은둔형 외톨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크게 공감하고 있다. 그들이 사람을 만나면서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미와 주원이다. 주원이는 하나뿐인 친구의 죽음 이후 충격을 받아 자퇴까지 했다. 이후 가족을 설득해 혼자 나가서 살게 되었지만 본가에도 가지 않는다. 또 다른 주인공인 유미는 공간 마법 능력이 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공간을 선물로 선사해 주었지만, 마법으로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할머니가 계시는 외딴 시골에 와서 살고 있다. 둘은 밖에 나가더라도 사람이 없는 어두운 시간을 선택해 공원을 도는 등 극도로 사람을 꺼려하는 은둔형 외톨이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주원이는 계획을 세워 하나씩 실천해 나가기로 결심한다. 밝은 시간에 공원에 나가기도 하고,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주문해 마시기도 하는 등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연습을 하게 된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유미는 할머니의 유언 편지를 보고 용기를 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모텔에서 숙식한다. 둘은 그렇게 은둔형 외톨이의 모임을 알게 되어 참석한다.

공감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다. 부모를 죽인 패륜아 낙인 찍힌 유미와 하나뿐인 친구를 잃어 사회로부터 격리가 된 주원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 이유가 스스로의 문제가 아닌 세상과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나오지 못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스스로 노력한다고 세상 밖에 쉽게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둘의 상황 자체가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소설에서는 주원이와 유미뿐 아니라 은둔형 외톨이의 모임의 회원들도 등장하는데 그들 역시도 다 상처를 받고 세상 밖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모임에서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오랜 시간을 가만히 있었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 숨이 막혔다. 심지어 커피 하나 시키자는 말조차도 없었다는 것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나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망설이는 둘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읽었던 것 같다. 모자를 꾹 눌러 쓰고 밖에 나왔던 주원이나 서울 가는 버스 티켓 하나 예매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행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에게 말을 걸기 위해 속으로 용기를 되뇌이고 있는 둘의 마음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사실 아무리 집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라는 극단적인 사례에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이기는 하다.

소설의 중반부에 들어가면서 이들이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나마 연습을 했었던 주원이와 유미의 경우에는 사회에 있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을 정도로 큰 발전을 보여주었고, 다른 모임의 회원들도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더욱 그들을 응원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들에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법을 가진 유미의 사례만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의 원인은 주변에 있을 법한 일이자 사람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즈음은 전화 공포증부터 시작해서 사회에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용어까지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와닿을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독자들에게는 공감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한번쯤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시선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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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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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 / p.124

인터넷에서 기욤 뮈소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인들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한국 작가 위주의 소설을 읽었던 나에게는 그들이 인기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글을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기욤 뮈소의 한국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다. 이 책이 발간된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또 고양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아직 읽은 작품이 없어서 그 댓글을 보고 관심이 갔다. 표지에 자유의 묘신상이 있을 뿐인데 그렇게 질려하는지 궁금했다. 읽으면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양이, 문명에 이은 세 번째 연작 소설인 이 소설은 고양이 여왕이라고 지칭하는 바스테트가 주인공이다. 바스테트는 고양이 형태의 이집트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머리에는 말을 통역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옆에는 아들인 안젤로와 라이벌 에스메랄다, 남자 친구인 피타고라스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앵무새, 보더콜리 개, 인간인 집사 등 다양한 생물들이 있다. 그들은 전염병과 쥐가 우글거리는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뉴욕으로 가고자 배에 몸을 싣는다. 항해 도중 많은 사람들과 고양이들은 목숨을 잃었으며, 바스테트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뉴욕의 현실도 참담했다. 쥐가 우글거리는 것은 물론, 쥐를 피해 인간들과 개, 고양이들은 높은 빌딩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빌딩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바스테트를 비롯한 배에 있던 생물들도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쥐들의 공격으로 빌딩이 무너지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빌딩에 있던 무리들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한다. 과연 바스테트와 생존자, 생존견, 생존묘들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그리고 바스테트는 원하던 것처럼 고양이 세상의 여왕이 될 수 있을까.

시리즈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걱정을 많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제쳐놓고 고양이와 문명을 읽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인물 이름과 대략적인 사건들을 알아야 소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전편의 내용들이 등장할 때면 바스테트가 다시 대략적인 흐름을 서술해 주어서 전작을 굳이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좋았다. 특유의 주인공 캐릭터를 잃지 않으면서도 센스 있게 알려 주는 방식에 감탄했다. 마치 독자가 이것도 모르냐는 식의 빈정 아닌 빈정이라고 할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개인적으로 고양이 시점에서 본 인간들의 모습들을 인상 깊게 봤다. 인간을 멍청하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남자 친구를 의심하는 집사에게 조언하면서 속으로는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감정이 격앙되는 부분 역시도 깔보듯이 이야기한다. 바스테트의 생각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인간인 내가 한 수 아래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흥미로웠고, 이 부분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지식 능력을 높게 사서 수시로 공부해 습득하고자 한다. 심지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것을 활용해 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인간의 지식 USB인 ESARE를 원하는 티무르가 인간을 욕할 때에도 바스테트는 인간의 편에서 옹호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인간을 무시만 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현실적이면서도 이성적인 고양이라고 봐야 될 것 같았다.

바스테트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사건 에피소드 다음에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이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마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게 진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바스테트의 이집트 여신 이야기와 사람들의 마약을 보면서 고양이의 마약 정보를 알려 주는 등 나름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상절지백이라고 줄여도 되지 않을까.

처음 접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왜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는지 이유를 실감했다. 행성이라는 작품만 읽었기 때문에 또 고양이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된다면 고양이와 문명을 읽을 때면 아마 댓글을 적었던 많은 독자들처럼 반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소 자신감이 과한 듯하지만 그만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바스테트의 이야기를 보면서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네가 인간보다 낫구나." 이 말을 새삼스럽게 바스테트에게 건네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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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의 손길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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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잇는 의사가 되어라. / p.281

대학교 졸업 전까지만 해도 가장 최근에 보는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면 "야인시대(2003)"였고,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면 "보고 또 보고(1999)"라고 대답했었다. 그만큼 호흡이 길면서 맨날 출생의 비밀이나 밝히는 드라마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좋았고 모처럼 괜찮은 드라마가 있다고 해도 감질나게 매주 중요한 파트에서 끝나서 일주일 기다리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그러던 내가 대학교 졸업 이후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드라마로 드라마 덕후가 되었다. 예전에는 다운로드를 받아서 수시로 돌려서 봤고, 현재는 OTT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지금 웬만한 곳은 다 정액제로 끊어서 보는 중이다. 대부분 인생 드라마를 돌려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나에게 인생 드라마가 뭐냐고 묻는다면 태양의 후예, 응답하라 시리즈, 뷰티인사이드 등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지만 지금은 단 하나만 꼽는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직도 식사할 때 습관적으로 돌려서 보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펼쳐지는 휴먼 스토리가 좋다.

이 책은 치넨 미키토의 의학 소설이다. 보자마자 눈에 꽂혔던 책이다. 실제로 의사인 작가의 이야기를 보니 더욱 신뢰가 갔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병원에서 펼쳐지는 휴먼 스토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인생 드라마로 뽑는 드라마 덕후로서 글로서 이러한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이라 유스케로 환자에게 진심이면서 누구보다 의사에 열정적인 의사이지만 인력이 부족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이다. 집에 가는 날보다 병원에서 새벽을 보내는 날이 더 많은,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아카시 과장으로부터 세 명의 인턴을 흉부외과에 입국시키면 누가 봐도 좋은 병원으로 파견을 보내준다는 제안을 받는다. 흉부외과의 현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유스케는 그들을 흉부외과에 입국시키고자 참혹함을 알려 주기도, 숨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환자와의 관계, 인턴과의 병원 생활을 그리고 있다.

뭔가 보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드라마를 많이 떠올리게 했다. 환자의 가족을 생각해 흉부외과보다 다른 과의 수술을 말할 때, 흉부외과에 오라고 말할 때 등 중간마다 나오는 내용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다루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특히, 우사미 레이코라는 인턴이 자신의 가정사로 환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이해 의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에는 더욱 크게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스케의 마인드와 열정이 마음에 와닿았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 연습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환자를 생각해 공감해 주고,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의료적 지식으로 정확하게 치료했다. 인턴을 더 좋은 의사로 만들기 위해 알려 주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런 의사가 있다면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들었다. 상사였다면 누구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동료일 것 같다.

흉부외과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유스케의 야망도 결국은 좋은 의술로 환자를 구하기 위함이라는 마음이 무엇보다 잘 느껴졌다. 오죽하면 순환기내과의 후배가 그에게 너무 성실하다고 충고를 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유스케는 사내 정치에 관심도, 농땡이 하나 부릴 줄 모르는 그런 굳은 의사였다. 그런 점을 보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99즈 5인방과 이미지가 겹쳐서 보이기도 했었다.

옮긴 이의 말을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언급이 나온다. 누가 봐도 자상하면서 완벽한 의술을 가지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들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 드라마이지만 이 소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숙한 의사의 성장 스토리이기에 드라마와 다르다는 점. 솔직히 일부는 공감한다. 병원을 다녔어도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그런 의사들은 못 봤다. 환자에게 자상하면서도 섬세한 의사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휴먼 스토리보다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휴먼 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같은 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의술에 관련한 부분은 그렇다고 쳐도 인간의 희노애락은 똑같다. 아픈 사람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환자, 가족과 안타까운 이별의 길을 걷는 환자가 있다. 거기에서 냉철하고도 따뜻한 판단으로 의술을 행하는 의사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유스케와 99즈는 인간적인 의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잇는 의사가 되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다. 그리고 과장의 말씀을 받들어 직업인으로서 의술에 진심인 유스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비록 소설에 있는 인물이지만 유스케를, 힘든 흉부외과에서 의사로서의 삶을 헤쳐나갈 세 명의 인턴을 응원할 수 있는 이야기. 의사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세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병원 이야기와 그 안에 펼쳐진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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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게 시끄러운 오르골 가게
다키와 아사코 지음, 김지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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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가 아이에게 닿고 있었어. / p.41

몇 년 전 친한 대학교 선배와 함께 일본 홋카이도를 갔었다. 그동안 홋카이도 하면 영화 러브 스토리의 배경인 오타루 운하와 삿포로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여행하면서 느낌과 풍경들이 인상 깊었다. 고즈넉하면서도 여유로운 동네. 또한,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외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어머니께 분명 가면 고향이 떠오를 것이니 하늘길이 열리면 꼭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아직까지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후에 예능 촬영지로 후라노와 비에이가 나왔고, 홋카이도가 배경인 한국 영화를 보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책은 타키와 아사코의 소설이다. 나에게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르골에 대해 잘 몰랐고 지금도 문외한이지만 오타루 오르골당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안에서 들려왔던 오르골 소리와 바글바글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들이 그렇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오르골을 봤던 것은 처음이었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그곳이 딱 떠올랐다. 내 기억은 그곳은 시끄러운 곳이 아니었기에 궁금해 읽게 되었다.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다. 사연을 가진 어떤 사람이 우연히든 아니면 의도적이든 오르골 가게를 보고 들어와 오르골을 제작하는 이야기. 현실에 누군가 있을 법한 손님들이었다. 단지 오르골 가게의 주인만 비범한 능력을 가졌을 뿐. 손님이 마음에 가지고 있는 노래를 읽고 그에 맞는 오르골을 제작해 준다. 반신반의한 손님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는 손님도, 아마 나라면 반신반의가 아니라 어디에서 약을 파냐면서 하나부터 끝까지 믿지 않았을 듯하다.

모든 손님의 사연들이 흥미로웠지만 돌아가는 길이라는 사연과 모이다라는 사연이 마음에 와닿았다. <돌아가는 길>은 어머니와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토라는 이름의 아이에 대한 사연이다. 유치원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큰 자책감을 느낀다. 그러다 산책길에 보게 된 오르골 가게를 들어간다. 유토는 관심을 보였고, 주인은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듣고 어울리는 곡을 추천해 준다고 했다. 유토는 귀가 안 들리는데 가능할지 반신반의하면서 맡겼고, 며칠이 지나 다시 찾은 오르골 가게에서 감동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에게 오르골을 선물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진동은 느낄 수 있어서 클럽이나 노래방 스피커 바로 앞에서 노래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피커의 진동으로 노래를 듣고 춤을 춘다고 했다. 그러나 오르골은 진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텐데 유토가 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것 또한 편견일 수 있기에 다시 생각을 고쳤지만 말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내 탓이라는 어머니의 죄책감도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었다.

<모이다>는 학교 다닐 때 밴드 활동을 했던 네 명의 사람에 대한 사연이다. 개성도 뚜렷한 친구들은 밴드 활동을 했었다. 다들 서로의 음악 스타일을 이해하면서 해왔었지만 루카와 갈등은 조금 심했던 것 같다. 특히, 음악인으로서 꿈을 계속 유지하느냐, 포기하고 취업을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세 명의 친구는 후자를, 루카만은 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쿄로 가자고 했다. 겉으로는 봉합이 된 듯하지만 네 명이 가기로 했던 여행에서 루카는 가지 않겠다고 했고 세 명의 친구들만 오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오르골 가게를 발견해 들어가 오르골을 맡겼고, 오르골을 찾으러 가는 날이자 고향으로 돌아가던 날에 쇼핑백을 보고 의문을 가진다.

결말을 보고 이 네 명의 사람들은 어떻게 선택했을지 궁금했다. 오르골 소리를 듣고 꿈을 다시 찾기로 했을까, 아니면 그냥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오르골 소리 하나로 포기했던 꿈을 다시 찾기에는 현실적인 장벽들이 많기 때문에 너무 드라마틱하기는 하겠지만 나의 결말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기억에 잊혀진 노래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가 오르골에서 흘러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색다른 방법의 노래여서 더욱 인상 깊었다.

여기에서 비범한 능력을 지닌 주인을 짝사랑하는 사람의 러브 스토리도 설레게 했다. 대놓고 나온 로맨스는 아니었지만 주인을 쳐다보는 사람과 작은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실망하는, 자신만 빼고 모든 사람이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마지막 결말 역시도 내 기준에서는 완벽했다.

굳이 홋카이도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북쪽 지방의 작은 동네와 운하 이야기 등을 볼 때 누가 봐도 내가 갔던 오타루였다. 어떻게 보면 이미 오타루를 다녀온 사람이기에 그 분위기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오면서 오르골당에서 들려온 노래가 재생될 정도로 나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킨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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