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의 손길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을 잇는 의사가 되어라. / p.281

대학교 졸업 전까지만 해도 가장 최근에 보는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면 "야인시대(2003)"였고,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면 "보고 또 보고(1999)"라고 대답했었다. 그만큼 호흡이 길면서 맨날 출생의 비밀이나 밝히는 드라마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좋았고 모처럼 괜찮은 드라마가 있다고 해도 감질나게 매주 중요한 파트에서 끝나서 일주일 기다리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그러던 내가 대학교 졸업 이후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드라마로 드라마 덕후가 되었다. 예전에는 다운로드를 받아서 수시로 돌려서 봤고, 현재는 OTT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지금 웬만한 곳은 다 정액제로 끊어서 보는 중이다. 대부분 인생 드라마를 돌려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나에게 인생 드라마가 뭐냐고 묻는다면 태양의 후예, 응답하라 시리즈, 뷰티인사이드 등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지만 지금은 단 하나만 꼽는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직도 식사할 때 습관적으로 돌려서 보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펼쳐지는 휴먼 스토리가 좋다.

이 책은 치넨 미키토의 의학 소설이다. 보자마자 눈에 꽂혔던 책이다. 실제로 의사인 작가의 이야기를 보니 더욱 신뢰가 갔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병원에서 펼쳐지는 휴먼 스토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인생 드라마로 뽑는 드라마 덕후로서 글로서 이러한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이라 유스케로 환자에게 진심이면서 누구보다 의사에 열정적인 의사이지만 인력이 부족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이다. 집에 가는 날보다 병원에서 새벽을 보내는 날이 더 많은,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아카시 과장으로부터 세 명의 인턴을 흉부외과에 입국시키면 누가 봐도 좋은 병원으로 파견을 보내준다는 제안을 받는다. 흉부외과의 현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유스케는 그들을 흉부외과에 입국시키고자 참혹함을 알려 주기도, 숨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환자와의 관계, 인턴과의 병원 생활을 그리고 있다.

뭔가 보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드라마를 많이 떠올리게 했다. 환자의 가족을 생각해 흉부외과보다 다른 과의 수술을 말할 때, 흉부외과에 오라고 말할 때 등 중간마다 나오는 내용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다루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특히, 우사미 레이코라는 인턴이 자신의 가정사로 환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이해 의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에는 더욱 크게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스케의 마인드와 열정이 마음에 와닿았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 연습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환자를 생각해 공감해 주고,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의료적 지식으로 정확하게 치료했다. 인턴을 더 좋은 의사로 만들기 위해 알려 주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런 의사가 있다면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들었다. 상사였다면 누구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동료일 것 같다.

흉부외과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유스케의 야망도 결국은 좋은 의술로 환자를 구하기 위함이라는 마음이 무엇보다 잘 느껴졌다. 오죽하면 순환기내과의 후배가 그에게 너무 성실하다고 충고를 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유스케는 사내 정치에 관심도, 농땡이 하나 부릴 줄 모르는 그런 굳은 의사였다. 그런 점을 보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99즈 5인방과 이미지가 겹쳐서 보이기도 했었다.

옮긴 이의 말을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언급이 나온다. 누가 봐도 자상하면서 완벽한 의술을 가지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들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 드라마이지만 이 소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숙한 의사의 성장 스토리이기에 드라마와 다르다는 점. 솔직히 일부는 공감한다. 병원을 다녔어도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그런 의사들은 못 봤다. 환자에게 자상하면서도 섬세한 의사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휴먼 스토리보다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휴먼 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같은 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의술에 관련한 부분은 그렇다고 쳐도 인간의 희노애락은 똑같다. 아픈 사람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환자, 가족과 안타까운 이별의 길을 걷는 환자가 있다. 거기에서 냉철하고도 따뜻한 판단으로 의술을 행하는 의사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유스케와 99즈는 인간적인 의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잇는 의사가 되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다. 그리고 과장의 말씀을 받들어 직업인으로서 의술에 진심인 유스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비록 소설에 있는 인물이지만 유스케를, 힘든 흉부외과에서 의사로서의 삶을 헤쳐나갈 세 명의 인턴을 응원할 수 있는 이야기. 의사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세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병원 이야기와 그 안에 펼쳐진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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