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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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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 / p.124
인터넷에서 기욤 뮈소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인들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한국 작가 위주의 소설을 읽었던 나에게는 그들이 인기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글을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기욤 뮈소의 한국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다. 이 책이 발간된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또 고양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아직 읽은 작품이 없어서 그 댓글을 보고 관심이 갔다. 표지에 자유의 묘신상이 있을 뿐인데 그렇게 질려하는지 궁금했다. 읽으면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양이, 문명에 이은 세 번째 연작 소설인 이 소설은 고양이 여왕이라고 지칭하는 바스테트가 주인공이다. 바스테트는 고양이 형태의 이집트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머리에는 말을 통역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옆에는 아들인 안젤로와 라이벌 에스메랄다, 남자 친구인 피타고라스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앵무새, 보더콜리 개, 인간인 집사 등 다양한 생물들이 있다. 그들은 전염병과 쥐가 우글거리는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뉴욕으로 가고자 배에 몸을 싣는다. 항해 도중 많은 사람들과 고양이들은 목숨을 잃었으며, 바스테트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뉴욕의 현실도 참담했다. 쥐가 우글거리는 것은 물론, 쥐를 피해 인간들과 개, 고양이들은 높은 빌딩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빌딩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바스테트를 비롯한 배에 있던 생물들도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쥐들의 공격으로 빌딩이 무너지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빌딩에 있던 무리들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한다. 과연 바스테트와 생존자, 생존견, 생존묘들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그리고 바스테트는 원하던 것처럼 고양이 세상의 여왕이 될 수 있을까.
시리즈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걱정을 많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제쳐놓고 고양이와 문명을 읽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인물 이름과 대략적인 사건들을 알아야 소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전편의 내용들이 등장할 때면 바스테트가 다시 대략적인 흐름을 서술해 주어서 전작을 굳이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좋았다. 특유의 주인공 캐릭터를 잃지 않으면서도 센스 있게 알려 주는 방식에 감탄했다. 마치 독자가 이것도 모르냐는 식의 빈정 아닌 빈정이라고 할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개인적으로 고양이 시점에서 본 인간들의 모습들을 인상 깊게 봤다. 인간을 멍청하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남자 친구를 의심하는 집사에게 조언하면서 속으로는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감정이 격앙되는 부분 역시도 깔보듯이 이야기한다. 바스테트의 생각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인간인 내가 한 수 아래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흥미로웠고, 이 부분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지식 능력을 높게 사서 수시로 공부해 습득하고자 한다. 심지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것을 활용해 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인간의 지식 USB인 ESARE를 원하는 티무르가 인간을 욕할 때에도 바스테트는 인간의 편에서 옹호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인간을 무시만 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현실적이면서도 이성적인 고양이라고 봐야 될 것 같았다.
바스테트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사건 에피소드 다음에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이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마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게 진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바스테트의 이집트 여신 이야기와 사람들의 마약을 보면서 고양이의 마약 정보를 알려 주는 등 나름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상절지백이라고 줄여도 되지 않을까.
처음 접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왜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는지 이유를 실감했다. 행성이라는 작품만 읽었기 때문에 또 고양이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된다면 고양이와 문명을 읽을 때면 아마 댓글을 적었던 많은 독자들처럼 반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소 자신감이 과한 듯하지만 그만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바스테트의 이야기를 보면서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네가 인간보다 낫구나." 이 말을 새삼스럽게 바스테트에게 건네며 리뷰를 마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