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기특한 불행 - 카피라이터 오지윤 산문집
오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팔꿈치 위에 새겨진 득주와 함께. / p.43

실패에서 느끼는 불행을 이기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므로 이러한 불행 또한 나중에 큰 행복으로 돌아온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 느껴지는 패배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실패했다는 감정뿐 아니라 불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오는 거지.

행복을 크게 바라지도 않지만 불행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는 그저 평온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꿈이다. 바다도 파도가 오듯이 살아가는 인생의 바다도 언젠가는 파도가 온다. 너무 잔잔한 물결만 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파도가 지난 다음 성장할 필요성도 느낀다. 그러나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잔잔한 물결이 더욱 좋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카피라이터 오지윤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제목부터가 흥미로웠다. 작가님의 작고 기특한 불행은 무엇일까. 일상생활에서 불행은 작게 오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고, 성장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기특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상상하지만 막상 불행을 맞이한다면 부정적인 감정의 회오리에서 정체할 때마다 이것 또한 작고 기특한 불행이라는 생각으로 이겨내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불행에 대한 저자의 생각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 드러나 있는 글이었다. 그 중에서도 <너에게는 없는 복>과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너에게 없는 복>는 에세이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전 남자 친구의 권유로 키우게 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레르기까지 있는 저자는 그렇게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지만, 일주일만에 전 남자 친구와 이별하게 되었다. 고양이 오복이를 안으면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고양이 언어 해석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서 무지의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의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과 무지에 대한 생각이 큰 공감이 되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물론, 그것이 인간관계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는 신입 시절 6개월 선배로부터 들었던 조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상사로부터 들은 대답을 보고 표정을 살피면서 본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것. 저자는 동기와 술자리에서 이를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다 평온한 표정의 선배에게 이러한 문제를 털어놓자 선배는 "우리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건넸다는 것이다.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전부 짊어졌던 것이 책임감이라고 느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선배의 말처럼 나 역시도 회사에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러한 생각이었다면 내 자신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회를 살아가면서 이러한 방패막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외에도 코로나 시대에 만남 애플리케이션을 보면서 공감했고, SNS의 행복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 사람도 불행할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던 이야기를 보면서 동지애가 들었고, 과거 아이돌이 언급된 에피소드를 보면서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또한,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글도 있었다. 할머니와 부추에 대한 추억과 엄마의 실명을 거론한 예찬이 그랬다.

책을 덮으면서 정지음 작가님의 추천사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불행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면서 매일 작고 소소한 불행들이 찾아온다. 거리 두기로 사람의 향기를 맡지 못한 것이 그랬고, 면접장에서 무례한 질문으로 자존심의 스크래치가 그랬다. 아마 오늘도 불행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세이의 제목처럼 작은 불행들을 조금이나마 기특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수 삼촌 -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연쇄살인범
김남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쪽 집에서 살고 싶어요. / p.46

연쇄살인범과 함께 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매일 죽음의 두려움을 가지게 될지,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낄지, 그것도 아니라면 순수한 궁금증이 들지 모르겠다. 평생 일어날 일도, 겪기 쉬운 일도 아니겠지만 막상 상상하면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김남윤 작가님의 스릴러 소설이다. 분명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호기심이 들어서 읽게 된 책이다. 연쇄살인범과 같이 사는 기분과 이야기가 궁금했다. 거기에 어떻게 하다 그런 소름 끼치는 일을 겪게 되었는지도 말이다. 아무래도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주인공인 강력계 형사인 두일이다. 두일은 자녀 둘을 둔 가장으로 아내와 자녀는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이기도 하다. 경찰 소득으로 자녀 교육 뒷바라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점점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빚까지 지고 있다. 그와중에 10년 전 연쇄살인 사건과 비슷한 수법의 사채업자 시신이 발견된다. 그리고 두일이 일하는 강력계로 그 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히면서 위험한 제안을 건네는 한 남자의 연락이 온다.

그는 철수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로 두일의 약점까지 쥐고 있어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게 만든다. 결국 두일과 철수는 같은 집에서 동거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일은 철수를 의심하면서 강력계 형사로서의 일을 하고, 철수는 수상한 행동으로 두일에게 의심할 거리를 준다. 과연 10년 전 연쇄살인사건은 어떻게 풀 것인가. 사채업자의 시신은 진짜 그 범인, 철수가 죽인 것인가.

두일의 사정이 너무 딱했다. 의지할 가족도 없고, 직장에서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거기에 연쇄살인범에게 당할 정도로 약한 존재. 유학에 필요한 자금을 대면서도 가족으로부터도 외면을 당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전화 통화 자체도 하지 않고, 용돈 닦달을 하는 아내와 아버지에게 짜증 내는 딸까지. 과연 두일은 어떤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 어려움들을 토로할 수 있을까. 빚을 내면서까지 그렇게 발버둥치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두일에게 딜을 하고 있는 뻔뻔한 철수의 모습을 보니 더욱 화가 났다. 마치 두일의 집을 자신의 집처럼 이용하는 모습. 애초에 갑은 두일이었고, 을은 철수다. 거래가 아니라 요청을 해야 맞다. 그러나 철수는 두일에게 미안함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두일의 약점을 이용해 집에 눌러 앉는 것도 모자라 두일의 가족들에게 신뢰를 얻고 가족으로서의 위치까지 넘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두일에게 하숙비를 내는 게 그나마 조금 낫다 싶었다.

중간에 낯선 남자를 집으로 들이는 두일의 모습을 보고 의심하는 딸의 태도가 재미있었다. 소설이라는 텍스트로 봤을 때에는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딸이라면 착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나름의 이해가 되었다. 그것이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 두일의 취향을 의심해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유머 포인트였던 것 같다. 아마 다른 독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코드이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덕후이기에 소설을 그런 맥락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조금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것 또한 연결시키는 것이 또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 그렇게까지 재미를 반감하거나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추리 스릴러 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 처음 만나는 페미니스트 지리학
레슬리 컨 지음, 황가한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만약 도시에 살았다면 아마 좋아하는 카페를 전전하면서 책을 썼을 것이다. / p.152

작은 시골에서 근무하면서 도시가 좋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자차로 출퇴근을 했기에 시골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다 보니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예를 들면 집 근처에 마트가 두세 곳이 있다. 그러나 회사는 딱 한 곳뿐이다. 다른 문화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과거에는 한적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보통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귀향 로망을 청소년기 때부터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직장을 시골에서부터 한 이후로 죽을 때까지 도시에서 지내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인프라와 환경들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책은 레슬리 컨의 사회학 도서이다.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책들을 조금씩 읽고 있지만 페미니스트 지리학 자체는 생소한 개념이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여성학 서적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직장 유리천장과 양육의 문제, 임금의 문제 등의 내용이었는데 도시에서 느끼는 성차별이라는 게 궁금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성차별의 문제는 무엇일까.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엄마로서 느끼는 도시의 성차별, 친구와 함께 지내는 도시의 성차별, 여성 혼자 있는 도시에서의 성차별, 평등을 외치는 시위에서의 성차별, 도시에서 느끼는 공포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달리 너무나 큰 공감과 이 또한 도시에서 느껴지는 차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엄마로서의 도시는 공감보다는 인지하는 수준으로 읽었다. 아무래도 미혼이기에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것 자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어서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장애인의 이동권은 보장하면서 유모차를 몰고 있는 엄마로서의 이동권은 왜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고 기억을 돌이켜보니 자주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 유모차를 사용하는 엄마는 없었다. 내 기억속의 엄마들은 모두 아기띠를 매고 있었다. 가끔 조카를 애기띠에 매고 다녔던 입장으로서 무엇보다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인지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와 모유 수유 공간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연장선에서 엄마들의 시위를 다룬 네 번째 장의 이야기도 꺼내고 싶다. 요즈음 페미니즘 이슈로 여성들이 시위를 나서는 일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주 양육자인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현장에 나온다. 아이를 본 사람들은 엄마에게 안 좋은 시선을 보내고, 말을 건넨다.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끌고 나오기에 안전상 문제도 있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오지만 아이를 생각해 그마저도 포기하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이 또한 도시에서 느껴지는 하나의 차별이지 않을까.

피부에 와닿았던 부분은 다섯 번째 장의 공포의 도시였다. 도시에 살면서 공포를 느낄 때가 너무 많다. 늦은 시간까지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가로등과 CCTV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서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저자는 여기에서 느끼는 공포를 강간 문화로 설명한다. 아마 이 파트를 읽는다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느낀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과 다르게 여성이 제약을 받고 있으며, 피해를 입더라도 결국 잘못은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닌 여성에게 돌아간다. 이 또한 여성들이 겪는 현실이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는 흔히 말하는 주류의 시스젠더 백인 여성이다. 그러나 저자의 환경이 혼란스러웠다. 그만큼 책에서는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 여성이 겪는 차별이 많이 등장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통해 치안에 취약한 외곽으로 벗어나는 저소득층 여성을 이야기하면서 유색 인종을, 게이바라고 불리는 남성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은 있으나 여성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말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페미니즘 도서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에 대한 차별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렇게 주류 페미니스트의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옮긴 이의 말에서도 등장하지만 저자는 캐나다와 미국의 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상황과 많이 다르지만 도시에서 느껴지는 성차별은 대한민국에서도 현재진행중이다. 그러나 조금씩 연대하면서 여성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임산부 배려하는 정책들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인 요소로 뽑을 수 있다. 여전히 도시는 무섭지만 여성 친화적 도시의 희망을 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아는 그 헤밍웨이가 더 헤밍웨이답다고 느낀다. / p.283

대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사실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공인 복지학을 예로 들면 사실 보통 복지학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수학과 과학보다는 사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계열에 속한다. 하지만 막상 복지학을 들여다 보면 사전 조사에서 필요한 통계 개념이 들어가기도 하고, 각 생애별로 신체부터 정신, 정서 등의 포괄적인 성장과 변화를 다루기도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자연과학계열이라고 불리는 이과에서 수학과 과학 위주의 공부를 했고, 대학교에서는 사회과학계열의 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이과생이었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에는 전교 바닥에서 놀 정도로 소질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보니 습자지와 같은 지식과 기억이 약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이 책은 이야기꾼이라고 불리는 곽재식 작가님의 과학 이야기가 담긴 논픽션 도서이다. 얼마 전 로켓 앤솔로지를 통해 곽재식 작가님의 소설이 인상 깊었다. 그러면서 하나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소설에서는 로켓이라는 과학적 소재보다는 사회적인 문제가 와닿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과학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문과에 가까운 고전문학과 이과의 과학 이야기의 콜라보가 흥미로워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리뷰를 문과와 이과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이 내용이 이 책의 서두에 실린다. 무엇보다 큰 공감이 되었다. 세상은 이과와 문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저자는 이러한 내용을 강조한다. 세상은 원래부터 문과와 이과의 융합이었다는 말.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내내 고전 속의 과학 이야기를 찾아가는 게 흥미로웠다. 마치 저자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술술 읽혀졌다. 흔히 말하는 닉네임 값을 여기에서 느꼈다.

각 챕터마다 하나의 고전에 다양한 과학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콘크리트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콘크리트는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건축 재료이며, 화학적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굳혀진다. 시멘트로만 하게 되면 무를 수 있기에 자갈이나 모래 등을 일정 비율로 혼합해 만든 것이 레디 믹스 콘크리트, 우리가 흔히 부르는 레미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질소는 다르게 반응해 화약이나 다양한 소재에 쓰이지만 공기 중의 질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납에서 은을 뽑아내고자 시도했었던 조선시대의 장유신이라는 인물, 아라비아 숫자보다 더 먼저 시작된 인도에서의 숫자 이야기 등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다양한 과학 이야기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또한, 걸리버 여행기가 풍자적 소설이라는 것도, 왕의 미움을 받아 추방되었지만 로마를 그리워하던 작가의 이야기, 화약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 혼란한 전쟁 이야기, 냉장고 이야기에 숨겨진 침략에 대한 아픈 역사 등 읽으면서 과학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전에 역사 이야기들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이과와 문과는 늘 함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고전 문학 속에 역사가 있고, 역사 안에는 과학이 있었다.

총 열세 권의 소설이 등장하지만 여기에서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다. 조금이나마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조금 더 넓은 폭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았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즈 앤 올
카미유 드 안젤리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길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 p.26

세상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반대로 안 되는 것들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같은 종족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정의가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나의 예를 들면 동물 중에서도 개는 먹지 않는다는 주의다. 아무래도 이는 과거에 강아지를 키웠던 경험으로 먹거리보다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카미유 드 안젤리스의 판타지 소설이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풋풋한 로맨스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청소년의 성장 이야기도 궁금했다. 지금까지 소설에서 표현된 청소년의 사랑과 성장을 통해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만큼 이 소설 역시도 나에게 설레는 감정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매런이라는 여자 아이이다. 어렸을 때 베이비 시터를 먹은 이후로부터 식인 습성을 알게 되었다. 점점 자라날수록 나타나는 식인 습성 때문에 엄마와 함께 이사를 갔으며, 결국 엄마는 지쳐서 매런을 떠났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매런은 열여섯 살이 되어 아빠를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남자들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 같은 습성의 리와 또 다른 할아버지를 만난다.

지금까지 식인 습성은 물론, 사람의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의 이야기조차도 거리를 두었던 터라 처음에 내용을 읽으면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줄거리를 통해 매런의 습성 자체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글자를 통해 보게 되다니 더욱 괴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었던 독자라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을 정도로 유하게 그려졌던 것일 수도 있다. 아마 이는 나의 독서 취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런이라는 인물의 흐름에 따라 점점 적응하게 되었다. 자신을 유혹하는 남자들과 있을 때에 허기를 느꼈고, 이성과 싸웠지만 결국에는 본능을 이기지 못했던 매런과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딸 매런, 자신과 같은 습성을 가진 할아버지와 리로부터 의지하는 연약한 매런의 모습들. 사실 식인 습성만 빼면 보통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식인 습성이라는 것 자체가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겠지만 말이다.

결말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 역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같은 종족의 남자와 사랑을 느끼고 행복하게 마무리가 될 줄 알았는데 마지막까지도 매런은 사람을 향한 허기를 느꼈다. 그렇다고 버라이어티하게 습성을 버리는 등의 말도 안 되는 결말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매런을 향한 연민이지 않을까.

읽는 내내 매런의 습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누가 봐도 거부감을 느끼는 식인 습성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매런의 사람을 향한 허기와 먹는 것은 사람을 향한 애정과 그리움의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식인 습성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엄마가 매런을 떠날 일은 없었겠지만 소설 내용만 보면 매런이 그렇게 화목한 집안의 딸은 아닌 것 같다. 매런의 엄마도 양육자로서 애정을 주지 못했고,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매런을 향한 유혹의 눈길은 순수한 목적보다는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늑대들의 불순한 목적이 더 강해 보인다. 그런 과정에서 매런은 사람을 먹는 행위로서 이러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