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 처음 만나는 페미니스트 지리학
레슬리 컨 지음, 황가한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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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도시에 살았다면 아마 좋아하는 카페를 전전하면서 책을 썼을 것이다. / p.152

작은 시골에서 근무하면서 도시가 좋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자차로 출퇴근을 했기에 시골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다 보니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예를 들면 집 근처에 마트가 두세 곳이 있다. 그러나 회사는 딱 한 곳뿐이다. 다른 문화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과거에는 한적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보통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귀향 로망을 청소년기 때부터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직장을 시골에서부터 한 이후로 죽을 때까지 도시에서 지내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인프라와 환경들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책은 레슬리 컨의 사회학 도서이다. 페미니스트에 관련된 책들을 조금씩 읽고 있지만 페미니스트 지리학 자체는 생소한 개념이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여성학 서적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직장 유리천장과 양육의 문제, 임금의 문제 등의 내용이었는데 도시에서 느끼는 성차별이라는 게 궁금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성차별의 문제는 무엇일까.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엄마로서 느끼는 도시의 성차별, 친구와 함께 지내는 도시의 성차별, 여성 혼자 있는 도시에서의 성차별, 평등을 외치는 시위에서의 성차별, 도시에서 느끼는 공포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달리 너무나 큰 공감과 이 또한 도시에서 느껴지는 차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엄마로서의 도시는 공감보다는 인지하는 수준으로 읽었다. 아무래도 미혼이기에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것 자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어서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장애인의 이동권은 보장하면서 유모차를 몰고 있는 엄마로서의 이동권은 왜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고 기억을 돌이켜보니 자주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 유모차를 사용하는 엄마는 없었다. 내 기억속의 엄마들은 모두 아기띠를 매고 있었다. 가끔 조카를 애기띠에 매고 다녔던 입장으로서 무엇보다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인지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와 모유 수유 공간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연장선에서 엄마들의 시위를 다룬 네 번째 장의 이야기도 꺼내고 싶다. 요즈음 페미니즘 이슈로 여성들이 시위를 나서는 일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주 양육자인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현장에 나온다. 아이를 본 사람들은 엄마에게 안 좋은 시선을 보내고, 말을 건넨다.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끌고 나오기에 안전상 문제도 있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오지만 아이를 생각해 그마저도 포기하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이 또한 도시에서 느껴지는 하나의 차별이지 않을까.

피부에 와닿았던 부분은 다섯 번째 장의 공포의 도시였다. 도시에 살면서 공포를 느낄 때가 너무 많다. 늦은 시간까지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가로등과 CCTV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서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저자는 여기에서 느끼는 공포를 강간 문화로 설명한다. 아마 이 파트를 읽는다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느낀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과 다르게 여성이 제약을 받고 있으며, 피해를 입더라도 결국 잘못은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닌 여성에게 돌아간다. 이 또한 여성들이 겪는 현실이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는 흔히 말하는 주류의 시스젠더 백인 여성이다. 그러나 저자의 환경이 혼란스러웠다. 그만큼 책에서는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 여성이 겪는 차별이 많이 등장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통해 치안에 취약한 외곽으로 벗어나는 저소득층 여성을 이야기하면서 유색 인종을, 게이바라고 불리는 남성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은 있으나 여성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말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페미니즘 도서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에 대한 차별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렇게 주류 페미니스트의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옮긴 이의 말에서도 등장하지만 저자는 캐나다와 미국의 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상황과 많이 다르지만 도시에서 느껴지는 성차별은 대한민국에서도 현재진행중이다. 그러나 조금씩 연대하면서 여성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임산부 배려하는 정책들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인 요소로 뽑을 수 있다. 여전히 도시는 무섭지만 여성 친화적 도시의 희망을 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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