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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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그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 p.44

학교를 다녔을 때에는 당연하게 느끼던 것이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학교의 교무실을 학생들이 정리한다는 사실이었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고 말하면서 왜 선생님들의 공간을 학생들이 치워야 하는지 말이다. 당시에는 선생님의 말은 곧 법이었기에 당번이 되면 자연스럽게 컵을 설거지한다거나 바닥을 닦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작게 의문을 가졌을 듯하다. 그렇다고 교사라는 직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의 장편 소설이다. 뭔가 출판사 소개와 줄거리가 요즈음 맞닿아 있는 의문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이야기처럼 보여서 관심을 가지게 된 책이다. 당시의 교육 체제에 반기를 드는 학생이 뭔가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내용에 금서로 지정이 되었다고 하니 너무 궁금했다. 원래 금서나 하지 말라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 않은가.

소설의 주인공은 게르버라는 인물이다. 8학년에 재학 중으로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다. 낙제가 될 시에는 졸업 시험을 보지도 못하는데 게르버는 약간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는 학생인 듯하다. 특히, 반의 담임 선생님인 쿠퍼는 게르버의 부모님께 엄포를 놓는 등 게르버를 괴롭힌다. 게르버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가정 학습을 받자는 아버지의 설득에도 끝까지 학교에 남아 졸업 시험을 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학교 체제에 불만과 게르버의 순수한 사랑, 졸업 시험에 대한 압박감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게르버가 참 반항적인 인물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 계열에 들어가서 선생님의 눈밖에 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지만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적당히 학교에서 일탈을 한다거나 학교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소년처럼 말이다. 아마 대한민국에서도 게르버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청소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게르버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반면 선생님인 쿠퍼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 읽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괴짜라는 선에서 이해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나의 기준만 보자면 선생님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을 괴롭히는 악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제를 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낙제를 외친다거나 갑자기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을 자신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해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관련 질문을 하는 등 도저히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선생님이라면 인권위에 신고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게르버의 사랑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성관계 등의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논할 때 게르버는 성애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리자와 육체적인 사랑에 거리를 두고자 노력한다.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리자의 모습을 보고도 편에 서서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인다는 게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마음이 참 기억에 남았다.

아무래도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의 특성상 교육 체제가 조금 어려웠고, 철학과 종교적인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어서 쉽게 읽혀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수학능력시험은 성적이 아닌 접수로 치룰 수 있으며, 지필 고사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오스트리아는 낙제일 경우에 볼 기회가 박탈되거나 구술 고사로 이루어지는 게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읽는 내내 이러한 부분은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게르버에게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책장을 넘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마지막 내용이 씁쓸한 맛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또한, 이게 비단 오스트리아라는 공간적 배경을 떠나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도 해당이 될 듯했다. 공부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나 역시도 그랬고, 지금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게르버의 고민과 중간중간 내용을 형광펜 인덱스로 표시할 정도로 마음에 남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현실적인 결말로 느껴졌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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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도시 탐구 - 우리나라 도시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아라크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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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래전에 방랑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 p. 4

이 책은 곽재식 작가님의 인문학 도서이다. 곽재식 작가님의 책을 많이 읽은 터라 이제는 믿고 볼 정도가 되었다. 불과 한 달 전 정도 전에는 소설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인문학 책이다. 소설도 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서 아직까지도 인상적이었는데 이렇게 신간으로 인문학 도서를 만나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대한민국 도시 열 곳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과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역사, 사회에 대한 내용까지 담겼다. 더불어, 저자 특유의 유머와 도시에 대한 추억은 덤이다. 읽는 내내 웃으면서 읽기도 했었고, 얼핏 알고 있었던 정보, 아예 몰랐던 내용 등 도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참 흥미로웠다. 그렇게 얇은 두께는 아니었지만 후루룩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었다.

외가 근처의 지역이어서 나름 자주 방문했던 곳이어서 익숙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속초 이야기가 참 인상 깊었다. 설악산의 울산 바위를 듣기는 했지만 속초에 울산이라는 지명을 가진 바위가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울산에 있는 바위가 금강산을 가려다 설악산에 정착해서 그렇게 붙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명태의 다양한 이름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백태, 깡태 등의 새로운 이름은 흥미로웠다. 마지막에 명태의 습성과 관련해 잠수를 타는 사람들에게 명태라는 이름을 붙여 주자는 저자의 유머 코드와 상상력은 너무 잘 맞았다.

그밖에도 대전이 화학의 도시가 된 이유, 부산이 고무신 제조업으로 유명했던 사실도 흥미로웠다. 저자의 말에도 나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열 곳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특히, 광역시는 대전, 울산, 부산 이렇게 세 군데만 다루었다. 살고 있는 지역을 포함해 서울이나 대구 등의 다른 도시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했던 터라 이 부분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도시는 많을 테니 시리즈로 나온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학자이기 때문에 직장을 다녔을 때와 학술대회 등 다양한 일로 지역을 방문했던 일화들을 보면서 열 곳을 책으로 여행하는 느낌도 들었고,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지역이었던 청주와 울산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청주에서는 메타세콰이어 길이, 울산에서는 학성이라는 유래를 보면서 관심이 생겼고 시간이 된다면 꼭 여행으로 방문하고 싶다. 

곽재식 작가님의 이야기는 늘 옆에서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 대한 다양한 썰을 듣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여행을 다닐 일이 많지 않았는데 덕분에 독서 여행을 떠난 것 같아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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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네이트 (노블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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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의 '대리인'. / p.31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버디버디를, 대학교에 올라와서는 싸이월드를, 현재는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또 나누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얼굴을 보는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얼굴을 모르는 친구들과 공통 관심사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초면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에게는 빛과 같은 존재이다. 

얼굴도 안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주고 친분을 쌓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친한 친구에게도 터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쉽게 꺼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았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벅찬 감정이거나 주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개인적인 문제들이 그렇다. 관심사 분야에서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짚어 줄 때마다 인간관계는 물리적 거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은 가토 시게아키의 장편 소설이다. 소재가 참 눈길을 끌었다. 직장인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의 학생판이지 않을까. 학교 다닐 때에는 같은 또래들만 할 수 있는 커뮤니티나 메신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마음에 대한 공감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처럼 청소년 시기로 돌아가 추억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에서 가장 큰 주제는 얼터네이트라는 메신저이다. 고등학생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서로 커넥트가 되면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유전자 매칭 기능을 도입해 비슷한 성향의 동년배를 만날 수 있다. 얼터네이트를 사용하지 않는 이루루, 얼터네이트를 맹신하는 나즈, 얼터네이트를 사용할 수 없는 나오시라는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세 명의 각자 입장들이 이해가 되었다. 악성 댓글에 대한 트라우마로 얼터네이트를 사용하지 않는 이루루의 두려움, 운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즈의 믿음, 같은 꿈을 꾸었던 친구를 만나고 싶은 나오시의 그리움까지 말이다. 인물이 안타까움을 느꼈을 때에는 나 역시 마음이 저릿했고, 실망감을 느꼈을 때에는 나 역시도 얼터네이트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마음과 동일시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즈의 이야기가 가장 크게 인상적이었다. 나즈는 얼터네이트에 맹신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유전자 매칭 기능을 활용해 자신과 가장 높은 일치율을 보이는 남학생을 만난다. 기대를 가지고 만났지만 후줄근한 옷차림새에 약간은 예의가 없다고 느낄 정도의 태도에 실망한다. 남학생은 나즈에게 호감을 표시했지만 나즈는 그렇지 않았다. 이 남학생과 유전자 일치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고, 더 나아가 신뢰마저 떨어지는데 이러한 마음이 가장 공감이 되었다. 우선, 아무리 많은 정보를 입력한다고 하더라도 90 퍼센트가 넘는 일치율을 어떻게 애플리케이션이 장담할 수 있는지 읽는 내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중반에 이르러 읽을수록 얼터네이트보다는 세 명의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깊이 와닿았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리대회에 도전하는 이루루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나즈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쿄로 상경해 드럼을 치고자 노력하는 나오시의 열정은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무언가에 미쳐 열정을 분출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지만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게 되었다.

학창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일본 소설이라는 특성상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과거를 소환하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얼터네이트의 비중이 크지 않다고 느껴졌기에 꿈을 가진 청소년 시기의 꿈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처럼 보였다. 마치 지금 시기에 청소년들을 보았을 때의 엄마 미소처럼 웃으면서 읽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흐뭇함을 느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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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인생
저우다신 지음, 홍민경 옮김 / 책과이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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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인생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조력자 같은 거지. / p.185

사실 살아가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시한부의 삶을 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늘의 뜻에 맡기면서 이것 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스스로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는 것을 최근에 많이 느꼈다.

지구 멸망에 대한 기사를 보고 죽기 싫다고 울었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는 전에 리뷰를 통해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생각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다. 진시황 수준의 장수 식품을 챙겨서 먹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영양제는 이십 대 초반부터 꼬박꼬박 챙겨서 먹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버릇은 조금씩 고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금주를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과거와 현재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하니 누구보다 삶에 미련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저우다신의 장편 소설이다. 표지를 보자마자 뭔가 고풍적인 느낌이 드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선을 끌었다. 제목과 너무 잘 어울리는 표지여서 눈길이 갔지만 줄거리를 보니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을 소설로 어떻게 풀어낼까. 개인적으로도 깊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읽고 싶었다. 무엇보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샤오양이라는 여자로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남자 친구와 미래를 그리고 있다. 남자 친구의 시험 뒷바라지와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구직을 하던 중 우연히 한 할아버지의 간병 모집을 보았다. 고민했지만 베이징이라는 대도시의 일자리이기도 하고, 나름 만족스러운 월급이었기에 간병인으로서 취업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은 까탈스러운 샤오 할아버지를 만난다.

샤오 할아버지는 초반에 샤오양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간병 자체를 싫어하는 듯했다. 늙은이라는 호칭을 싫어하며,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전직 판사로 조금 보수적인 면도 있었다. 변호사라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그 무엇보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샤오양은 이런 샤오 할아버지의 마음과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챙기기 시작했으며, 그런 모습에 샤오 할아버지는 마음을 연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래 살 수 있다는 체험이나 약품 등을 사다가 나르면서 장수할 것이라고 굳건히 믿는다. 이야기는 이렇게 샤오 할아버지와 샤오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첫 번째는 영원을 생각하는 인간의 욕구이다. 샤오 할아버지는 장수 회관을 찾아가 페이 대사를 만나 몸에서 십 년 이상의 생명을 연장하고, 장수를 위한 약을 구매해 또 몇 년의 삶을 더 살겠다고 노력한다. 그것도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말이다. 또한, 결혼에 대한 욕구도 강해 새로운 여성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키우기도 한다. 보는 내내 진시황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불로장생에 대한 샤오 할아버지의 마음이 공감이 되면서도 중반에 이르러 점점 세월과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두 번째는 가족보다 남이 낫다는 점이었다. 사실 샤오 할아버지의 딸인 신신이라는 인물이 배신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남이었던 다른 누군가는 샤오 할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샤오양은 누구보다 극진히 샤오 할아버지를 모신다. 불편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좋은 말로 감정을 풀어주었고, 항상 샤오 할아버지의 기저질환을 생각해 이를 조심했으며, 간호 전공자라는 특기를 살려 위급한 순간에 샤오 할아버지를 구하기도 했다. 샤오 할아버지는 그런 샤오양의 진심을 알게 된 이후로 마음으로 낳은 딸처럼 진심으로 대해 주었다. 중반에 이르러 샤오양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었고, 여자가 아닌 딸로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주기도 한다. 이는 피보다 물이 더 진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했다. 

읽는 내내 인물들의 모습에 가슴이 저릿하다가 샤오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조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 나아가 부모님의 가까운 미래까지 생각하니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묵직하게 와닿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꽤 두꺼운 페이지 수를 가진 소설임에도 이야기에 몰입되어 읽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들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물론, 문화 차이로 조금 답답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서 크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내내 푹 빠져서 읽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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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매번 불행을 선택할까
뤄진웨 지음, 이효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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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기를 바라면서도 변화가 두렵다. / p.164

몇 년 전 친한 선배와 행복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태어나서 행복을 느낀 적이 없고, 아직까지도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너무 무난하고도 평탄한 삶을 살아왔기에 당시에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말이 공감이 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선배는 그때 당시에 내가 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지금은 행복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작은 일에서 행복을 느끼면 된다고 하는데 만족스러움을 많이 느끼기는 하지만 그게 곧 행복인지 잘 모르겠다. 대체 행복한 감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행복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뤄진웨의 심리학 도서이다.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제목에 눈길이 끌렸다. 굳이 고르자면 예상했던 시나리오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서의 불안함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관심을 가지고 보는 분야이면서 가장 좋아하는 분야인 심리 상담 관련 도서이면서 나의 오랜 물음인 행복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애정결핍과 인정 욕구, 무감각 등의 심리적 문제를 내담자와 지인들의 사례로 찾아가면서 원인과 해결 방법을 실질적으로 제시해 주는 형태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내담자의 고민들이 곧 나의 고민과 이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읽는 내내 하나하나 공감이 되었고,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는 이제 막 책을 완독한 시점이다 보니 행동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으로 받은 도움이겠지만 말이다.

두 가지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첫 번째는 행복력에 대한 개념이었다. 그 중에서도 행복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네 가지 방법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책에서 총 4 단계를 제시했다. 인지력, 감수성, 감지력, 수용력 개념이었다. 인지력은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감수성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것, 감지력은 자신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 수용력은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마음을 기울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었지만 내면보다는 외면의 이야기에 휘둘릴 때가 많다 보니 와닿을 때가 없었다. 보다 자세하게 그리고 쉽게 설명해 주어서 좋았다. 다시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는 중심 특질이라는 개념이었다. 자신이 마음속에 의지할 수 있는 안정되고 견고하는 것이 존재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중심 특질이라고 하는데 이를 가진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반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린다거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안일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예전에 상담을 받으면서 스스로에게 부족했던 부분이 중심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이를 찔러 주는 듯한 내용이어서 가장 와닿았다.

책에서는 과거가 안 좋으면 잊고 현재에 집중하라거나 무조건 치고 나가야 한다는 식의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부모님의 양육 환경으로부터 과거에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주는 식의 내용은 큰 위안이 되었다. 가끔 과거에 받았던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힘들 때가 많은데 마치 해결 방향을 찾아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주변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은 더욱 공감이 되었다.

읽는 내내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직도 행복이라는 게 거창하면서도 알 수 없는 미로처럼 느껴진다.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확답은 내려주지 않지만 행복력을 키울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현실적인 방향을 배울 수 있기에 적어도 이렇게 실천하다 보면, 또 스스로에게 집중하다 보면 미약하게나마 행복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생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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