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마을 -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
도미니크 포르티에 지음, 임명주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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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물에 대해 말한다. / p.71

가상과 현실을 가리지 않고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그 사람의 인생에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는 느낌이 들고, 당사자가 된 느낌도 든다. 일정한 사건과 시기를 다룬 이야기들도 좋지만 탄생과 죽음까지 모든 시대의 이야기들을 더욱 선호한다.

이 책은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사실 처음에 큰 착각을 하고 읽게 되었는데 소설인 줄 알았다.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가상 이야기라는 착각. 제목부터가 뭔가 호기심을 주었고, 주인공이 사는 비밀의 집이라는 내용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읽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미국의 시인으로 개인주의자로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또한, 겉으로 보면 바다의 잔잔한 물결과 같은 삶을,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거친 파도와 같은 삶을 살았는데 책에서는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를 관찰자의 시점으로 일대기를 말한다.

약간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에밀리 디킨슨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시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에 장벽이 높은 탓에 상상력이 부족한 편인 나는 그렇게 즐겨서 보는 편이 아니다. 조금씩 읽고 있기는 해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읽는 내내 에밀리 디킨슨이 말하는 시와 살고 있는 고향에 대한 표현이 마치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었기 때문에 에세이나 소설보다는 긴 호흡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물론, 에밀리 디킨슨이 직접 적은 자서전이 아닌 관찰자의 다른 대상의 입을 빌린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외부에서 보는 잔잔한 물결과 내면에서의 거친 파도가 너무나 잘 느껴졌다. 내용만 본다면 그렇게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심지어 에밀리 디킨슨은 알려진 것과 같이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과의 소통이 많지 않았기에 더욱 인생에 크게 떠올릴만한 사건들이 없었다. 기억에 남는다면 여자 학교를 다녔다는 것과 유일하게 만난 남자가 있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게 또 특별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반대로 내면의 거친 파도는 너무 인상 깊었다. 주님의 구원을 받고 싶은 사람 손을 들라는 학교 교장 선생님의 질문에 반기를 들고, 시에 대한 열망, 그리고 삶에 대한 고뇌 등 뭔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고립을 택하면서도 외롭지 않은, 오히려 평온하게 보이는 삶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시에 몰입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모습들이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또한, 자신만의 린든을 만들고자 했던 내용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제목에 등장하는 종이로 만든 마을과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이 있었기에 거친 파도와 세상 안에서 평온하게 살지 않았을까. 그게 원동력처럼 느껴졌다.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인물에 대한 지식이 조금 더 해박했더라면 책을 읽으면서 오는 감동의 파도가 더 크지 않았을까. 문장들이 마음에 와닿았지만 독자로서의 능력이 그만큼 따라주지 못해 개인적인 아쉬움이 들었던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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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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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충분하다. / p.185

직장에 근무하면서 생각보다 복 받았다 느꼈던 점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었다. 정책이 좋다거나 인권이 높아서도 아니다. 어려운 언어 중 하나인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물론, 성조를 사용하는 중국어나 베트남어도 어렵기는 하지만 한국어는 진짜 어려운 언어 중 하나라는 사실을 너무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맡았던 업무가 이용인분들의 한국어교육을 담당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문지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출판사 유튜브에서 최신작의 문구를 들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죽하면 메모장에 적어 배경화면으로 저장할 정도였는데 그게 이 작품의 후속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기회에 출판사의 북클럽으로 세 권의 도서를 고를 수 있었기에 기대가 되는 작품으로서 이 작품과 신작, 그리고 다른 작품까지 전부 젊은 작가 장편소설 안에서 선택했다. 보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터라 바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지혁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 강사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다. 첫 수업에서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Are you in peace?"로 적자 수강생들은 바로 웃음을 터트린다. 어떻게 초면에 평화를 빈다는 인사를 하냐는 것이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는 거룩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혁은 거기에서 안녕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느냐고 독자에게 되묻는다. 또한, 지혁은 미국에서 강사 일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오고 있는데 그 안에 담긴 고뇌, 한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한국어 수업과 맞물려 전개된다.

처음에 지혁과 수강생 사이의 오해나 편견, 그리고 수업에 대한 에피소드로 흘러갈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지혁이 가지고 있는 내부의 감정과 생각, 미국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야기들이 중심적으로 나타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는 어디까지나 예상과 벗어나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부분에서의 감정이다. 전체적으로 술술 읽혀졌으며, 중간중간 저자 특유의 유머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흔히 겪는 실수나 말투들은 공감이 되어 재미있었다.

어느 인상 깊은 점을 딱 하나 고르기에는 전체적인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 사실 소설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하나를 뽑는다면 지혁의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생사를 오가셨다는 일 정도일 뿐이다. 하나하나 벌어진 일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사소하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익숙하고, 또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혁의 심정과 생각에 더욱 공감이 되었고, 몰입했고, 인상이 깊었다. 서툴게 구술 평가에 응시하고, 할머니께 배워 중간마다 '인자'라는 말을 붙이는 수강생의 모습은 참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특히, 지혁이 작가가 되고 싶지만 수없이 많은 대회에서 떨어지고, 동생인 지혜는 이를 두고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대학교 교수님이나 뉴욕에서의 교수님은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거나 부럽다는 말을 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그 안에서 느끼는 지혁의 고뇌와 절망이 무엇보다 강하게 와닿았다. 마치 내가 지혁이 되어 상처를 받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용은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웠지만 가장 마음을 울렸던 문장은 작가의 말이었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과 소설은 둘로 갈라져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고 말한다. 이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잘 인식시켜주는 듯했는데 묘하게 머리에 각인이 되었던 문장이었다. 우리 삶도 하나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지점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후에 읽을 <중급 한국어>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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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 한 언어심리학자의 자아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
줄리 세디비 지음, 김혜림 옮김 / 지와사랑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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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허공에 뜬 기분이 들었다. / p.12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다른 국가에 정착할 일 없이 살다 보니 언어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일이 있다면 그 지역 방언의 적응이라든지 조금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이사도 거의 같은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 내로만 다니다 보니 비교적 언어적인 어려움은 없이 살아온 축에 속하다.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 이상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줄리 세디비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언어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 왜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두 번째로 다녔던 직장에서 생각을 깼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많이 언급했던 것처럼 다문화가정과 결혼이민자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었는데 그때 이중언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 나라의 언어를 자녀가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단순하게 언어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또는 소통 그 이상으로 큰 의미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그때 생각이 났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체코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이주민 가정이다. 아버지께서는 체코어를 자녀들이 사용하기를 바라셨으나 저자를 비롯한 자녀들은 영어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온 듯하다. 그렇다 보니 체코어는 문맥에 맞지 않게 드문드문 사용할 정도였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 언어를 상실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언어심리학자인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이중언어의 중요성, 그리고 이중언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오는 책이다.

처음에는 저자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보니 술술 읽었지만 불어나 체코어 등 조금은 낯선 언어들에 대한 문법과 단어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 속도가 더디게 읽혀졌다. 그나마 영어는 학교를 다닐 때 오래 배웠기에 어느 정도 읽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수능을 위한 공부였을 뿐이어서 그 부분들은 그냥 머릿속에 담는 느낌으로만 책장을 넘겼다. 전체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주제이다 보니 읽는 것이 어려움은 있었으나 몰랐던 부분이어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지점이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한국어의 등장이다. 다른 언어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중간에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가 한 문단 정도 나오는 것 같다. 주된 내용은 언어에 관습이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예시가 한국어였던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는 위계와 공손함에 대한 집착이 언어의 뼛속까지 깊이 자리잡았다고 표현했다. 상대의 위치나 권위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높임말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언어적인 표현이 세분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했던 언어인데 다른 나라에서 본 생각을 이렇게 활자로 보는 게 새로웠다.

두 번째는 고유 모국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단어이다. 책에서는 예시로 체코어인 '리토스트'라는 단어를 예시로 든다. 영어로 말하면 Regret, 한국어로 말하면 유감이라는 단어인데 체코 국적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단순하게 유감이라는 단어로는 리토스트를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을 하나의 스토리로 설명해 주었는데 아무리 읽어도 그 감정이 와닿지 않았다는 점은 의아했다. 아마도 체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밖에도 저자가 체코에 있는 삼촌과 친척을 만났을 때의 그 감정, 캐나다에서는 매년 이중언어를 위한 세금이 투여되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 않다는 점 등의 이야기도 꽤 기억에 오래 남았다.

서두에 언급했던 개인적으로 겪었던 이중언어는 결혼이민자라는 한 개인과 대한민국 국적의 자녀 관계에서 이야기가 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온전히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이중언어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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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 샐 싱 미스터리 편 여고생 핍 시리즈
홀리 잭슨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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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걸 증명해 보일 거고요. / p.14

청소년기에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과감하고 조심성이 없는, 어떻게 보면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도전해 수확을 올릴 때도 있었는데 반대로 실패를 경험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홀리 잭슨의 장편소설이다. 여고생이 살인 사건을 조사한다는 내용이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 어른이 된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무모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주인공인 핍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이를 헤쳐나갈지, 그리고 독자에게 어떤 여운을 줄지 그 지점이 궁금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혈기왕성한 청소년의 도전 이야기를 보면서 스스로 자극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핍이라는 이름의 여고생이다. 학교에서는 나름 명문대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모범생인 그녀는 학교 수행평가에 과감하게 5년 전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주제로 하기로 한다. 담당 선생님은 가족과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힘을 빼고 하라는 등의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핍은 이미 마음을 굳히고 마을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초반부터 핍은 범인으로 의심을 받았던 샐 싱의 형제를 찾아갔고, 나름의 사건 파일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등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읽으면서 핍의 결단력과 용감함이 대단히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과연 그 시기의 나였다면 마을 사람들마저도 쉬쉬한다거나 모두가 회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이 과제를 선택하고 해낼 것인가 스스로 자문자답을 했었는데 부정적인 답변을 외쳤다. 겁이 많은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 자체를 애초에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은 다른 스타일의 핍의 살인 사건 이야기와 깊이 생각할 지점들이 하나하나 모이다 보니 몰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지점의 인상적인 면과 또 다른 한 가지의 생각거리가 있었다. 우선, 인상적인 면은 소설의 구성이었다. 핍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는 내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탐정이나 형사가 조사한 다이어리처럼 인터뷰 내용이 실감나게 실려 있으며, 자신이 조사한 내용의 사진과 도식화 구조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핍이 된 듯한 착각까지 경험했는데 이는 범인을 찾아가는데 몰입도를 높였던 지점이었다.

생각거리는 청소년의 범죄에 대한 문제이다. 주제에서 보다시피 한 여고생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안에서 범죄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청소년의 강간이라든지, 마약 등이 그렇다. 사실 어른들에게도 중범죄 중 하나인데 어린 나이에 이러한 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씁쓸하게 다가왔다. 또한, 이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어른들의 시선은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그런 지점이 핍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단순하게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의 소설보다는 조금 더 크게 와닿았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게 너무 아쉬웠고, 다음으로 출간되는 2편에서는 핍이 어떤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해지는 포인트가 되었다. 당차고 능력 있는 핍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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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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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벗은 모습이 보고 싶소. / p.16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호도 차이지만 전쟁과 아픈 역사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 등의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쟁이라는 것을 피부로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이다 보니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나의 SF 소설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말 그대로 허구의 이야기처럼 신빙성 없게 보일 때도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벌어진 아픈 전쟁들도 그렇게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인 듯하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어떻게든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욱 큰데 이상하게 매체로 보는 것만 거부감과 괴리감을 느낀다. 이는 아마도 현실에 일어난 일과 상상이 가미된 허구의 세계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에는 과장이 된다거나 축소가 되어 더욱 와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편소설이다. 제목만 보고 선택한 책이어서 줄거리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전쟁이나 역사를 다룬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이 작품이 실제로 일어난 전쟁을 주제로 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인지해 읽었다. 또한, 1편이었던 오르부아르와 2편인 화제의 색에 이어 3편으로 나온 작품으로 전편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기에 기대보다는 걱정을 안고 시작했다.

소설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1940년 4월 6일부터 6월 13일까지 비교적 두 달보다 조금 긴 여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루이즈로 교사이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여성이다. 어머니를 잃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파혼까지 당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듯하다. 어느 날, 그런 루이즈에게 이상한 제안을 하는 의사 손님이 나타났다. 그는 그저 보기만 할 테니 벗은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뺨을 내리친다거나 감정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할 텐데 루이즈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은 그의 제안에 응한다. 그리고 벗은 몸을 보여 주었던 그 순간에 제안을 했던 손님이 자살한다.

개인적으로 읽는 내내 모든 인물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여성의 벗은 몸을 보고 싶다는 손님의 제안부터가 그랬다. 그 의사 손님은 왜 루이즈에게 나체를 보여 달라는 부탁을 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소설 속의 인물인 점을 감안하면 독자가 내려야 하는 부분이기에 나름 머리를 굴려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독자로서의 대답은 그저 무응답이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아이를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루이즈의 모습은 하나의 광기를 보는 듯했다. 가질 수 없으면 입양을 하고 싶다는 의견은 상식선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그 이후 루이즈의 행동은 그야말로 수용이 불가능한 범위였다. 읽는 내내 그 지점이 참 혼란스러웠으며, 왜 이렇게 생명의 잉태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의문이 들었다.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에서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고 모성애가 그 해답일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했지만 명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즈의 심리 자체가 어수선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참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사실 이러한 내용을 교과서로만 배우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초반에는 시대적 배경 자체를 당시 시대상을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서사나 이야기들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읽었던 것 같다. 읽으면서 감정적인 공감이나 몰입보다는 조금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피부로 경험했거나 조금 더 가까운 시기의 역사 또는 공간적인 배경이 대한민국이었다면 감정적으로 인물들에게 몰입해 읽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중반에 이르면서 처음과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와 별개로 선호하지 않는 소재이면서 두꺼운 페이지 수를 가진 작품임에도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참혹하면서도 잔인한 전쟁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작품으로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등장 인물의 몰입보다는 시대의 참상이 고스란히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묘하게 가슴이 아팠던 것은 아마도 시대적 배경 자체에 공감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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