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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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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충분하다. / p.185
직장에 근무하면서 생각보다 복 받았다 느꼈던 점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었다. 정책이 좋다거나 인권이 높아서도 아니다. 어려운 언어 중 하나인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물론, 성조를 사용하는 중국어나 베트남어도 어렵기는 하지만 한국어는 진짜 어려운 언어 중 하나라는 사실을 너무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맡았던 업무가 이용인분들의 한국어교육을 담당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문지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출판사 유튜브에서 최신작의 문구를 들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죽하면 메모장에 적어 배경화면으로 저장할 정도였는데 그게 이 작품의 후속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기회에 출판사의 북클럽으로 세 권의 도서를 고를 수 있었기에 기대가 되는 작품으로서 이 작품과 신작, 그리고 다른 작품까지 전부 젊은 작가 장편소설 안에서 선택했다. 보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터라 바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지혁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 강사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다. 첫 수업에서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Are you in peace?"로 적자 수강생들은 바로 웃음을 터트린다. 어떻게 초면에 평화를 빈다는 인사를 하냐는 것이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는 거룩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혁은 거기에서 안녕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느냐고 독자에게 되묻는다. 또한, 지혁은 미국에서 강사 일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오고 있는데 그 안에 담긴 고뇌, 한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한국어 수업과 맞물려 전개된다.
처음에 지혁과 수강생 사이의 오해나 편견, 그리고 수업에 대한 에피소드로 흘러갈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지혁이 가지고 있는 내부의 감정과 생각, 미국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야기들이 중심적으로 나타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는 어디까지나 예상과 벗어나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부분에서의 감정이다. 전체적으로 술술 읽혀졌으며, 중간중간 저자 특유의 유머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흔히 겪는 실수나 말투들은 공감이 되어 재미있었다.
어느 인상 깊은 점을 딱 하나 고르기에는 전체적인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 사실 소설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하나를 뽑는다면 지혁의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생사를 오가셨다는 일 정도일 뿐이다. 하나하나 벌어진 일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사소하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익숙하고, 또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혁의 심정과 생각에 더욱 공감이 되었고, 몰입했고, 인상이 깊었다. 서툴게 구술 평가에 응시하고, 할머니께 배워 중간마다 '인자'라는 말을 붙이는 수강생의 모습은 참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특히, 지혁이 작가가 되고 싶지만 수없이 많은 대회에서 떨어지고, 동생인 지혜는 이를 두고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대학교 교수님이나 뉴욕에서의 교수님은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거나 부럽다는 말을 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그 안에서 느끼는 지혁의 고뇌와 절망이 무엇보다 강하게 와닿았다. 마치 내가 지혁이 되어 상처를 받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용은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웠지만 가장 마음을 울렸던 문장은 작가의 말이었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과 소설은 둘로 갈라져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고 말한다. 이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잘 인식시켜주는 듯했는데 묘하게 머리에 각인이 되었던 문장이었다. 우리 삶도 하나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지점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후에 읽을 <중급 한국어>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