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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ㅣ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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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벗은 모습이 보고 싶소. / p.16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호도 차이지만 전쟁과 아픈 역사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 등의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쟁이라는 것을 피부로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이다 보니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나의 SF 소설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말 그대로 허구의 이야기처럼 신빙성 없게 보일 때도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벌어진 아픈 전쟁들도 그렇게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인 듯하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어떻게든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욱 큰데 이상하게 매체로 보는 것만 거부감과 괴리감을 느낀다. 이는 아마도 현실에 일어난 일과 상상이 가미된 허구의 세계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에는 과장이 된다거나 축소가 되어 더욱 와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편소설이다. 제목만 보고 선택한 책이어서 줄거리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전쟁이나 역사를 다룬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이 작품이 실제로 일어난 전쟁을 주제로 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인지해 읽었다. 또한, 1편이었던 오르부아르와 2편인 화제의 색에 이어 3편으로 나온 작품으로 전편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기에 기대보다는 걱정을 안고 시작했다.
소설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1940년 4월 6일부터 6월 13일까지 비교적 두 달보다 조금 긴 여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루이즈로 교사이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여성이다. 어머니를 잃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파혼까지 당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듯하다. 어느 날, 그런 루이즈에게 이상한 제안을 하는 의사 손님이 나타났다. 그는 그저 보기만 할 테니 벗은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뺨을 내리친다거나 감정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할 텐데 루이즈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은 그의 제안에 응한다. 그리고 벗은 몸을 보여 주었던 그 순간에 제안을 했던 손님이 자살한다.
개인적으로 읽는 내내 모든 인물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여성의 벗은 몸을 보고 싶다는 손님의 제안부터가 그랬다. 그 의사 손님은 왜 루이즈에게 나체를 보여 달라는 부탁을 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소설 속의 인물인 점을 감안하면 독자가 내려야 하는 부분이기에 나름 머리를 굴려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독자로서의 대답은 그저 무응답이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아이를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루이즈의 모습은 하나의 광기를 보는 듯했다. 가질 수 없으면 입양을 하고 싶다는 의견은 상식선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그 이후 루이즈의 행동은 그야말로 수용이 불가능한 범위였다. 읽는 내내 그 지점이 참 혼란스러웠으며, 왜 이렇게 생명의 잉태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의문이 들었다.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에서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고 모성애가 그 해답일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했지만 명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즈의 심리 자체가 어수선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참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사실 이러한 내용을 교과서로만 배우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초반에는 시대적 배경 자체를 당시 시대상을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서사나 이야기들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읽었던 것 같다. 읽으면서 감정적인 공감이나 몰입보다는 조금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피부로 경험했거나 조금 더 가까운 시기의 역사 또는 공간적인 배경이 대한민국이었다면 감정적으로 인물들에게 몰입해 읽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중반에 이르면서 처음과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와 별개로 선호하지 않는 소재이면서 두꺼운 페이지 수를 가진 작품임에도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참혹하면서도 잔인한 전쟁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작품으로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등장 인물의 몰입보다는 시대의 참상이 고스란히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묘하게 가슴이 아팠던 것은 아마도 시대적 배경 자체에 공감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