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 한 언어심리학자의 자아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
줄리 세디비 지음, 김혜림 옮김 / 지와사랑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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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허공에 뜬 기분이 들었다. / p.12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다른 국가에 정착할 일 없이 살다 보니 언어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일이 있다면 그 지역 방언의 적응이라든지 조금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이사도 거의 같은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 내로만 다니다 보니 비교적 언어적인 어려움은 없이 살아온 축에 속하다.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 이상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줄리 세디비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언어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 왜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두 번째로 다녔던 직장에서 생각을 깼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많이 언급했던 것처럼 다문화가정과 결혼이민자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었는데 그때 이중언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 나라의 언어를 자녀가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단순하게 언어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또는 소통 그 이상으로 큰 의미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그때 생각이 났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체코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이주민 가정이다. 아버지께서는 체코어를 자녀들이 사용하기를 바라셨으나 저자를 비롯한 자녀들은 영어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온 듯하다. 그렇다 보니 체코어는 문맥에 맞지 않게 드문드문 사용할 정도였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 언어를 상실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언어심리학자인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이중언어의 중요성, 그리고 이중언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오는 책이다.

처음에는 저자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보니 술술 읽었지만 불어나 체코어 등 조금은 낯선 언어들에 대한 문법과 단어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 속도가 더디게 읽혀졌다. 그나마 영어는 학교를 다닐 때 오래 배웠기에 어느 정도 읽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수능을 위한 공부였을 뿐이어서 그 부분들은 그냥 머릿속에 담는 느낌으로만 책장을 넘겼다. 전체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주제이다 보니 읽는 것이 어려움은 있었으나 몰랐던 부분이어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지점이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한국어의 등장이다. 다른 언어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중간에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가 한 문단 정도 나오는 것 같다. 주된 내용은 언어에 관습이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예시가 한국어였던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는 위계와 공손함에 대한 집착이 언어의 뼛속까지 깊이 자리잡았다고 표현했다. 상대의 위치나 권위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높임말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언어적인 표현이 세분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했던 언어인데 다른 나라에서 본 생각을 이렇게 활자로 보는 게 새로웠다.

두 번째는 고유 모국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단어이다. 책에서는 예시로 체코어인 '리토스트'라는 단어를 예시로 든다. 영어로 말하면 Regret, 한국어로 말하면 유감이라는 단어인데 체코 국적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단순하게 유감이라는 단어로는 리토스트를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을 하나의 스토리로 설명해 주었는데 아무리 읽어도 그 감정이 와닿지 않았다는 점은 의아했다. 아마도 체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밖에도 저자가 체코에 있는 삼촌과 친척을 만났을 때의 그 감정, 캐나다에서는 매년 이중언어를 위한 세금이 투여되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 않다는 점 등의 이야기도 꽤 기억에 오래 남았다.

서두에 언급했던 개인적으로 겪었던 이중언어는 결혼이민자라는 한 개인과 대한민국 국적의 자녀 관계에서 이야기가 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온전히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이중언어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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