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Q대학교 입학처입니다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제훈 지음 / &(앤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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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이 바쁠 수도 있다고. / p.15

철이 없던 시기에는 막연하게 부러운 직업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교직원이었다. 보통 직장에는 없는 방학을 가진 직업이 있다니 대학교에 간다면 그런 직업을 삼고 싶다는 나름의 장래희망이 있었다. 당시에는 교직원이 곧 선생님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던 때이기에 자연스럽게 선생님이었다. 그야말로 직업의 애로사항에 대해 잘 모르던 철부지 유치원생 때 이야기이다.

이후 성장하고 머리가 크면 클수록 부러움보다는 질투가 생겼던 것 같다. 교직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부 불친절한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쏟은 등록금이 아깝다는 말로 화를 표출하기도 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놀고 먹는 신의 직장'이라는 별칭을 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든다. 어느 직장이든 놀고 먹는 직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일부 성실하지 못한 직장인의 행동에 대한 편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권제훈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처음에는 대학교 라이프를 다룬 소설인 줄 알았다. '입학처'보다 '대학교'라는 장소가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당연하게 대학생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신입생들의 파란만장한 대학교 적응 라이프 정도라고 해야 할까. 기억을 소환하는 느낌으로 고른 책이었다. 이미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고 있지만 표지 자체가 주는 봄의 산뜻함이 느껴져서 기대를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줄거리를 보지 못한 실수였다. 대학교 이야기이기는 하나, 학생의 입장이 아닌 직장인의 입장의 대학교 이야기였다.

소설은 Q대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입학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말이 많은 입학처장 한덕수 교수는 직원들에게 입시는 전쟁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오현종 입학팀장은 점심 시간마다 부하 직원들과 함께 주 2회 이상 알탕을 드시는 매니아였다. 입학처에서의 사소한 이야기부터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이야기까지 장편 소설이기는 하지만 챕터마다 입학처 인물의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단편 소설이라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학부모들의 학구열이었다. 소설에서 입학처 직원들은 학부모님들의 문의 전화를 받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흡사 연중무휴 콜센터처럼 보였다. 자녀들의 성적을 알려 주면서 원하는 과에 입학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부터 불합격한 이유를 묻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온갖 부모님의 모습들을 읽으면서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합격 여부는 운명이나 신만 알 것이고, 변수가 너무 많다. 사람이 무조건 된다고 확답을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대학을 잘 보내고 싶은 부모님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너무 과했다. 의과대학을 보내고 싶어 입학사정관은 들들 볶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이 명치를 타고 올라오기도 했었다. 

두 번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였다. 입학처에는 처장, 팀장,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주임 등의 정규직과 책임과 선임으로 나뉘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있었다. 특히, 조규학이라는 인물에게 가장 애정이 갔다. 조규학이 계약직 신분으로 다른 대학교에서 근무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느꼈을 직장에 대한 불안정감이 느껴졌다. 물론, Q대학교에서 2년을 채운 이후 무기계약직이 되면서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조규학이 맞선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직장의 불안정감에서 오는 것도 크게 작용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불확실한 위치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모래성에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되었다.

그 외에도 맹모삼천지교를 능가하는 장대현 차장의 딸 교육에 관한 고민, 서류 심사와 실적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직원들 등 하나하나 소소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대학교 입학처 하면 캠퍼스의 벚꽃들이 흩날리는 장소이자 청춘의 낭만이 함께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상상될 텐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혹독한 일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겨울과 같은 직장이었다. 과거의 나라면 대학교 교직원이라면 꿀의 직장이라면서 시기 어린 질투를 했었겠지만, 소설을 덮고 나니 신의 직장이라고 해도 Q대학교 입학처라면 지옥에 일하는 게 낫겠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소설에서는 큰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눈치 없는 상사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먹는 것부터 귀에서 피가 날 때까지 상사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듣는 것, 서류 작업으로 눈이 충혈될 정도로 야근하게 되는 것, 고객님들께 사랑이 가득 담긴 민원을 듣는 것까지 무대와 등장 인물만 다를 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또한 현재 겪고 있는 소소하고도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마치 일상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마 직장이라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지옥 무대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게 소소하고도 작은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스릴이 넘치는 쫄깃함이 아닌 일상에서 겪을 법한 소소한 이야기들로 직장인들에게 주는 위안이 곧 이 소설의 매력이었다. 잔잔하면서도 우당탕탕 돌아가는 Q대학교의 입학처를 보면서 "너희들도 별 수 없는 직장인이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들었던, 같은 직장인의 마음으로 인물들을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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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도 분명 고양이가 있을 거예요 - 25년간 부검을 하며 깨달은 죽음을 이해하고 삶을 사랑하는 법
프로일라인 토트 지음, 이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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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싶었다. / p.203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고 있는 순간을 체감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행사나 부고를 들을 때 실감한다. 친구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지인의 결혼식 초대장을 받으면 '내가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기는 했다.'라는 생각이, 친구의 부모님이나 직장 동료 부모님의 부고를 들으면 '참 시간이 유한하다.'라는 무거운 마음이 든다. 결혼식은 기꺼이 축하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지만 아직까지 장례식에 참석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마음이 무겁다.

이 책은 프로일라인 토트의 에세이이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왕왕 읽는 편인데 부검 전문가라는 직업 자체가 조금 생소했다. 오히려 범죄 장면에 등장하는 법의학이 더욱 익숙할 정도이다.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 새로운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러한 이유로 읽게 되었다.

저자는 독일 뮌헨에서 부검 어시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애도 상담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애도 상담가로서 유가족과 상담하는 내용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흔히 '상담'이라는 이름의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심리상담을 받는 느낌은 아닌 듯하다. 주된 내용은 부검 전문가로서 일하는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이다. 어떻게 부검 어시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일하고 있을 때의 생각들, 그동안 있었던 일들뿐 아니라 가족과 관계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공감이 되면서도 조금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었다.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부검 어시스트에 대한 생각과 저자의 자세였다. 부검 어시스트는 사망의 원인이나 특이사항 등을 확인하고, 유가족에게 관련 사항을 안내하며, 장의사에게 시신을 인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 이 직업을 들었을 때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에는 흔하지 않는 직업명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법의학인 것 같지만 부검 어시스트는 의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부검을 하는 것은 범죄와 연관된 상황을 많이 보고 들어서 더욱 신기했던 것 같다. 독일의 경우에는 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정한 시간 동안은 장례를 치루지 못하며, 또 일정한 시간 안에 장례를 해야 되는 엄격한 법이 있다. 그래서 부검이 적어도 대한민국보다는 흔한 상황인 듯하다. 그랬기 때문에 부검 어시스트라는 직업이 생겼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 직업에 대한 저자의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부검 어시스트를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죽음과 시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자연스럽게 부검 어시스트가 되었으며, 일로서 하면서도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조금 더 많은 루틴이 생기고, 인원 감축으로 혼자 루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그 안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에 대한 힘들었던 점을 토로하거나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부검을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외적인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일을 하면서 신중을 기해야 되는 상황 등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일이 흔하지 않다 보니 프로페셔널함과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었다.

두 번째는 저자의 가족에 대한 생각이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생각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독자의 입장로서 저자는 외조부모님과 외외조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부검 어시스트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외외조부모님의 죽음으로 시작이 되었던 것이고, 그렇게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눈 그분들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큰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철이 없는 젊은 시절에는 클럽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임종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당시에는 친구가 더 좋을 시기이니 저자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러한 가정 환경이 있었기에 유가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돌아가신 외조부모님과 조부의 상황이 겹쳐서 떠올랐다.

세 번째는 장례에 대한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이었다. 책에서 저자는 아이들이 돌아가신 분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조금씩 펼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다는 내용이다. 사실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부모님께서는 트라우마가 될 것을 염려해 장례식에 데리고 가지 않으셨다. 처음으로 간 장례식이 이십 대 중반이었고, 사회에 나와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참석했었다. 아무래도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움이 컸다. 또한,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외가 친척분의 집에서 부고 소식을 들었다. 아직도 외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게 아직까지 마음에 남는다.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물론, 시신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는 큰 트라우마이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의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죄책감이 이 아이의 평생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깊이 생각할 부분이다.

생소한 직업이면서 범죄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부검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기에 호기심과 함께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경험하거나 보고 느낀 바로는 시신이라고 하면 차가움이 연상이 되는데 읽으면서 저자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함이 떠오르는 이야기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도 따스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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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후에 죽는다
사카키바야시 메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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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 여명을 소비할 단계가 된 것이다. / p.24

사실 그렇게 상상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기에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없는 부분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소설을 읽다 보면 불현듯이 스치고 지나가는 상상 하나가 있다. 과연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반응을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생각이다. 시한부이지만 개월 단위가 아닌 몇 분 뒤에 당신은 죽을 예정이니 할 수 있는 것을 미리 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

요즈음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되돌아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닿게 된다. 아무래도 추리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익숙하게 느껴진 설정이기는 하지만 범죄를 풀어가는 재미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초점을 맞추어서 보다 보면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추리 능력이 부족한 초보 독서가의 즐기는 노하우이다. 

이 책은 사카키바야시 메이의 단편 추리 소설집이다. 추리 하면 자연스럽게 일본이 떠오르는 편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 소설을 쭉 나열하면 아마도 일본 작가의 소설이 2/3를 차지할 정도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나름 만족도가 높았다. 소름 끼치는 결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고 가는 내용들도 좋았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일본 추리 소설은 따지지 않는 편인데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이었지만 읽게 된 것은 일본 추리 소설의 신뢰와 기대가 아니었을까 한다.

크게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소설인 <15초>는 주인공인 약사가 살해당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죽는 순간에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 때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주인공에게 15초의 시간을 준다고 한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그를 알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 단편을 보면서 보이는 것만으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게 곧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는데 뭔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 소설인 <이다음 충격적인 결말이>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한 남매가 등장한다. 남동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찰나의 순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드라마의 결말이 나왔고,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게 남동생의 의문을 해소해 주기 위해 누나는 하나하나 드라마의 결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남동생이 가진 의문을 보면서 예전 결말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던 많은 드라마들이 스쳐지나갔다. 시청자와 라이브로 진행한다는 드라마 포맷 자체가 신선했다. 

세 번째 소설인 <불면증>은 일정한 시간에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꿈을 꾸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꿈에서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어머니를 마주하게 되고, 찰나의 시간에 교통사고가 난다. 자신조차 모르는 말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여자 주인공은 심인성 난청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결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어머니만 의지해 살아가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작품이었고, 주인공의 마음에 가장 크게 공감이 되었다. 아마 한 번만 끔찍한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해도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텐데 매번 교통사고를 마주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어땠을까. 마지막 반전은 놀라게 했고, 마음은 아팠다.

네 번째 소설인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우리의 머리 없는 살인 사건>은 세 친구의 이야기이다. 행사가 벌어지고 있던 중 한 소년이 불에 타서 죽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머리가 없기 때문에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다 인물의 시점이 바뀌면서 머리만 돌아다니던 한 소년이 등장한다. 마을에서의 15 초 안에 몸을 공유하면 살아남는 특별한 설정으로 세 친구는 생명을 지키면서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두 번째 소설이 내용의 포맷 하나가 신선했다면 전체적으로 줄거리가 흥미롭게 느껴졌던 소설은 이 소설이었다. 머리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사람에 따라 괴기하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읽는 내내 뭔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새로운 감정이 지배했다. 거기에 세 친구의 우정과 마을 사람들의 의리는 덤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살인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 15 초 사이에 어떠한 생각을 할 것인지 묻는다면 아마 급박한 상황에서 그냥 허비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힘과 시간을 사용해서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조금 난색을 표했을 것 같다. 네 편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15 초는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그동안 찰나의 순간으로만 생각했던 15 초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 또 누군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결말을 직시하게 되고, 또 다른 친구들은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우정을 보이니 말이다. 책을 막상 덮고 보니 그렇게까지 사소하게 느낄 시간이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움이 가득한 소설집이었다. 추리 소설의 초수이기는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소름이 끼친 적은 있어도 소재부터 시선을 잡아 끌었던 소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체를 관통하는 '15 초'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면서도 나름의 공통점을 주고, 각각 소설만 보더라도 치밀하고 납득이 가능한 소재와 전개, 작가의 상상력으로 펼쳐진 결말의 세계까지 대단히 만족감이 높았던 소설이었다. 

처음 만든 작품이 이렇게까지 극찬을 받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매력적인 추리 소설이라면 앞으로도 믿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이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게 되었으며,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앞뒤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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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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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쇼핑을 마치고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다. / p.8

어렸을 때에는 소설보다는 비문학을 더욱 좋아했었다. 그 중에서도 역사 이야기를 참 좋아했었던 것 같다. 물건의 역사 이야기를 보면 상식이 조금씩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경시하게 되었던 이유이기도 한데 요즈음은 소설을 더욱 많이 보고 있다 보니 이런 상식보다는 감정의 확장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피에르 싱가라벨루와 실뱅 브네르의 세계사에 관한 책이다. 예전의 향수를 자극하는 책이어서 골랐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과거에 읽었던 내용도 잊었다. 흔하게 사용하는 물건들의 역사를 다시 배우고 머리에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책이어서 나름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샴푸부터 시작해 혁명이 되었던 전구까지 총 77 가지의 물건에 대한 역사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거기에 나름 사용처에 대한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어서 궁금한 물건을 우선적으로 골라 읽는 재미도 있었다. 읽으면서 두 가지에 크게 놀랐고, 또 인상 깊었다. 하나는 의외인 부분이었고, 또 하나는 약간 부정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아시아에서의 이야기가 많았다는 점이다. 보통 알고 있는 물건들의 역사를 찾으면 대부분 유럽이거나 미국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식민지 시대 또는 그 전부터 단순한 일화를 계기로 생겨난 물건이라고 알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전구도 많은 사람들의 상식처럼 미국의 에디슨이었을 것이고, 콜라 역시도 미국의 코카콜라가 원조라는 것이다. 그런데 샴푸나 분재 등이 인도와 일본 등 동양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쪼리로 불리는 플립플롭이 일본이었다는 것은 의외였다.

두 번째는 서양의 독특한 관념들이다. 향수의 유래가 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통해 알고 있었다. 잘 씻지 않았던 당시 사회에서 체향을 가리려는 목적이어서 나름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느낌을 비데 편으로부터 다시 느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종교적인 관념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위생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외에도 탐폰도 같은 맥락으로 위생보다는 정절을 더욱 중요시했던 관념이 조금은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 외에도 코카콜라의 코카가 알고 있는 마약이었다는 것은 새로웠고, 가시철사가 방어나 보호의 목적보다는 가로막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흔히 알고 있는 물건뿐 아니라 프리메이슨 앞치마를 비롯해 쉽게 듣거나 볼 수 없었던 물건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미 알고 있었던 물건들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새로운 물건들은 상식을 쌓게 했다.

성인이었던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약간 은밀한 물건들의 이야기가 있어서 걱정이 되기는 한다. 그래도 뭔가 아는 척을 한다거나 지식을 쌓고 싶을 때 읽으면 분명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 만물관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아마 박물관이라고 했다면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을 텐데 마치 보부상이나 세상 만물처럼 누군가는 잡동사니처럼 보였을 물건들의 역사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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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조제프 쇼바네크 지음, 이정은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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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놀랍다. / p.16

원래 전공의 특성상 친숙한 단어이기는 하지만 최근 인기 드라마의 영향으로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심지어 같은 전공이 아닌 다른 지인들로부터는 해당 장애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동안 배우기는 했지만 그렇게 깊이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넘기는 편이다. 아무래도 학문적으로만 배웠던 사람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제프 쇼바네크의 에세이이다. 장애와 관련된 책이라고 하면 따지는 것 없이 우선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잡게 된 책이다. 그동안 지체장애나 정신장애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은 가끔 읽었지만 자폐스펙트럼을 주제로 한 에세이는 처음 보는 편이기에 더욱 기대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에는 말을 할 줄 몰랐고,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지적장애로 의심을 받았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였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명문 대학에 들어갔으며, 독일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많았지만 크게 세 가지 정도가 가장 인상 깊었다. 첫 번째로 자폐증으로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학교에서 배울 때부터 이야기를 나누면 자폐증보다는 자폐장애로 말하게 된다. 요즈음은 분류가 바뀌면서부터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더욱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폐장애라는 용어보다는 자폐증으로 표현을 하는데 나름의 이유도 추측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자폐증에 대한 저자의 태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장애로 표현을 하고 있기에 뭔가 편견을 가지고 본다. 나 역시도 상동행동이나 반향어 등 자폐장애에 대한 특징을 배웠기 때문에 그걸 위주로 보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는 자폐인은 그저 키와 피부색 등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용어가 말해 주듯이 자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괄적으로 누구나 눈에 띄는 상동행동을 보인다거나 심한 반향어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세 번째는 자폐증에 대한 저자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부모의 경우 더욱 큰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일화를 보면 저자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듯하다. 혼자 독일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학교와 딜을 해서 저자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기도 했다. 드라마를 봤던 지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드라마이기에 가능하다는 말이었는데 읽으면서 저자가 했던 많은 일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특히, 일화 중에서 저자가 했던 일들의 원인을 자폐증으로 돌리는 상황에서 저자의 부모님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말하라는 대책을 세웠다. 이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저자는 독자들이 내용을 보고 자신을 자폐증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것 또한 편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보면서 보통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자폐증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이야기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는 저자의 일화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책을 덮고 나니 제목 그대로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마 저자의 모습들 중에서 하나도 겹치지 않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누군가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볼 것이며, 다른 또 누군가는 지능이 모자란 장애인으로 평가할 것이다. 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심한 정도의 장애가 아니라면 자폐증이라는 것 또한 하나의 편견이자 틀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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