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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Q대학교 입학처입니다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ㅣ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제훈 지음 / &(앤드)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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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이 바쁠 수도 있다고. / p.15
철이 없던 시기에는 막연하게 부러운 직업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교직원이었다. 보통 직장에는 없는 방학을 가진 직업이 있다니 대학교에 간다면 그런 직업을 삼고 싶다는 나름의 장래희망이 있었다. 당시에는 교직원이 곧 선생님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던 때이기에 자연스럽게 선생님이었다. 그야말로 직업의 애로사항에 대해 잘 모르던 철부지 유치원생 때 이야기이다.
이후 성장하고 머리가 크면 클수록 부러움보다는 질투가 생겼던 것 같다. 교직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부 불친절한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쏟은 등록금이 아깝다는 말로 화를 표출하기도 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놀고 먹는 신의 직장'이라는 별칭을 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든다. 어느 직장이든 놀고 먹는 직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일부 성실하지 못한 직장인의 행동에 대한 편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권제훈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처음에는 대학교 라이프를 다룬 소설인 줄 알았다. '입학처'보다 '대학교'라는 장소가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당연하게 대학생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신입생들의 파란만장한 대학교 적응 라이프 정도라고 해야 할까. 기억을 소환하는 느낌으로 고른 책이었다. 이미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고 있지만 표지 자체가 주는 봄의 산뜻함이 느껴져서 기대를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줄거리를 보지 못한 실수였다. 대학교 이야기이기는 하나, 학생의 입장이 아닌 직장인의 입장의 대학교 이야기였다.
소설은 Q대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입학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말이 많은 입학처장 한덕수 교수는 직원들에게 입시는 전쟁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오현종 입학팀장은 점심 시간마다 부하 직원들과 함께 주 2회 이상 알탕을 드시는 매니아였다. 입학처에서의 사소한 이야기부터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이야기까지 장편 소설이기는 하지만 챕터마다 입학처 인물의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단편 소설이라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학부모들의 학구열이었다. 소설에서 입학처 직원들은 학부모님들의 문의 전화를 받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흡사 연중무휴 콜센터처럼 보였다. 자녀들의 성적을 알려 주면서 원하는 과에 입학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부터 불합격한 이유를 묻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온갖 부모님의 모습들을 읽으면서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합격 여부는 운명이나 신만 알 것이고, 변수가 너무 많다. 사람이 무조건 된다고 확답을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대학을 잘 보내고 싶은 부모님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너무 과했다. 의과대학을 보내고 싶어 입학사정관은 들들 볶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이 명치를 타고 올라오기도 했었다.
두 번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였다. 입학처에는 처장, 팀장,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주임 등의 정규직과 책임과 선임으로 나뉘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있었다. 특히, 조규학이라는 인물에게 가장 애정이 갔다. 조규학이 계약직 신분으로 다른 대학교에서 근무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느꼈을 직장에 대한 불안정감이 느껴졌다. 물론, Q대학교에서 2년을 채운 이후 무기계약직이 되면서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조규학이 맞선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직장의 불안정감에서 오는 것도 크게 작용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불확실한 위치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모래성에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되었다.
그 외에도 맹모삼천지교를 능가하는 장대현 차장의 딸 교육에 관한 고민, 서류 심사와 실적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직원들 등 하나하나 소소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대학교 입학처 하면 캠퍼스의 벚꽃들이 흩날리는 장소이자 청춘의 낭만이 함께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상상될 텐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혹독한 일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겨울과 같은 직장이었다. 과거의 나라면 대학교 교직원이라면 꿀의 직장이라면서 시기 어린 질투를 했었겠지만, 소설을 덮고 나니 신의 직장이라고 해도 Q대학교 입학처라면 지옥에 일하는 게 낫겠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소설에서는 큰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눈치 없는 상사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먹는 것부터 귀에서 피가 날 때까지 상사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듣는 것, 서류 작업으로 눈이 충혈될 정도로 야근하게 되는 것, 고객님들께 사랑이 가득 담긴 민원을 듣는 것까지 무대와 등장 인물만 다를 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또한 현재 겪고 있는 소소하고도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마치 일상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마 직장이라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지옥 무대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게 소소하고도 작은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스릴이 넘치는 쫄깃함이 아닌 일상에서 겪을 법한 소소한 이야기들로 직장인들에게 주는 위안이 곧 이 소설의 매력이었다. 잔잔하면서도 우당탕탕 돌아가는 Q대학교의 입학처를 보면서 "너희들도 별 수 없는 직장인이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들었던, 같은 직장인의 마음으로 인물들을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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