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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도 분명 고양이가 있을 거예요 - 25년간 부검을 하며 깨달은 죽음을 이해하고 삶을 사랑하는 법
프로일라인 토트 지음, 이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나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싶었다. / p.203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고 있는 순간을 체감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행사나 부고를 들을 때 실감한다. 친구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지인의 결혼식 초대장을 받으면 '내가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기는 했다.'라는 생각이, 친구의 부모님이나 직장 동료 부모님의 부고를 들으면 '참 시간이 유한하다.'라는 무거운 마음이 든다. 결혼식은 기꺼이 축하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지만 아직까지 장례식에 참석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마음이 무겁다.
이 책은 프로일라인 토트의 에세이이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왕왕 읽는 편인데 부검 전문가라는 직업 자체가 조금 생소했다. 오히려 범죄 장면에 등장하는 법의학이 더욱 익숙할 정도이다.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 새로운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러한 이유로 읽게 되었다.
저자는 독일 뮌헨에서 부검 어시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애도 상담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애도 상담가로서 유가족과 상담하는 내용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흔히 '상담'이라는 이름의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심리상담을 받는 느낌은 아닌 듯하다. 주된 내용은 부검 전문가로서 일하는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이다. 어떻게 부검 어시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일하고 있을 때의 생각들, 그동안 있었던 일들뿐 아니라 가족과 관계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공감이 되면서도 조금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었다.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부검 어시스트에 대한 생각과 저자의 자세였다. 부검 어시스트는 사망의 원인이나 특이사항 등을 확인하고, 유가족에게 관련 사항을 안내하며, 장의사에게 시신을 인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 이 직업을 들었을 때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에는 흔하지 않는 직업명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법의학인 것 같지만 부검 어시스트는 의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부검을 하는 것은 범죄와 연관된 상황을 많이 보고 들어서 더욱 신기했던 것 같다. 독일의 경우에는 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정한 시간 동안은 장례를 치루지 못하며, 또 일정한 시간 안에 장례를 해야 되는 엄격한 법이 있다. 그래서 부검이 적어도 대한민국보다는 흔한 상황인 듯하다. 그랬기 때문에 부검 어시스트라는 직업이 생겼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 직업에 대한 저자의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부검 어시스트를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죽음과 시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자연스럽게 부검 어시스트가 되었으며, 일로서 하면서도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조금 더 많은 루틴이 생기고, 인원 감축으로 혼자 루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그 안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에 대한 힘들었던 점을 토로하거나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부검을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외적인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일을 하면서 신중을 기해야 되는 상황 등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일이 흔하지 않다 보니 프로페셔널함과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었다.
두 번째는 저자의 가족에 대한 생각이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생각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독자의 입장로서 저자는 외조부모님과 외외조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부검 어시스트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외외조부모님의 죽음으로 시작이 되었던 것이고, 그렇게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눈 그분들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큰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철이 없는 젊은 시절에는 클럽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임종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당시에는 친구가 더 좋을 시기이니 저자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러한 가정 환경이 있었기에 유가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돌아가신 외조부모님과 조부의 상황이 겹쳐서 떠올랐다.
세 번째는 장례에 대한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이었다. 책에서 저자는 아이들이 돌아가신 분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조금씩 펼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다는 내용이다. 사실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부모님께서는 트라우마가 될 것을 염려해 장례식에 데리고 가지 않으셨다. 처음으로 간 장례식이 이십 대 중반이었고, 사회에 나와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참석했었다. 아무래도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움이 컸다. 또한,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외가 친척분의 집에서 부고 소식을 들었다. 아직도 외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게 아직까지 마음에 남는다.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물론, 시신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는 큰 트라우마이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의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죄책감이 이 아이의 평생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깊이 생각할 부분이다.
생소한 직업이면서 범죄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부검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기에 호기심과 함께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경험하거나 보고 느낀 바로는 시신이라고 하면 차가움이 연상이 되는데 읽으면서 저자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함이 떠오르는 이야기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도 따스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