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후에 죽는다
사카키바야시 메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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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 여명을 소비할 단계가 된 것이다. / p.24

사실 그렇게 상상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기에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없는 부분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소설을 읽다 보면 불현듯이 스치고 지나가는 상상 하나가 있다. 과연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반응을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생각이다. 시한부이지만 개월 단위가 아닌 몇 분 뒤에 당신은 죽을 예정이니 할 수 있는 것을 미리 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

요즈음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되돌아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닿게 된다. 아무래도 추리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익숙하게 느껴진 설정이기는 하지만 범죄를 풀어가는 재미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초점을 맞추어서 보다 보면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추리 능력이 부족한 초보 독서가의 즐기는 노하우이다. 

이 책은 사카키바야시 메이의 단편 추리 소설집이다. 추리 하면 자연스럽게 일본이 떠오르는 편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 소설을 쭉 나열하면 아마도 일본 작가의 소설이 2/3를 차지할 정도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나름 만족도가 높았다. 소름 끼치는 결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고 가는 내용들도 좋았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일본 추리 소설은 따지지 않는 편인데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이었지만 읽게 된 것은 일본 추리 소설의 신뢰와 기대가 아니었을까 한다.

크게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소설인 <15초>는 주인공인 약사가 살해당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죽는 순간에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 때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주인공에게 15초의 시간을 준다고 한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그를 알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 단편을 보면서 보이는 것만으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게 곧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는데 뭔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 소설인 <이다음 충격적인 결말이>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한 남매가 등장한다. 남동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찰나의 순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드라마의 결말이 나왔고,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게 남동생의 의문을 해소해 주기 위해 누나는 하나하나 드라마의 결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남동생이 가진 의문을 보면서 예전 결말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던 많은 드라마들이 스쳐지나갔다. 시청자와 라이브로 진행한다는 드라마 포맷 자체가 신선했다. 

세 번째 소설인 <불면증>은 일정한 시간에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꿈을 꾸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꿈에서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어머니를 마주하게 되고, 찰나의 시간에 교통사고가 난다. 자신조차 모르는 말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여자 주인공은 심인성 난청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결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어머니만 의지해 살아가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작품이었고, 주인공의 마음에 가장 크게 공감이 되었다. 아마 한 번만 끔찍한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해도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텐데 매번 교통사고를 마주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어땠을까. 마지막 반전은 놀라게 했고, 마음은 아팠다.

네 번째 소설인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우리의 머리 없는 살인 사건>은 세 친구의 이야기이다. 행사가 벌어지고 있던 중 한 소년이 불에 타서 죽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머리가 없기 때문에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다 인물의 시점이 바뀌면서 머리만 돌아다니던 한 소년이 등장한다. 마을에서의 15 초 안에 몸을 공유하면 살아남는 특별한 설정으로 세 친구는 생명을 지키면서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두 번째 소설이 내용의 포맷 하나가 신선했다면 전체적으로 줄거리가 흥미롭게 느껴졌던 소설은 이 소설이었다. 머리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사람에 따라 괴기하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읽는 내내 뭔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새로운 감정이 지배했다. 거기에 세 친구의 우정과 마을 사람들의 의리는 덤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살인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 15 초 사이에 어떠한 생각을 할 것인지 묻는다면 아마 급박한 상황에서 그냥 허비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힘과 시간을 사용해서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조금 난색을 표했을 것 같다. 네 편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15 초는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그동안 찰나의 순간으로만 생각했던 15 초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 또 누군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결말을 직시하게 되고, 또 다른 친구들은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우정을 보이니 말이다. 책을 막상 덮고 보니 그렇게까지 사소하게 느낄 시간이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움이 가득한 소설집이었다. 추리 소설의 초수이기는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소름이 끼친 적은 있어도 소재부터 시선을 잡아 끌었던 소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체를 관통하는 '15 초'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면서도 나름의 공통점을 주고, 각각 소설만 보더라도 치밀하고 납득이 가능한 소재와 전개, 작가의 상상력으로 펼쳐진 결말의 세계까지 대단히 만족감이 높았던 소설이었다. 

처음 만든 작품이 이렇게까지 극찬을 받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매력적인 추리 소설이라면 앞으로도 믿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이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게 되었으며,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앞뒤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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