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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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여성의 성적 태도와 경향이 오늘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깊은 자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무의식의 발견 이전에 충동과 억압과 같은 정신의 원형을 통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지 못한 신선함의 충격을 선사하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가면 뒤에서 ; 또는 여자의 능력」이라는 중편소설과, 3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환각제 해시시의 복용을 통한 억제된 무의식의 해방으로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는 단편,「위험한 놀이」를 제외하고는 이미 시작된 여성들의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 중심의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의 탈출과 그 혼란이란 주제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낭만적 사랑’이라고 명명한 여성들의 탈가부장적 사랑으로서의 결혼관을 떠올리게 되는데, 남성의 권위에 종속된 수동적 여성상으로부터 자기 의지라는 적극적 선택으로서의 사랑과 이를 토대로 한 결합으로의 진화라는 여성의 근본적 지위의 변화를 읽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으로 작가의 시대적 통찰력 운운하는 것은 경망스럽기 까지 할 것이다. 정작 놀라운 것은 단편 「수수께끼」에 등장하는 남장 여자인 ‘노엘’ 이자 ‘모니카’의 섹슈얼리티의 현대성이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이분법을 넘어 성적 다양성의 사회로 나아가는 경계가 흐릿해지는 오늘의 성적 경향에 이르며, 번식의 책무를 벗어난 현대의 섹슈얼리티, 당대로서는 급진적이랄 수 있는 여성의 성적 해방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 소설집은 사랑, 섹슈얼리티, 결혼이란 언어를 통해 성(性)으로서의 여성을 탈피하고 이들에 균형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편 「가면 뒤에서 ; 또는 여자의 능력」은 가정교사 ‘진 뮤어’가 코번트리라는 귀족가문에 입주하여 신분과 부의 상승을 위해 벌이는 사랑의 권모술수를 스토리로 하고 있다. 가난한 젊은 여성의 계급도약을 위해서는 혼인이 최고의 수단이다. 진 뮤어는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 철저한 이중의 얼굴로 위장하여 코번트리 가문의 계승자인 장남 제랄드와 차남 네드를 철저히 유린한다. 한편 제랄드와의 혼인을 위해 여전히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물러있는 루시아라는 여성에게 보내는 진 뮤어의 메시지는 냉혹하다. 남성들이란 에피소드적이고 열정적인 자기중심적 사랑을 할 줄 밖에 모르는 족속이라는 것이다. 봐라! 제랄드는 나에게 빠져있지 않는가! 그러나 진 뮤어는 코번트리가의 또 다른 귀족인 제랄드의 삼촌과 은밀한 결혼을 성사시킨다. 더 이상 열정이나 남성적 권위에 종속되는 여성의 삶이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편 「어둠 속의 속삭임」에 이르면 상속녀인 ‘시빌’이라는 소녀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삼촌의 강압적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고통스런 감금과 탈출의 서사를 통해 전통적인 남성 권위와의 혹독한 투쟁을 은유하고 있다. 나아가서 단편 「수수께끼」는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남장을 한 여성 ‘노엘(모니카)’의 이면에 있는 사랑의 진면목 읽기에 실패한 필경사 ‘클라이드’로부터 전통적인 섹슈얼리티에 머물러 있는 남성의 관념과 진화된 여성의 그것과의 간극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중요한 시사(示唆)를 던져준다. 여전히 전통적인 남성적 권위의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진화된 성적 태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음으로 인한 갈등, 폭증하는 이혼의 실상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해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에게만 이 갈등의 책임을 물을 수만은 없다. 성의 번식으로부터의 자유가 도래한 현대사회가 여성의 성적 자유와 섹슈얼리티의 다양화는 물론 경제적 자유까지 부여했다고 해서 누천 년 인류 역사이래 남성의 원형에 새겨진 본성을 하루아침에 벗어던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오랜 진화의 산물로서 새겨진 본능과 현대성의 괴리를 보이는 무수한 인간적 양상을 부인하는 것처럼 무지한 이해가 될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의 이러한 후진성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위험한 놀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나 칼 융의 아니마(아니무스)를 연상케 하는 선도적 작품이다. 또한 위선으로 포장된 사랑의 은폐가 환각제를 빌어 그 포장을 걷어냄으로서 진실을 드러내게 한다는 것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 자신감에 대한 발현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19세기의 여성 작가로부터 여성의 섹슈얼리티 변천, 그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은 기대치 못한 즐거움을 준다. 남성들이여! 여성은 19세기부터 무려 2세기 이상을 충동과 열정, 권력으로서의 성이 아니라 친밀감과 신뢰와 즐거움으로서의 성으로 진화했음을 알아야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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