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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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임을...”

 

이 작품을 읽다보면 인간 정신의 교만성과 권력 장악의 역사로서의 인간사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된다. 인간의 지식과 권능이란 것이 하잘것없음과 능멸스러움에 터잡은 미망(迷妄)에 불과한 것임을.

소설은 중세 이탈리아 북부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찬란한 지성과 겸허의 미덕을 장착하고 가히 탐욕스럽게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하게 한다. 독서의 쾌락, 읽는 즐거움의 지고함을 또 어디서 경험할 수 있을까? 스러져가는 소설 속 수도사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서책(書冊)이 이만할까? 불온하면서도 성스럽고, 악마적이면서도 신성한,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호성의 세계에 흠뻑 취하게 된다.

 

소설은 수도사 아드소가 젊은날 수련사로서 고승인 ‘베스커빌의 윌리엄’이라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를 보좌하면서 겪었던 7일간의 격동적인 역사의 기록물이라는 형식을 하고 있으며, 구성은 두 줄기의 커다란 서사를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수도원 장서관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수도사들의 잇단 의문의 죽음이고, 이 사건의 조사과정을 배경으로 교황청과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소유냐, 청빈(淸貧)이냐’라는 그리스도 삶의 해석이란 종파갈등을 통해 이의 외피인 교만과 탐욕을, 은닉된 본질로서의 독단과 권력의 사상(事象)을 관찰케 한다.

 

수도원장으로부터 필사본 채색사였던 수도사의 의문스러운 죽음의 소식을 접한 윌리엄 수도사는 사건 조사에 착수하지만 죽음은 잇달아 발생하고, 해석갈등의 중재 장소로 합의된 수도원에 양 종파의 대표단 회의일자가 임박한다. 프란체스코회의 종파들을 이단으로 몰아넣기 위해 혈안이 된 교황의 주구들에게 수사들의 죽음은 좋은 먹잇감이 된다. 예견되었다는 듯이 수도원 식료계 수도사가 시약소 본초학자인 수도사를 살해한 혐의로 교황청 이단 심판관에게 체포되기에 이르고 이들은 체포된 수도사를 청빈의 극단적 실행 세력인 이단으로 몰아 청빈을 주장하던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한낱 교리해석의 진실주장은 권력을 장악하기위한 암투의 수단 이상이 아님을 드러낸다. 신(神)에 대한 복종과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유지에 장애가 되는 모든 세력을 한데 뭉뚱그려 ‘이단(異端)’이라는 불모의 굴레를 씌워 버리는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베르나르 기’라는 교황청 주구인 심판관이데, 왜곡된 정의를 앞세워 탐욕을 성취하는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타인의 사용을 배제하는 권력을 본성으로하는‘자본(資本)’이라는 물신(物神)에 대한 주류와 비주류 경제학의 해석과 닮아 있으며, 종북이라는 기호를 통해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언과 폭력을 자행하는 수구세력의 책략과도 같은 모습이다. 이단 심판이라고 하는 무자비함은 가짜 그리스도가 판치는 요한계시록의 음울한 예언에 가닿는다. 더구나 “전체에게 전체로서 온다!”는 탐욕스런 다중(多衆)의 오염된 정신세계에 대한 경고는 결코 오늘의 세계도 피해갈 수 없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수도원 장서관을 중심으로 잇달아 살해된 수도사들의 주검의 동기에도, 윌리엄 수도사의 사건 조사방법에 자리한 시행착오에도 잇닿는다.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창세기」와 달리 우주창조의 역사를 자연의 이치로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의 열람을 막기위해 지식을 갈망하는 수도사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영혼의 교만, 자신의 믿음만은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유일한 진리의 해석자임을 자처하는 독단(獨斷)이 바로 악마성(惡魔性)임을. 또한 요한계시록의 7가지 죽음이라는 가상의 질서에 현혹되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게 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인과관계와 같은 관계성이나 논리, 질서를 좇는 몽매한 족속인가를 확인하게 한다. 무관계한 관계창출, 질서없음이라는 혼돈의 상호작용과 같은 무질서의 질서라는 초월적 권능의 세계를 넘보는 인간 지성의 초라함을.

 

이러한 묵시록적 서사의 진중한 압박에도 소설의 세계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흡입력은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자로서 상징과 언어를 통한 수많은 기호의 해석과 중세 기독교의 신학논쟁을 둘러싼 다양한 교리와 사유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지적 만찬에 기초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불모(不毛)스러운 탐욕으로 연이어 희생되는 수도사들의 죽음의 동기에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독단의 실체에 이르는 풍부한 내적 사유와 쾌락을 준비시키는 팽팽한 지적 긴장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소설의 중심 소재인 장서관과 비밀의 서책은 진리해석자로 자처하는 장님 노(老)수도사 ‘호르헤’를 통해 믿음의 독단성이 지닌 허구성과 그 본성으로서의 은폐된 폭력성, 권력 지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묵시록의 피날레, 소설의 걸맞은 대단원으로서 수도원 본관, 요사, 장서관, 교회 등이 불타오르는 장엄한 광경은 인간정신의 정화(淨化), 가히 완전한 소설적 완성의 경지, 그야말로 압권이랄 수 있다. 한 때 신성한 최고의 수도원이었으나 잿더미의 폐허가 된 옛 수도원 터를 맴도는 적막과 적멸의 기운은 어느덧 영혼의 무화(無化)를 기다리는 노수도사가 된 아드소의 신성을 향한 겸허를 더욱 선명하게 분별없는 내 작은 가슴에 새겨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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