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산문집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세계적 이야기꾼, 이 시인의 눈은 역시 연약한 것들, 망각한 것들, 숭고한 것들을 향해있고, 그것을 추억하고, 애도하며, 오늘을 직시하고, 미래의 당연히 그러해야만 할 방향을 생각한다. ‘칠레’는 지역적으로 우리와는 아주 먼 나라이지만 오랜 독재정권과 민주화의 길을 걷던 과정이 너무도 흡사하여 그 정서가 낯설지 않다는 것은 모순되게도‘세풀베다’와 공감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이방인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주와 여행의 색다른 경험의 이야기들이 더해져 작가의 시선이 열려져 있는 진실을 향한 세계의 현상들을 공유하는 것도 이 책의 맛스러움이라 해야 하겠다.

 

독재정권에 맞서 펜으로서뿐 아니라 게릴라가 되어 육신으로 맞서 싸우던 작가로서는 칠레를 떠나 이웃나라를 전전하는 망명 아닌 망명생활이 불가피했었던 모양이다. 군부독재 권력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그를 세상에 알린 소설,『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이러한 망명 생활의 첫 기착지인 예콰도르 누시뇨에서의 원주민인 수아르족과 함께한 공동체 생활의 결과였음을 듣게 된다. 수아르족의 보호, 거센 폭풍우를 피해 찾아든 정글의 외딴 오두막과 그를 맞아준 노인, 초라한 벽에 세워진 몇 권의 낡은 책들,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아요”라고 세풀베다를 꿰뚫듯 마음을 안아준 노인의 얘기임을. 세상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욕망의 소음이 차단된 곳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이처럼 이 책의 에세이들은 작가의 망명 여행기이며, 어디서든 이방인의 낯선 시선이 번뜩이고, 그래서 늘 새롭고, 내부자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순수하게 읽어낸 현실, 날 것의 거울상이 된다. 독일의 망명생활 중 순박한 웃음을 머금은 칠레의‘라 빅토리아’ 마을을 배경으로 한 유년기 아이들의 사진이 계기가 되어 청년이 되었을 아이들을 찾는 여행의 소회가 책의 첫 장을 연다.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었다고 하는 나라에서 그네들이 찾아낸 사진 속 아이들 중 한 아이는 굶주린 동생들을 위해 과자를 훔쳤다는 죄로 처형되고, 그나마 생존한 아이들의 무표정과 힘겨움이 새겨진,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은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민족화해란 얼토당토않은 알맹이 없는 허튼소리로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 권력은 여전히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핥고 있을 뿐 현실의 잔인함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목격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합창하듯이 “크면 칠레를 떠날 거예요.”라고 자신들의 미래를 외친다. 최근 통계자료에서 과반수를 넘는 한국인들이 여건만 되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는 얘기와 너무도 흡사함에 움찔하게 된다. 사진에는 한 아이의 자리가 비어있고, 그 빈자리는“조국이라는 이름하에 망각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현실을 비추는 잔인한 거울의 모습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권력은 왜 이 거울너머의 진실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국민 대통합’이라고 외치는 한국의 정치권력이 진정 무엇이 통합인지 알고나 있으려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세풀베다는 남극 대륙에서 석유 채굴작업을 하는 거대자본이 만들어내는 종말적 현상을 목격한다. 남극해 일대의 3대 빙붕 중 하나인‘라르센 B 빙붕’이 떨어져 나와 녹아버리는 것인데, 칠레 남단에서 남극해의 장관을 보기위해 오는 유럽의 부자 관광객들을 보곤 “세상의 종말을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어서 돈을 뿌리며 이 먼데까지 오니, 참 희한한 일이지?”라는 조롱에서 인간의 운명이 오직 시장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공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나친 근심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의당 그러해야 하는 세계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 비극적인 종말이 단지 눈앞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는 이 진실을 대체 어떻게 호소해야 할지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역사적 진실을 선취하려 했던 러시아 작가‘이사크 바벨’의 터무니없는 죽음의 얘기를 들으면서 좌절과 환멸이 지배하는 세계의 항상성을 보게 되는 것은 사실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기자 출신인 작가에겐 권력의 개들이 되어가는 언론의 모습에서 세계가 더욱 진실과 멀어지는 형상이 보였을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글이나 말에 대해 책임지려하지 않는다.”라며 오늘날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책들 옆으로 무지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쓸쓸이 지켜보아야만 했던 돈키호테”임을 말하는 낙심한 얼굴이 어른거린다.

 

또한 세풀베다 특유의 유머가 곁들인 풍자적 글들로 문학적 향기라는 즐거움도 주는데, ‘에드워드’라 불리는 수색견의 에피소드는 공권력의 맹목적 신념이 야기하는 폭력의 실체를 조명하며, 단지 발로 차는 남자의 발길질을 피하려다 바짓가랑이를 찢었다는 이유로 검찰에 상해죄로 고소된 개 ‘치키토’의 18년간 수감 이야기는 가해권력이 피해자의 저항을 폭력이라 규정하며 자유를 박탈하는 구조적 폭력의 현상을 재미있는 우화로 지펴낸다. “치키토는 절대로 그를 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항변이 왠지 아프게 들리는 까닭이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쟁취를 위한, 민중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아름다운 꿈들의 얘기, 진실을 위해 억압과 죽음을 무릅쓴 스러져간 영웅들의 이야기가 진중한 언어로 들려진다. 길 끝에 선 노작가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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